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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지 Aug 07. 2023

강남 건물주 마 여사

빈손으로 시작해 강남 건물주가 된 통큰 마 여사 이야기

마 여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였다. 젊은 몸뚱아리 하나만 갖고 시작하여 오남매를 잘 키워 냈을 뿐 아니라, 강남의 건물주가 되었다. 그것도 남편의 끈질긴 방해를 이겨내고 말이다. 그때는 경제 성장기였으니까, 지금과는 다르니까,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넘겨버리기에는 마 여사로부터 얻어야 할 지혜가 너무 많다. 가끔 마 여사랑 대화를 하다보면 깜짝 놀란다. 아니, 어떻게 이렇게 경제 지식이 해박하지? 레버리지, 인플레이션, 위험분산 등 용어만 모를 뿐이지 그 기본 개념은 다 알고 있다. 나도 요즘 재테크 공부를 좀 하다 보니 마 여사의 남다름을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참, 마 여사가 누구냐고? 내가 다닌 아침 주부수영반의 대모이다. 이제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인데도, 부티나는 외모와 패션감각,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지니고 있다. 나는 동네 수련관에 수영을 배우러 간 첫날부터, 이 분한테 잘못 보였다가는 여기 계속 다니기 어렵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늘 먼저 인사하고 싹싹하게 대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분의 지혜로움과 강인함에 매료되어 언니처럼 따르게 되었다.


그간 마 여사한테 들은 이야기를 통해 그 분의 재테크 노하우를 정리해본다.


1. 경제적인 독립을 하다


마 여사는 가부장적 집안에 태어났다. 마 여사가 요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지금쯤 장관 한자리 하셨을 거라고 마 여사를 아는 사람들은 다들 말한다. 그만큼 스케일이 큰 여장부 스타일이다.


가부장적 집안 분위기는 마 여사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쳐, 자그마치 딸딸딸딸아들, 오남매를 낳으셨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그 어느 누구도 마 여사한테 아들 낳으라는 말을 안했다고 한다. 자기 혼자의 의지로 아들을, 그리하여 오남매를 낳은 것이다! 막연히 시댁의 강요, 외압으로 인해 아이를 다섯이나 낳은 줄 알았던 나로서는 꽤 충격이었다.


마 여사가 아이를 5명이나 낳은 데에는 나름 뒷배경이 있었다. 당시 시내 한 가게에서 일하던 남편이 웬만한 회사원 월급의 3배를 벌어왔던 것. 문제는 가게 주인이 남편의 삼촌이었는데, 아무래도 친척이라 편하게 생각했는지 월급을 고정된 날 제때 주지 않고 들쭉날쭉 준다는 거였다. 결혼 후 8개월쯤 지나 이제 새댁 티를 벗고 상황 판단을 하게 된 마 여사는 당장 남편을 설득해 다른 가게로 옮겨 제대로 된 월급을 받게 했다고 한다. 결국 남편은 삼촌의 가게를 나왔고, 삼촌과의 인연은 끊어질 수밖에 없었다.


때로 우리는 가족, 친척, 지인 등 친분을 미끼로 저당 잡힌 인생을 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나만해도 대학시절 친척이나 지인의 부탁으로 과외를 멀리까지 가서 힘들게 해주었지만 대가를 못 받은 경우가 있었다. (미리 사례비를 협의해두지 않은 내 탓이다.) 시댁에서 집 해준다는 말만 믿고 있다가 좋은 시기 다 놓치고 집값 급등기를 맞아 막상 시댁에서 집도 못 받고 졸지에 무주택자가 된 사연, 별 생각 없이 가족에게 명의 빌려줬다가 청약 기회를 다 놓치게 된 사연 등도 주위에서 들은 적이 있다. 성인이 된다는 것은 어쩌면, 경제적으로 남에게 의존적인 상태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생활을 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고 살아간다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2. 집주인에게 돈을 빌려 집주인보다 큰 집을 사다


다른 가게에 취직한 마 여사의 남편은 성실히 일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독립해 나가서 자신의 가게를 차릴 수 있게 되었다. 마 여사는 항상 남편이 가져온 돈의 일부를 떼어 적금을 붓고, 임신한 무거운 몸으로도 남편과 종업원들에게 밥을 해다 나르면서 아이들을 키웠다. 당시 마 여사는 작은 부엌이 딸린 한옥집 문간방 한칸에 세들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부엌 한구석에서 엄마쥐와 아기생쥐 3마리를 발견했다고 한다. 대담한 마 여사였지만 그 때만큼은 가슴이 떨렸다고 한다. 어떻게 깔끔하게(?) 죽일까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물을 팔팔 끓여 부어 죽이셨다고... 이렇듯 마 여사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에 나올법한 무용담이 등장했다.


