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하다] 자본감시
DL이앤씨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받고 부실하게 대응한 것으로 드러났다. DL이앤씨는 갑질 조사 절차를 따르지 않고 피해를 호소하는 노동자를 끝내 해고했다.
DL이앤씨는 국내 건설사 시공 능력평가에서 5위 안에 드는 굴지의 대기업이다.
갑질 피해자 이모 씨는 2000년부터 2019년까지 이 회사 현장 건축직으로 근무하며 사원에서 부장까지 승진했다.
이 씨는 2019년 회사 권유로 고객서비스(CS, 하자보수관리) 전문직으로 다시 입사해 직급이 차장으로 낮아졌다. CS 경험이 없는 이 씨에게 민원이 많은 영종도 현장 배당은 가혹했다.
같은 부서 직원들은 건축직에서 전직했다는 이유로 노골적으로 괴롭혔다. 회사는 이 씨를 보호하지 않았다.
이모 씨가 마창민 DL이앤씨 대표이사 비서실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을 알린 것은 2023년 9월 7일. 다음날인 8일 경영진단팀(감사팀)이 사건을 접수했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접수하거나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한 경우, 지체 없이 당사자 등을 대상으로 사실관계를 객관적으로 조사해야 한다.
그러나 사측은 법을 지키지 않았다. 고용노동부 직장 내 괴롭힘 대응 절차에 따르면 당사자 조사는 대면 조사가 원칙이다. 이중, 피해자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감사팀은 이 씨를 만나지 않았다. 피해자 대신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만 면담하고 서로 주장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피해자 의사와 요청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데다 직장 내 괴롭힘 조사에 착수하지 않은 것은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이 절차를 위반하면 500만 원 이하 과태료에 해당한다.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면 안 된다는 근로기준법 또한 지켜지지 않았다. 이 씨는 제보 직후 사내 각 사무실과 본사에 소문이 돈다는 사실을 알았다.
협력업체들도 이 씨에게 제보와 관련해 안부를 물을 정도였다. 비밀누설 금지 위반 역시 500만 원 이하 과태료를 내야 한다.
사측 조사에 신뢰도가 떨어진 이 씨는 조사자 변경을 요구했으나 사측은 받아들이지 않은 채, 제보 한 달 만인 10월 6일 사건을 종결했다.
이 씨는 사건이 종결되기도 전에 직장을 떠나야 했다. DL이앤씨는 이 씨를 계약 만료 사유로 사건 접수 열흘 뒤인 9월 18일 퇴사시켰다.
퇴사일까지 근로기준법이 보장한 피해노동자 등을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유급휴가 명령, 근무장소 변경)는 없었다.
억울했던 이 씨는 첫 제보 후 5개월 가량 지난 2024년 1월 12일 이해욱 DL이앤씨 회장에게 직접 피해 사실을 알렸다. 이 내용은 감사팀에 전달됐다.
회장에게 제보가 들어가고 나서도 DL이앤씨 대응은 여전히 허술했다.
이 씨는 공정한 조사를 위해 외부 감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앞서 제대로 된 조사 없이 조직 내에서 사건을 종결시켜버렸기 때문이다.
사측은 ‘직장 내 괴롭힘 조사 방향은 신고자 의사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을 무시했다.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조사위를 끝내 꾸리지 않고 감사팀이 직접 이 씨와 가해자들을 조사했다.
DL이앤씨는 첫 신고부터 8개월 가량 흐른 2024년 6월 가해자들을 징계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 확인됐을 때 가해자에게 지체 없이 징계, 근무장소 변경 등 조치를 해야 한다는 근로기준법에 반한다.
그마저도 징계 이유가 직장 내 괴롭힘 명목이 아니었다. 징계하기 전 해당 조치에 대해 피해자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점도 지키지 않았다.
DL이앤씨 언론홍보팀 관계자는 “대면이나 조사를 더 하려면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본인과 연락이 잘 되지 않고 (가해자와) 양쪽 주장이 달라 어느 편을 들어줄 수 없는 입장이어서 자체 종결한 사안”이라며 “처음 그분(이 씨)이 보내준 자료에도 보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내용은 따로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모 씨가 당한 직장 내 괴롭힘은 이렇다.
2022년 1월 이 씨는 업무 이행 중 얼굴 부상으로 휴가를 요청했으나 상사 A씨가 거부했다. 이후 출근앱을 찍게 유도했고 사비로 물품을 구입하게 지시했다.
특히 A씨는 2023년 3월부터 폐기물(페인트) 불법 처리를 지시했다. 이 씨는 사내 감사팀에 폐기물 등 비리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했지만 비리행위만 처리됐다.
또 다른 상사 B씨는 2020년 2월 이 씨에게 현금 4천만 원을 빌렸다. 같은 해 4월부터 본인 배우자의 수면제가 필요하다며 3~4차례 수면제 대리 처방을 요구했다.
