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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스방 Dec 02. 2023

전철 속 치한의 손 & 취객의 손

열정의 삶으로 가능성을 넓혀라.

대전에서 열리는 직장 행사에 참석하려고 출근 시간대에 서울역으로 향했다. 

서울역에 갈 때면 주로 지하철을 이용했었는데 그날은 버스가 더 편리할 것 같아서 시내버스를 타기로 했다. 버스정류장에서 줄을 서서 사람들로 꽉 들어찬 버스 속을 비집고 올라탔다. 


정거장마다 내리는 손님 없이 타기만 하더니 어느새 버스 안에 혼잡한 상황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한 시간을 그렇게 전쟁 같은 상황을 견디며 서울역에 도착하니 말 그대로 파김치가 되어있었다. 

버스에서 내려서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치고 대전행 KTX 열차에 앉아서 지그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출퇴근 교통전쟁을 치르며 살아가는 샐러리맨들의 고된 일상 속에 내가 경험한 웃지 못할 출퇴근길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결혼하고 90년대 초부터 이십여 년 동안을 인천 서쪽의 끝자락 송도 신도시 인근에 살았다. 

그곳에서 서울에 있는 직장으로의 출퇴근길은 때때로 여행과도 같았다. 

버스와 지하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며 복잡하기로 소문난 주안역과 신도림역을 매일 오가며 출퇴근 전쟁을 치렀다. 전철역 계단을 걷는 게 아니라 떼밀려서 흘러 다니는 것 같았다.

전철역 계단을 올라가면서 뒤를 돌아보면 사람들의 검은색 머리가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 석탄이 줄줄이 올라오는 것처럼 보였다. 


전동차 문이 열리자마자 밀려들어 가면서 사람들이 끼여서 문이 닫히지 않으면 일명 ‘푸시맨’이란 역무 보조원이 승객들을 힘껏 밀어 넣어서 문을 닫았다.      

나는 가끔 아침 일찍 주안역에 도착해서 시간이 여유가 있으면 편하게 좌석에 앉아서 갈 욕심으로 두 정거장을 거슬러 올라가 전철을 타곤 했다.

어느 날 출근길 주안역에 일찍 도착해서 버릇처럼 반대 방향인 동인천으로 거슬러 올라가 운 좋게 출입문 옆에 머리를 기댈 수 있는 명당 좌석을 차지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토끼잠을 청하며 여유로운 출근길 행복에 빠져 있었다.      

서울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정차하는 정거장마다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왜 밀어요”  “내가 안 밀었어요”

싸울듯한 말투의 대화가 오가기도 하고 여기저기서 밀리고 밀치며 아우성이었다.      

나는 편하게 앉아 있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두 눈을 질끈 감고 잠자는 척하고 있었다. 

몇 정거장을 더 가면서 꾸역꾸역 들어오는 사람들로 전철 안은 점점 더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데 한 젊은 여성이 나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면서 점점 밀착해 왔다. 


어떤 상황인지 궁금해서 실눈을 뜬 순간 그 여성이 나에게로 밀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여성 뒤에 서 있던 치한의 손이 그 여성의 엉덩이를 만졌던 것 같았다. 

내가 실눈을 뜨자 그 치한은 재빨리 팔에 걸치고 있던 외투 속으로 자기의 손을 감추었다. 

이리 밀치고 저리 밀치고 고성이 오가는 전철 안의 혼잡을 틈타 ‘치한의 손’이 그 여성을 괴롭히는 현장을 목격했다. 

나는 그 여성을 도와주려고 내릴 역이 몇 정거장 더 남아 있었지만 몸을 겨우 일으켜 세워... 

“아가씨 여기 앉으세요”

그 여성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그 여성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듯한 표정으로 연신 감사하다며 나와 자리를 바꾸어 앉았다. 

내 등 뒤에 서게 된 전철 속 치한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다음 정거장에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내렸다. 

잘못은 그 못된 치한 녀석이 했는데 내가 그 여성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혼잡한 전철에서 남을 위해서 무엇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우연하게도 나는 몇 번 그런 경험을 했었다.    

출근길 못지않게 퇴근길에서도 차마 웃지 못할 일들이 가끔 있었다. 

늦은 밤 인천행 전철 1호선 막차는 출근 때 혼잡보다 조금은 덜 하지만 마지막 열차라서 그런지 꽤 많은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출근 때와는 다르게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마지막 열차에 올랐다. 

산더미 같은 일을 마치고 피곤해 찌든 얼굴의 샐러리맨이나 술자리에서 막 일어난 듯 취기가 잔뜩 오른 취객에 이르기까지 저마다의 사연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날은 나 역시 직장에서 야근으로 늦어져 마지막 열차에 간신히 올라탔다. 

전철 안에 들어서니 복잡한 전철 안에서 유난히 사람들이 없는 공간이 있어서 비집고 들어가 그곳에 섰다. 

잠시 후에 사람들이 그곳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술에 취한 취객이 손잡이를 잡고 졸고 있다가 전철이 출발하자 비틀거리며 눈을 뜨더니 그곳을 술자리로 착각한 것인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복잡한 전철 안에서 사람들이 유독 그곳을 피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내가 전철에 타기 전부터 그 취객은 그런 행동을 되풀이했던 것 같았다. 

승객들은 그 취객과 시비가 붙어 곤욕을 치를 것 같아서 그런지 서로 눈치를 보는 듯 멀리 피해 있었다.


누군가 나서겠지라는 생각에 아무도 말리거나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상황을 모르고 그곳에 간 나는 당황스러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용기를 냈다.     

“아저씨 노래하시려면 저기에 들어가서 하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앞뒤 전철을 연결하는 통로를 가리켰다. 

그러자 그는 나를 흘깃 쳐다보더니 문을 열고 통로로 들어가더니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실내와 분리된 통로 공간이어서 그런지 그 취객의 노랫소리는 열차 소리와 섞여서 잘 들리지 않았다. 

그 취객의 술주정이 정리되어 사람들의 찌푸렸던 얼굴이 펴지려고 할 때 통로의 문이 스르륵 열렸다. 

혼자 그 안에서 심심했던지 자기가 노래하는 데 박자를 맞추어 달라며 내 손을 통로 안으로 잡아끌었다. 

나는 취객의 손에 이끌리어 두 곡을 연거푸 박자에 맞추어 손뼉을 쳐주고 나서야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남의 일에 끼어들어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그런지 먼저 나서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누군가는 나서야 다른 많은 사람들의 불편함을 덜 수 있다. 

그 누군가가 되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여유로운 마음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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