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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정 May 20. 2024

도망치듯 도착한 결혼에 천국은 없다

(당신의 내일이 행복하기를)

도망치듯 도착한 결혼에 천국은 없다

 

이십 대는 본격적으로 나를 제대로 알아가는 시기다.누구는 대학과 동시에 가족이라는 둥지에서 분리돼서 독립 하기도 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낯선 타지에서 홀로서기를 하게 될 수도 있다.


그 시절, 낯선 곳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진 나의 이십대는 뼛속까지 외로웠다. 겉보기에는 반짝였지만, 마음은 늘 공허했다.

그제야 비로소 몸도 마음도 홀가분하게 독립했으나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숱한 방황을 했다.


이 길이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내 옆의 그 남자가 평생의 짝이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믿을만한 친구도 딱히 없는 것 같았고,부모님 둥지는 이제 갑갑하기만 했다.

아마 지금의 이십 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앞으로 무엇을 하면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직장 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매일 상사들로부터 깨지고, 열심히 일하는데도, 돈은 잘 모이지 않았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결혼이었다.


어느 날, 아는 언니와 강남 카페에 앉아서 신나게 수다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아주머니가 조용히 다가오더니 내게 명함 한 장을 건넸다.

“아가씨, 우리 00결혼정보업체인데 혹시 관심 없어요?

 분위기가 좋아서 탐나네. 꼭 좀 연락해요”

우연히 건네 받은 명함 한장. 그리고 그렇게 결혼시장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게 됐다.

우리는 적극적인 매니저님의 소개로 여러명의 남자분과 소개팅을 하게 됐고, 그들의 조건은 히 훌륭했다.


'그래, 결혼만 잘 하면 이 힘든 사회생활 이제 그만둬도 되는 거지?' 그렇게 고르고 골라서 지금의 내 남편을 만났고, 나는 일년만에 그토록 원하던 결혼을 하게 됐다.


하지만, 도망친 곳에 천국은 없었다.

행복하기만 할 줄 알았던 신혼 때 전세 사기를 당했고, 남편과 나는 또 힘들었다. 그제야 나는 결혼 역시 도피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동산으로, 법원으로 처음으로 소송이라는 단어를 접해봤고, 남편은 그 후로 일이 년 동안 자책으로 심적 우울증을 앓았다. 그는 내가 그토록 원했던 임신도 미루자고 했고, 나는 나를 돌볼 여력도 없이 신랑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야 했다. 생애 가장 행복했어야 했을 신혼을 그렇게 날려 보낸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사기꾼들 얼굴에는 사기꾼이라고 쓰여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아주 선량해 보이는 인상이었고 감히 누굴 속일 수 있을 것 같은 목소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쁜 사람들 얼굴에 나쁜사람이라고 쓰여있는 줄 아니?”

어렸을 때, 누군가 내게 그런 말을 했을 때도,

“바보 아니야? 그걸 몰라본다고?”

라며 큰소리 쳐댔던 나 자신이 그동안 세상 앞에서 너무도 건방졌음을 깨달았다.

험악하게 생기고, 막말을 퍼붓는 사람들이었다면 오히려 그 충격이 덜했을 텐데. 저렇게 선량한 얼굴로도 사기를 치고 다니다니. 그럼 앞으로 나는 누굴 믿고 살아가야 하지?


그때까지 나는 성선설을 믿는 사람이었다. 대부분의 인간이 선하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사람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들로 인해 내 남은 인생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그로부터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우리 부부는 새로운 사람들을 거의 만나지 않고 단 둘이서만 지냈다. 무슨 일을 시작할 때면 꼼꼼하게 점검하고, 의심부터 하기 시작했고, 누군가가 지나치게 친절하게 다가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렇게 그 시절의 내 신혼생활은 참 힘들었다. 분명히 나름 엄선해서 조건 좋은 사람을 만났고, 평온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갑자기 터져버린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 이럴 줄 알았으면 대학원이나 가서 공부나 더 하고, 커리어나 쌓아둘걸. 뭐가 좋다고 결혼은 일찍 해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지. 돈은 열심히 벌어서 뭐 하나. 남이 다 가져가 버리는데. 직장도 진작에 그만뒀는데 또 무슨일을 시작해야 하나.


