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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지 Aug 16. 2023

공부가 제일 쉬웠지만 돈 공부는 해본 적이 없는데요?

순수무결 금융문맹 SKY 직장맘의 자본주의 입문기

"자본주의는 누가 빨리 깨닫느냐의 싸움인거 같아요."


2020년 코로나19로 시중에 막대한 돈이 풀려 부동산, 주식 모두가 난리이던 때, 'SBS 스페셜 부린이와 동학개미 : 요즘 것들의 재테크'에 등장해 너무나도 유명해진 짤이다.


처음 이 짤을 보았을 때, 마음이 좀 쓰렸다. 지금까지 나는 뭐하고 있었나,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으면서 자본주의의 본질이 무엇이고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마흔이 한참 넘은 이제야 희미하게 깨닫게 된 것이다.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해 '명문대'에 입학하고 또 열심히 취업 준비해 소위 '신의 직장'에 취직했건만, 정작 현실 세계에서 중요한 '돈 공부'는 할 생각을 못했다. 그래도 한 때 입사 시험을 위해 미시, 거시, 국제 경제학까지 공부했던 나 아닌가? 그러나 얄팍한 입시용 경제학 지식은 현실의 돈 관리로 이어지지 못했고, 나는 경제학 책 속에 나오는 '화폐나 금융이 도입되기 이전의 순수 재화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살아온 셈이었다.




나 : 우리는 왜 돈에 관심이 없었지?


8년여의 자산 폭등기를 "어~어~어~"하면서 그냥 지나쳐 보낸 지금, 남편과 허심탄회하게 돈 이야기를 한번 해보고 싶었다. 이제 중고등학생인 아이들을 우리와 다르게 키우기 위해서라도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남편 : 글쎄...여러가지로 돈 모을 기회가 없었지 않나?


그렇다. 우리 부부는 연봉보다는 안정성 위주로 직업을 선택했고 거기에 내가 육아휴직까지 한 덕분에, 지금까지 맞벌이했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외벌이 가정과 다를 바 없었다. 또 20대에 결혼을 해서 바로 큰아이를 낳고 또 하필 둘째는 터울지게 갖는 바람에 계속 이모님 비용, 교육비 등으로 돈 모을 틈이 없었던 것이다.


나 : 그래도 아무런 계획도 없이 돈을 막 써버린건 사실이야. 우리도 소득이 높았으면 좀 달랐을까?


얼마 전 책을 읽다가 오랜 의문 한 가지가 풀렸는데, 다름아닌, "왜 전문직, 금융권 등 돈을 잘 버는 직업일수록 주된 관심사가 돈이고, 대화 소재가 재테크인가?"였다. 참 신기한 노릇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돈 잘버는 사람, 돈 많은 사람들일수록 더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재테크하느라 야단이었다. 그런데 유명 블로거 대치동키즈의 <내 집 없는 부자는 없다> 책을 읽던 중 다음과 같은 문장을 마주하게 되었다.


"투자 열정을 불러오고 관심을 끌게하는 불쏘시개는 바로 투자금입니다."


헐...생각해보니 많이 벌어서 쓰고 남는 돈이 많을수록, 그래서 종자돈(투자금)이 많을수록, 이 돈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생길 것 같다. 갑자기 모든 것이 명쾌해졌다. 그동안 우리 부부가 버는 대로 족족 써버린 것도 다 나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어짜피 쓰고 남는 것도 별로 없는데 그냥 다 써버리고 말지, 얼마 되지도 않는 이 돈 모은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이런 자포자기의 심정 아니었을까?


돈은 돈을 불러모으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 원리를 이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나 : 그런데, 왜 우리 주위에는 돈 모으라고 조언해주는 사람이 한 명 없었을까? 다들 재테크에 관심이 없어~ (유유상종인가..)

남편 : 왜~ 예전에 당신 회사 동기 중에 재테크 관심 많은 친구 있었잖아.

나 : 아, 혜영이? 맞다...


혜영이는 입사 동기인데, 월급을 받으면 늘 엄마 용돈, 남동생 용돈을 챙기는 책임감있는 장녀였다. 대학시절부터 늘 과외 알바를 2-3개씩 하며 돈을 벌었다고 하는데, 입사 이후에도 주말 알바를 그만두지 않았다. 나도 취준생 시절에는 과외 알바를 했었지만 입사하면서 바로 그만둔 터였다. 피곤하기도 하고, 겸직 금지 규정이 맘에 걸리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굳이, 주말에?' 느슨해지는 마음을 어쩔수 없었다. 그래서 주말도 없이 투잡을 하는 혜영이를 보며 속으로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혜영이는 당시 유행하던 '텐인텐(10년 안에 10억 모으기) 카페'를 자주 들락거리며 나한테도 재테크 이야기를 하곤 했는데 내가 별로 호응이 없자, 더 이상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혜영이는 결혼을 했고, 자본금 1억에 대출을 2억 끼고 3억짜리 서울의 20평 재건축 아파트를 샀다. 그러면서 언젠가 이 아파트 30평대로 갈아탈 거라고 다부지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이직을 하면서 연락이 끊겼는데, 이번 자산 폭등기를 계기로 '부동산 카페'를 들락거리다보니 텐인텐 카페의 죽순이였던 혜영이가 생각났다. 수소문 결과 얼마 전 연락이 닿았는데, 두어 번의 갈아타기 끝에 서울 재건축 아파트 30평대를 사서 몸테크 들어간다고 했다...역시, 일찌감치 깨달은 혜영이는 달랐다.


나 : 그때 혜영이 텐인텐 카페 들락거리는거 보면서도 난 전혀 관심이 없었어. 소 닭보듯...왜 그랬지?

남편 : 필요성을 못느껴서 그런거 아닐까?..절박한 것도 없고 간절히 바라는 것도 없고 그러니까.


하긴, 나는 부유하진 않지만 크게 부족함 없는 집안에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곱게 자랐고, 어릴 때부터 공부 잘하고 물욕이 없다는 점을 큰 미덕으로 칭찬 받으며 자랐다. 그래서인지 전공이나 직장을 선택할 때에도 경제적인 측면은 전혀 중요한 기준이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강남에서 자라 강남이 좋은 줄도 몰랐고 그래서 결혼한 후에도 강남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요컨대, '결핍의 부족'이 재테크에 대한 무관심을 낳았던 것이다.  




월급이 적었고, 모은다는 개념없이 버는 족족 써버렸고,

그래서 종자돈이 없었고, 투자금이 없으니 재테크에 대한 관심도 안생겼고,

주변에 재테크 관련 진지한 조언을 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말해줘도 관심이 없으니 들리지가 않았고...


결국 모든 것은,

크게 부족한 게 없어 간절히 바라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돈을 잘 불리는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잘 불리지만,

돈을 못 불리는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못 불린다.


<안나 카레리나>의 첫 문장을 빌러, 이 글을 마무리해본다.


이제 원인 분석을 마쳤으니 내가 해야 할일은?

"자본주의를 빨리 깨우치고, 갈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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