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점
내 허벅지에는 새끼손톱만 한 점이 있다. 태어날 때부터 있던 점이라고 하는데 무릎에서 10cm 위, 바깥쪽에 자리를 잡아 키가 크고 살이 찌듯 점도 14년째 자라고 있다. 반바지를 입고 서 있을 때는 보이지 않지만, 앉으면 빼꼼 얼굴을 내미는 이 점이 거슬리기 시작한 건, 올해 중학교에 입학해 교복을 입으면서부터다. 밴드도 붙여봤고, 엄마의 화장품 중에서 컨실러라는 것도 발라 봤지만, 밴드는 살에 끈적거리는 걸 남겨 상처를 만들었고, 컨실러는 커버력이 약했다. 아빠의 어깨에 있는 엄지손톱만 한 점을 보고 나는 결심을 굳혔다.
엄마에게 성형외과에 가자고 했다. 피부과가 아니라 성형외과에 가자고 한 건 2년 전쯤 엄마와 이미 피부과 상담을 받아봤기 때문이다. 점을 레이저로 없앤다는 것을 알고 상담받은 건데, 피부과 의사 선생님은 작은 메모지에 ‘ㅇㅇ성형외과’라고 병원 이름을 적어줬다. 점의 사이즈가 좀 크니까 성형외과에서 잘라내는 수술을 받는 게 좋겠다고. 그때만 해도 생살을 잘라내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두려움이 너무 커 그냥 넘겼는데, 이제 때가 온 것이다. 점과 헤어질 결심을 할 때!
엄마와 성형외과에 갔다. 50대 후반쯤 돼 보이는 남자 의사 선생님께 상담을 받았다. 내 점에 대한 서사를 주저리주저리 풀어내는 엄마의 얘기를 듣던 의사 선생님은 갑자기 밑도 끝도 없는 말을 했다.
“여드름약 발라요?”
‘으응? 점 제거 수술을 상담하려고 왔는데 갑자기 여드름?’
나는 방심하고 있다가 어퍼컷을 맞은 것처럼 정신이 혼미해졌다.
갑자기 바빠진 의사 선생님은 컴퓨터 모니터와 전공 서적에서 단계별 여드름 환자 사진을 보여주면서
“이거 봐봐요. 이렇게 심한 환자도 약 바르고 관리해 주면 여드름 없앨 수 있어요!”
여드름 얘기에 낚인 엄마는
“그러니까요. 집에 처방받은 연고도 있는데 처음에만 바르다가 꾸준히 바르지도 않고 얼굴 만지지 말라고 해도 자꾸 손을 대서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의사 선생님과 엄마는 마음이 맞아 대화가 끊기지 않았다. 둘 사이에서 내 여드름 얘기를 들어야 하는 나는 만신창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이 선생님 진짜 뭐야...... 왜 물어보지도 않은 내 여드름을 가지고 그래......’
어쨌든 의사 선생님은 다급하게 여드름 상담을 이어갔다.
“집에 어떤 약 있어요?”
“아... 오래돼서 약 이름 기억이 안 나는데 ㅇ으로 시작됐던 것 같아요. 무슨.... 팔렌?”
파일에 껴 둔 약 사진을 하나씩 보여주며
”이거요? 이거? 이거 아니에요?......
그럼 우선 이걸로 하나 처방해 드릴게요.
(다시 약 사진을 보여주며) 이건 저녁에 한 번 바르시고 이건 아침, 저녁으로 발라줘요.
여드름! 약으로 없앨 수 있어요!!”
'뭐지 이건... 광고 카피인가? 약장사야?'
“네! 이번엔 좀 잘 발라보면 좋겠네요!!”
그때 대답하는 엄마의 눈빛은 사이비종교에 빠진 신도 같았다. (엄마도 어릴 때 여드름이 많이 났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의사 선생님의 말
“우리 딸도 여드름이 심했는데 얼굴 만지지 말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안 들어요.
(그리곤 나를 보시더니) 나중에 진짜 후회해요! 나중에 흉터 없애려면 정말 정말 힘들어요. 약만 잘 바르면 없어지는데...... 약 잘 바르고, 얼굴 절대 만지면 안 돼요!!”
“네......”
나만 빼고 진지한 여드름 상담에서 나는 겨우 이 한마디를 했다. 점 수술 상담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시술 날짜를 잡고 여드름약 처방전을 받아 병원을 나섰다.