그때 깨달았다. 이십 대 때는 끊임없이 경력을 쌓아두어야 하는 시기였단걸. 어떤 극한 상황이 닥쳐와도 흔들리지 않을만한 자금의 파이프 라인을 확보해 두었어야 했다는 걸. 결국, 누가 가져가 버린 남편 돈은 처음부터 내 돈이 아니었던 것 이다.


그래서 아직 어린 이십 대들을 만나면 절대 결혼에 대해서 환상을 갖지 말라고 조언한다.

조건 좋은 만남이야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본격적인 게임은 결혼 후에 진행된다.


백마 탄 왕자님이야 얼마든지 만날 수는 있지만, 문제는 그 백마가 잘 달리다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왕자님이 타고 있는 백마만 믿고 있기에는,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시간에 내 두다리를 더욱 튼튼하게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원하는 조건의 남자를 만나서 별다른 사건 사고 없이 무난한 결혼생활을 하는 여자들도 많이 있다.

누구나의 삶이 그런 꽃길이라면 너무도 다행이지만, 멀리서 보면 다 희극이라는 말처럼 자세히 들여다보면 집집마다 저마다의 사연들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위기가 몰려올 때마다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은 결국 나 자신밖에 없다. 그래서 가능하면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자신의 커리어를 쉽게 포기하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다행히 그 사기 사건은 무사히 잘 해결됐지만, 근 2년간의 소송 끝에서 얻은 건,달콤했던 신혼의 산산조각. 그렇게 고슴도치처럼 변해버린 남편.

다정한 남편은 어디에도 없었다. 매일 화를 냈고, 타박을 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깨달았다. 남편 역시 조건 맞는 여자가 목표였기에 그 업체에 가입했던 게 아닌가.

생각해 보면 우리는 처음부터 엄청난 사랑으로 서로의 희생까지 감내할 만한 그런 커플은 아니었다. 그럼 앞으로 나는 어떻게 해야 이 슬럼프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그날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랑이라는 방패로 모든 걸 막아내기엔, 이미 그 유효기간 또한 훌쩍 지나버린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자, 지금부터는 현실이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맞춰주기로 마음먹으니 그 때부터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다.


요리도 배우기 시작했고, 틈틈이 아이들 논술을 가르치면서 내 용돈 정도는 내가 벌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불행 중 다행으로 사랑스러운 아이가 와줬고, 조금씩 남편도 정서적으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그 사건 덕분에 우리 부부에게는 어떤 시련이 닥쳐와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만한 강한 내공이 생겨버리긴 했지만, 내 인생의 가치관이 송두리째 바뀌게 되는 엄청난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부디, 결혼을 도피처라고 생각지 말자. 그리고 예상할 수 있는 최악의 순간까지 모든 상황을 다 대입해 봐도 나는 저 사람과 평생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면 그때 결혼을 결심해도 좋을 것 같다.


가끔, 조건들이 너무 중요한 나머지 적당히 나를 결혼이라는 틀에 끼워 맞춰서 결혼하려는 이십 대를 보면, 그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몹시 안타깝다.


그 시절에는 힘들 때마다 가장 편한 도피처로 떠올리기 쉬운 방법이 결혼이기 때문이다.

물론, 조건이 아주 좋은 남자를 만난다면 결혼 생활의 시작이 훨씬 편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세상에 절대 영원한 건 없다.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내 옆의 그 사람과 두 손 꼭 잡고 잘 극복해 나갈 수 있을지를 꼭 고심해 보기를 바란다.

부디, 그대들의 행복한 결혼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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