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 달에 한 번 안과에 검진하러 간다. 밤에 잘 때 눈에 끼고 자면 시력이 좋아지는 드림렌즈를 맞춘 후부터 계속하고 있는 일이다. 드림렌즈는 콘택트렌즈처럼 생겼는데 낮에는 끼지 않고 밤에 자는 동안에만 낀다. 자는 동안 렌즈가 각막을 눌러 수정체에 상이 맺히는 거리를 조절하는 원리로 시력이 잘 나오게 한다고 한다.
드림렌즈를 쓴 지는 3년 정도 됐다. 처음 렌즈를 맞출 때 시력이 0.3 정도밖에 안 나왔는데 렌즈를 한 달 정도 쓰니까 1.0까지 나왔다. 참 좋은 세상이다. 그러다가 최근 1년 정도 점점 시력이 안 나오더니 지난번 검진 때는 0.6 오늘은 0.5다. 의사는 지난번 검진 때부터 렌즈 교체가 필요한 것 같다고 얘기했다. 보통 3년 정도 렌즈를 사용하면 교체를 한다고. 문제는 렌즈 가격이다. 양쪽 합해서 100만 원.
아빠는 그냥 안경 쓰면 안 되냐고 하지만 나는 안경이 싫다. 눈앞에 걸고 다니는 게 불편하기도 하고 아무튼 싫다. 사실 밤에 잘 때마다 렌즈를 끼고 바쁜 아침에 렌즈를 빼고 하는 게 더 귀찮고 불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생각해 보면 그냥 안경을 쓴 내 모습이 싫은 거다. 짠순이 엄마는 의외로 내가 하고 싶으면 하라고 했다. 3년 동안 100만 원 쓰는 셈이니까 1년이면 대략 30만 원 1달이면 3만 원인 셈이라고. 대신 내 용돈을 보태서 하라고...... “으응?”
여하튼 이 안과 의사 선생님은 3년 동안 참 한결같이 무뚝뚝하다. 올 때마다 자리를 옮겨가며 받는 검사가 4~5개는 되는데 검사 결과에 대해 상세하게 말해준 적이 없다. 나이가 많아 보이지도 않고 우리 엄마보다 분명 젊어 보이는데. 매번 불편한 침묵을 깨고 답답한 엄마가 우물을 판다. 엄마는 내 시력을 묻고 렌즈 교체를 하는 게 좋겠냐고 물었다. 그런데 뭐지...... 의사가 웃으며 답하기 시작한다.
“아~ 그럼요!”
“아이가 4학년 때부터 렌즈를 썼는데 중학생이 된 성장기 이후에도 드림렌즈가 효과가 있을까요?”
“잠을 7~8시간 정도 충분히 자주기만 하면 효과가 있어요~”
“렌즈 교체할 경우에 대해서 렌즈 담당 선생님에게 미리 상담을 받아 봤는데 3주 정도 안 끼고 시력을 측정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학교 수업에 지장이 있어서 교체하게 되면 방학 때 해야 할 것 같아요."
“네~!”
추임새 같은 답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네......
“그럼 여름 방학하면 3주 정도 렌즈를 안 끼고 와서 시력검사받고 교체 진행해 볼게요”
“네~ 그렇게 하세요!”
의사 선생님은 우리가 진료실을 나갈 때까지 미소 띤 얼굴로 바라보며 눈인사까지 한다. 잠깐이었지만, 그 순간 엄마와 내 눈이 마주쳤다. 병실을 나와서 수납하길 기다리며 엄마가 말했다.
“저 선생님 웃는 거 3년 만에 처음 봤어.”
“엄마도 그 생각했어? 나도 그랬는데!”
우리는 다시 눈이 마주쳤다.
“왠지 기분 나빠.”
“나도.”
잘 모르지만 의사라는 직업도 어쩔 수 없는 밥벌이인가 보다 생각했다.
수납을 마치고 엘리베이터에 탔는데, 진한 선글라스를 쓴 할머니 한 분이 우리를 뒤따라 엘리베이터에 타셨다. 나는 순간 멈칫하면 뒤로 물러섰다. 엘리베이터는 좁지 않았다. 그 할머니의 옷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무릎 기장의 표범 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원피스와 한 벌 같은 표범 무늬의 레깅스도 입고 있었다. 즉, 목 아래부터 발목까지 모두 표범 무늬가 그려져 있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자연관찰 책을 잘 못 봤다. 과학책에 개구리, 뱀 이런 사진이 나오면 손만 닿아도 내가 정말 개구리나 뱀을 만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지우개로 가린 채 보곤 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또 다른 할머니 한 분이 열림 버튼을 누르며 들어오셨다. 이 할머니는 진한 빨간색 장미가 덩굴진 블라우스 입고 있었다.
이번에는 엄마가 뒤로 한발 물러섰다. 우리는 다시 눈이 마주쳤다. 엄마는 목 뒤쪽을 긁적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주차장으로 걸어가며 엄마가 말했다.
“저기 아까 그 엘리베이터에서 표범 무늬 원피스랑 레깅스 세트로 입은 할머니 봤지? 빨간 장미블라우스 입은 할머니도 그렇고...... 나이 들면 시력이 안 좋아져서 그런가. 그건 좀 과한 것 같더라...... 혹시 내가 나이 들어서 그런 거 입으면 네가 말려줘”
풀이 죽은 듯도 하고 왠지 반성하는 듯한 목소리다ㅋㅋㅋ
“어~ 걱정하지 마. 내가 불태울 거야!”
우리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는 사이가 있다는 게, 그게 엄마라는 게 좋다.(내일 또 얼마나 치열하게 싸울지 몰라도.) 마음이 간질간질하게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