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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팬지 Aug 13. 2023

어느 날 친구가 강남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었다

"있잖아~ 나, 청약 당첨된거 있지. 강남 ㅇㅇ 아파트."

대학 친구로부터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 말이 가지는 엄청난 함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청약? 강남?'

모두 내가 관심도 없었고, 어쩌면 가질 수 있었지만 쉽게 포기한 것들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구?


먼저 청약은, 결혼할 때 남편이 총각시절 월급을 모은 예금통장과 함께, 아주 오래되어 케케묵은 금리 4%대의 청약통장을 들고 왔으나(모두 시어머니가 아들 대신 알뜰살뜰 모아준 것이었다), 재테크 문맹이었던 우리 부부는 시어머니 몰래 냉큼 청약통장을 해지해 전세 대출금을 갚았던 것이다.


또 강남 집은, 결혼 후 수년간 전세를 전전하다가 정착할 집을 마련할 때가 되었을 때 강남 토박이었던 나는 친정 근처에 살면 어떨까 하여 강남 아파트를 몇 군데 보러 다녔지만, 물가 비싸고 사람 많아 복잡하고 치마바람 쎈 강남의 분위기가 싫어, 결국 성수대교 건너 강북의 한 한적한 아파트에 정착한 것이다. 박봉 월급쟁이 부부인만큼 대출을 최소화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 때가 2015년, 바야흐로 기나긴 부동산 광풍이 시작되는 초입이었다. 나와는 달리 강북에서 자라 '강남'에 대한 강한 컴플렉스와 로망을 갖고 있던 친구는, 전문직 부부로 애초에 연봉이 나의 2배, 보유자산도 나보다 수억은 더 많았다. 거기에 대출을 5억 이상 받아 청약 받은 강남 아파트를 첫 집으로 장만한 것이다.


이후 8년 동안, 친구의 강남 아파트는 3배가 되었다. 알고보니 강남 아파트 청약 당첨은 사실 로또 당첨과 다를 바 없었다. 나의 강북 아파트도 2배로 올랐지만, 당초 8억 정도였던 친구 집과의 가격 차이는 어이없게도 30억을 넘어서게 되었다.


그 때 몇 억 더 대출받아 강남에 샀어야 했는데...

이제는 최소 10억은 더 줘야 갈 수 있네. 그것도 평수 낮춰서


가까운 친구에게서 느끼는 상대적인 박탈감이 나를 힘빠지게 했다. 친구가 부럽기도 하고, 괜히 짜증이 나기도 하고, 재테크에 관심없던 과거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강남이 싫어 강북으로 온 나였지만, 이제는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이 된 강남으로 어떻게 갈아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결혼한 지 10년 넘도록 재테크와는 무관하게 살아오던 나의 평온한 삶에 친구의 강남 아파트와 그 가격 변화 경로가 큰 감정의 파도를 일으킨 것이다.


물론 강북에라도 집이 있어 다행이었다. 아이들 교육 문제로 우리 집을 세주고 다시 남의 집을 전전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서울 한가운데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위안이었다. 그렇지만, 집이 있다는 안도감은 이내 상대적 박탈감에 파묻혀 버렸고, 나의 무지로 인해 자산을 불릴 좋은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은 떠나질 않았다.


강남 아파트


회사에서도 부동산 광풍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 후배는 명문대학을 나와 회사에서도 촉망받는 인재였는데,  해외주재원으로 근무하는 사이에 집값이 너무 올라 귀국해서는 서울 외곽에 집을 구해야 했고 이래저래 후회막심이었다.


그동안 공부만 하고, 일만 열심히 한 게 너무 후회돼요.

진작 부동산에 관심 좀 갖고 해외 가기 전에 집을 사놓았어야 하는데...

 

그 후배 말고도 사내 여기저기서 부동산, 주식과 관련된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어느 부서 누구는 수년전 남편 반대로 집 살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고 하더라.

어느 부서 누구는 시어머니 덕분에 분양을 받았는데 마침 그 지역이 개발되어 떼돈 벌었다더라.

어느 부서 한 직원은 주식으로 하루만에 월급 두 배를 벌어 간식을 쏘았다더라.


때로는 관심과 실력, 때로는 운에 기초한 한 순간의 선택이 비슷비슷하게 살아왔던 사람들의 경로를 크게 갈라놓고 있었다. 회사에서 처음 만나 자기 소개를 할 때에도 어느 동네 사는지, 사는 집이 자가인지 전세인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는가 하면, 신입사원들은 우리 때와는 달리 입사하자마자 칼퇴근하며 자기계발, 재테크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봉인 회사에서 정말 지혜롭고 현명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요컨대 부동산 광풍과 뒤이은 주가 폭등은 그야말로 '부의 재편' 내지 '부의 불균형 배분'을 가져왔고, 나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소소한 삶 뿐 아니라, 학벌, 직급, 능력 위주로 돌아가던 기존 질서도 큰 혼란에 빠뜨렸다. 명예보다 '실속', 지위보다 '실리'가 중요한 가치로 부상했다.


곧 떨어질거야. 집값이 이게 말이돼?

경제가 이렇게 어려운데...다 거품이지


이런 생각으로 지난 8년 내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 동안, 자산 상승기 한 사이클이 돌았다. 계속 이렇게 넋놓고 있다가는 10년 후 쯤이면 재테크에 관심있는 우리 또래 뿐 아니라, 똑똑한 신입사원들에게도 뒤쳐질 것이 분명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나도 해보자.

지금 시작해도 다시 역전 드라마를 쓸 수 있는 게 재테크이니까.


그렇게 나의 돈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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