소장급인 C씨는 2022년과 2023년 3월께 아파트 고객만족도 조사를 허위로 조작하라고 부당하게 지시했다.
또 다른 소장급 D씨는 2020년 9월 휴가 이후 업무 복귀 중 다친 이 씨가 유급병가를 신청하자, 병가를 받으면 재계약할 수 없다며 취소시켰다.
직장갑질119는 A, B, C씨는 직장내 괴롭힘이 맞다고 결론냈다. D씨는 업무상 재해가 아니더라도 유급병가를 보장한다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DL이앤씨는 업무상 재해가 아니더라도 유급병가를 보장한다. 결국 D씨도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하는 것.
중부고용노동청도 2025년 2월 10일 A·B씨는 직장 내 괴롭힘이 맞다고 판단했다. C·D씨는 해당하지 않는 것 같다고 결정했다.
사측은 직장 내 괴롭힘 조사위를 꾸리진 않았지만 이미 이 씨와 부서가 달라졌고 충분히 조사해 A·B·C·D씨를 부당지시, 비리 등 사유로 모두 징계 조치했다고 밝혔다.
끝까지 근로기준법 위반(직장 내 괴롭힘)은 인정하지 않았다.
뉴스하다는 DL이앤씨에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규정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대해 DL이앤씨 언론홍보팀 관계자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된 규정은 대외비라서 공개할 수 없다”며 “저희는 노동부라든가, 여러가지 형태 기관 쪽에 문의해서 내린 결론인데, 남들에게 주관적으로 비춰서 오해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씨는 2024년 6월부터 현재까지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이모 씨는 직장내 괴롭힘 피해뿐 아니라, 사측으로부터 부당대우를 받았다.
2020년 10월 이 씨는 회사로부터 이상한 제안을 받는다. 현재 직급인 차장이 아니라 더 낮은 주임으로 계약하자는 내용이었다.
계약기간도 3개월이었다. 함께 일을 시작한 지 20년이 된 직원에게 수습기간을 적용했다. 사측은 인사 평가결과가 나빠 재계약은 안 되고, 직급과 업무가 달라지는 신규계약이라고 했다.
이 씨는 사측이 인사 평가결과를 악용했다며 문제제기했다. 인사평가를 근거로 직급을 낮춘 시점이 석연치 않기 때문.
사측은 전문직은 인사평가 점수가 3년간 평균 C 이하면 권고 퇴직 사유가 된다는 이유를 들었다. 그러나 당시 이 씨는 전문직으로 입사한 지 1년 6개월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건축직에서 전문직으로 신규 입사한 것이라며, 사측은 성과금도 안 줬다. 그런데 3년치 인사 평가결과는 인정한 셈이다. 입맛에 따라 기준을 고무줄처럼 적용했다.
또 이 씨는 저조한 인사평가 결과에 따른 교육이나 면담 등 사전 피드백을 받지 못했다.
DL이앤씨 근로계약서에는 ‘인사평가 성적이 저조할 경우 노동자에게 관련 교육을 실시 할 수 있고, 교육 후에도 인사평가 성적이 개선되지 않을 경우 근로계약을 해지 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 씨는 처음 신규계약을 거절하며 임원면담 등을 요청했으나 무산됐다. 사측은 계속 제안했고 끝내 생계 등을 이유로 직급이 낮아져도 같은 업무를 하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이 씨는 직급 하향이 인사 평가결과에 따른 게 아니라, 사측과 유급병가를 두고 마찰이 있었기 때문이라 봤다.
이 씨가 2020년 9월 휴가 복귀 중 상해를 입었고 유급병가(30일)를 신청했다. 그러나 사측(소장)은 유급병가를 내면 재계약이 어렵다고 압박했다.
유급병가를 취소한 이후 이 씨에게 직급을 낮춰 신규계약을 제안한 것. 특히 3개월 계약 만료 후, 6개월 단기계약이 또 이어졌다.
DL이앤씨 쪽도 낮은 직급과 다른 업무로 계약을 제안한 것은 인정했다. 다만, 차장 직급으로 하는 업무는 인사 평가결과 더 이상 맡길 수 없었던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이는 인사 평가결과 근무태도 불량, 역량 부족 등에 따른 정당한 조치였다고 DL이앤씨 쪽은 주장했다.
홍봄 기자 spring@newshada.org
이창호 기자 ych23@newshada.org
〈기사보기〉
# 뉴스하다는 권력과 자본의 간섭 없이 진실만을 보도하기 위해, 광고나 협찬 없이 오직 후원회원들 회비로만 제작됩니다. 정기후원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세요.
# 정기후원과 상시후원은 아래 링크에서 가능합니다.
https://www.ihappynanum.com/Nanum/B/5XHUZ07UV0
#DL이앤씨 #e편한세상 #직장내괴롭힘 #직장갑질119 #고용노동부 #계약직 #무기계약직 #정규직 #전문직 #노동자 #피해노동자 #가해자 #이해욱 #회장 #마창민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