학교에서 체육대회가 있어 신체 활동에 지장 있을까 봐 기존에 약속했던 점 수술 날짜를 몇 주 연기했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의사 선생님. 이번에도 선생님은 인사도 없이 물었다.
“여드름 약 잘 바르고 있죠?”
“네......”
(아 증말... 또 보자마자 여드름 얘기!)
점 제거 수술이 시작됐다. 수술실에는 엄마와 같이 들어갈 수 없었고, 나는 수술실 침대에 누웠다. 다리 부분이라 수술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했는데, 궁금하고 아쉬웠다. 그런 마음도 잠시, 의사 선생님은 마취 주사를 놓았다.
‘오 마이 갓!’
그 많은 예방주사를 맞아봤고 치과 치료도 해봤지만 이렇게 아픈 주사는 정말 처음이었다. 주사 바늘로 다리를 막 헤집는 것 같은 느낌. 그 후로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 내 것 같은 다리 위로 뭔가가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을 느끼며 30분가량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 수술을 안 한다고 할 수도 없었고, 어쨌든 점과는 작별하고 싶었기에. 수술을 마친 후 꼼꼼하게 붙인 붕대와 반창고를 보며 병원을 나섰다.
사흘에 한 번 정도 병원을 찾아 드레싱을 받았고, 일주일 후 실밥을 뽑으러 갔다. 의사 선생님은 이마에 조명이 있는 머리띠 같은 걸 쓰시고 실밥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실밥을 제거한 선생님은 흉터가 작게 남도록 하기 위해 절제 부위가 완전히 붙지 않은 상태에서 실밥을 제거했으니 당분간 과격한 운동을 피하고 드레싱과 테이핑 작업을 잘해야 한다고 세심하게 방법을 설명해 주셨다. (테이핑 작업은 상처 부위가 벌어지지 않도록 의료용 테이프로 잘 붙여주는 것이다.) 엄마는 인턴 학생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의사 선생님은 처음 지급한 수술 비용 외에는 어떤 비용도 받지 않았다. 사흘에 한 번꼴로 드레싱, 실밥 제거, 테이핑 상태 점검을 받으러 간 게 벌써 대여섯 번은 넘는 것 같은데 매번 그냥 가시라고 하고, 혹시 필요할지 모를 반창고나 의료용 테이프도 넉넉히 챙겨주셨다. 몰라서 부탁하지도 못했는데 잘라낸 점의 조직검사도 의뢰해서 알려주셨다. (조직 검사 결과 양성이면 먼저 낸 수술 비용을 돌려받고 저렴한 비용만 내면 된다며. 물론 양성은 아니었지만) 늘 내 얼굴의 여드름을 지켜보면서.
수술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점을 중심으로 마름모 모양으로 잘라 꿰맨 수술 자국은 생각보다 컸다. 의사 선생님은 상처가 완전히 나으면 흉터 제거에 도움이 되는 레이저 치료를 하자고 하셨다. 이것도 무료로 해주신다고. 그동안 선생님의 진심 어린 마음을 느낀 엄마는 이날 쿠키 세트를 선물로 드렸다. 나는 병원 예약시간도 늦었는데 쿠키 선물을 사러 가는 엄마에게 돈 없다고 하면서 왜 그런데 돈을 쓰냐고 툴툴거렸었다. 그렇게 산 엄마의 쿠키 세트를 받은 의사 선생님이 고개를 떨구고 수줍게 미소 짓는 걸 봤다. (60대 남자도 이렇게 웃을 수 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그 미소에서 뿌듯한 마음? 보람 같은 게 보였다.
그동안 성형외과는 필수의료분야가 아니라는 생각에 선입견이 있었던 것 같다. 우연히 의사 선생님의 병원을 인터넷에 검색해 봤는데 한 신문기사가 눈에 띄었다. ‘조깅 중에 심정지 환자를 구한 의사 선생님...’ 의사 선생님이 묻지도 않은 내 여드름에 대해서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도 그런 마음과 비슷했을까? 마음속에 몽글몽글한 뭔가가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심정지 환자를 구한 선생님 기사를 본 엄마의 호들갑은 하늘을 찔렀다. 나중에 내가 쌍꺼풀 수술을 해야 하면 이 병원에서 하는 게 어떻겠냐며.
"엄마...... 쫌!"
다리를 휘젓던 마취주사의 통증이 생생한 지금은 어떤 수술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하지만 점이 사라진 다리를 볼 때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언젠가 쌍꺼풀도 할 것 같긴 한데, 그때도 그 선생님은 메스를 잡으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