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 흔히들 하는 말이다. 살아가면서 얼마나 중요한 말이었는지. 우리는 너무도 흔하게 그 도덕적 양심을 저버리면서 살아간다.
누구는 수도 없이 외도를 저지르고, 비리를 저지른다. 돈을 위해 정의를 저버리고, 명예를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죄책감도 없이 짓밟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도덕적 양심을 지켜가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 선을 지켜내지 못하면 결국 나 자신을 잃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을 하면 더 이상 설렘이라는 감정이 없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 잘생긴 연예인들만 봐도 가슴이 콩닥거리고, 발라드 가수들 목소리만 들어도 귀르가즘을 느낀다.
아줌마도 여자였던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연예인으로 끝났지만, 실제로 주변에는 외도까지 이어진 실례들도 많이 있다.
물론 남녀가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또 다른 사랑의 감정이 싹틀 수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법적으로 부부로 엮여있는 현실에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을 넘나드는 그들을 보면서, 그 차이점이 뭘까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생각의 종지부는 도덕적 양심으로 굳혀졌다.
감정이 노화되지 않는 한, 사람은 끊임없이 설레고 흔들릴 수는 있다. 그것까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본인의 무책임한 행동들로 인해 주변 사람들까지 피해를 준다면 이는 반드시 옳지 않은 행동이 맞다. 그들이 과연 그것을 모르는 걸까. 아닐 것이다. 그냥 이 정도쯤이야 라는 가벼운 마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더 위험하다.
끝까지 나 자신을 지켜내는 일. 그것은 정말 엄청난 인내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깨닫는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시절부터의 가치관 확립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내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지도 중요하다. 그렇게 내면의 단단함을 위해서 꾸준히 노력해 나가야 하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딱히 할 일이 없고 내면이 나약해졌을 때 그토록 음주가무에 흔들렸던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이 생기고 무언가에 몰두하기 시작하면서는 좋아하는 연예인들을 봐도 딱히 설렘이나 감흥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아, 이 차이구나.' 그때 느꼈다.
그동안 그토록 나는 내적 공허함이 컸던 것이다.
횡단보도 앞에서 서있다 보면, 무단횡단을 일삼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작은 실천 같지만 도덕적 양심은 거기서부터 나온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만났던 사람 중에서 길가에 쓰레기조차 함부로 버리지 않고,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으면 본인 주머니에 담아 가던 남자가 있었다.
나는 그분이 지금도 매우 소신껏 잘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불의에 함부로 타협하지 않고, 자신만의 기준이 명확하니 가정생활 역시 평온할 것이다.
결혼은 그런 사람과 함께 해야 한다. 그래야 깃털 같은 영혼으로 여기저기 흔들리지 않을 수 있고, 가정생활 역시 예측 가능한 적정선 안에서 잘 꾸려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기준과 소신이 있다는 것. 내적 단단함으로 알차게 영글었다는 것. 나는 그것을 멋있다...라는 단어로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