이제 막 걷기 시작한 마 여사의 큰딸아이는 문간방에 머물러 있지 않고, 툭하면 주인댁 대청마루에 가서 놀곤 했다. 주인댁 부부는 아이가 없었던지라 큰아이를 무척이나 예뻐했고, 아이는 매일 주인집을 제 집처럼 드나들며 주인댁 부부와 밥을 먹고, TV를 보며 놀았다. 마 여사는 주인집이 고마우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하루는 아장아장 걷던 아이가 대청마루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 마 여사는 그때 결심하셨다고 한다. 아이가 안전하고 맘 편하게 놀 수 있는 내 집을 사야겠다고 말이다.


그 길로 마 여사는 틈만 나면 집을 보러 다녔다. 처음에는 보유자금 수준에 맞는 작은 한옥집을 몇 군데 보았으나, 집을 보다보니 자꾸 눈이 높아져 결국에는 600만원에 방3칸짜리 양옥집을 사게 되었다. 당시 마 여사가 가진 종자돈은 단지 130만원. 남편를 꼬득여 새로 개업하는 친구에게 가게 물건을 도매로 팔아 40만원을 추가로 마련하도록 하고, 은행에서 200만원을 대출하였다. 방3칸 중 2칸은 다시 세를 놓아 150만원을 마련하였으나 여전히 80만원이 모자란 상황이었다. 마 여사는 승부사 기질을 발휘하였다.


어느 날 주인집 아저씨를 찾아가 80만원만 빌려달라고 말한 것이다. 우리 부부가 가진 것은 젊은 몸뚱아리밖에 없지만, 열심히 벌어 꼭 갚겠노라고 말이다. 주인집 아저씨는 세입자 부부가 본인의 한옥집보다 더 큰 양옥집으로 이사가는 것이 좀 쓰라렸지만, 선뜻 80만원을 빌려주었고, 마 여사는 매달 과일바구니와 함께 이자를 갚았다고 한다. 남편의 가게는 날로 번창하였고, 마 여사네는 오래 지나지 않아 주인집 아저씨 돈을 다 갚았을 뿐 아니라, 시내 여기저기 집을 여러 채 사놓을 수 있었다.


3. 절정의 순간 찾아온 위기


마 여사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고 했다. 마당만 100평이었던 시내 한복판의 양옥집. 그 집에는 색색의 장미꽃과 족두리꽃, 시계꽃 등 온갖 꽃이 가득히 심어져있는 정원이 있었고 백일홍나무도 두 그루나 있었다. 정원 양 옆으로는 감나무, 포도나무 등 과실나무들이 즐비했다. 100평 집에 더하여 시내 랜드마크 서점건물도 마 여사네 것이었다. 남편의 가게는 경제 성장기 시절, 목 좋은 시내에서 장사가 잘되었고, 마 여사는 남편이 벌어온 돈을 부동산으로 불렸다. 마침 그토록 기다리던 아들도 태어났다.


그렇지만, 행운은 언제나 불운을 잉태하기 마련이고, 하락은 절정기에서 시작된다. 남편한테 사기꾼들이 꼬이기 시작했고, 그동안 사놓은 집들이 하루둘씩 날아가기 시작했다. 젊은 부부의 때이른 성공을  시기질투하던 사람들은 은근히 고소해했고, 마 여사는 도망치듯 다섯 아이를 이끌고 그 동네를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얼마간의 돈을 챙겨 이사한 곳이 신흥 거주지로 뜨고 있는 ‘강남’이었다. 돈을 챙겨들고 무작정 택시를 집어탄 마 여사는 택시기사님께 “강남에 좋은 집 많이 모여 있는 곳(?)”에 내려달라고 하셨다고 한다.


(나) 그런데, 왜 하필 강남이었어요?

(마여사) 그럼 내가 강북에 살리?


GANG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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