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GIRL>
엄마가 나에게 전화하지 않은 게 오늘로 꼭 일주일째다. 내가 한가할 시간을 알고 시간 맞춰 전화하는 엄마였는데 일주일째 내가 전화를 걸고 있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자존심이 상하는데, 엄마는 나의 전화를 바쁜 척 끊어버리고 있다. 그러고 보니 카톡 메시지를 먼저 보내지 않은지도 오래됐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모티콘들이 올라오던 톡방은 요즘 적막함만 가득하다. 전화가 걸려오지 않은 건 일주일쯤 되었지만, 이상한 징후가 포착된 건 사실 더 오래됐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에게 새 옷을 선물하고, 맛있는 식당을 알게 되면 엄마 나와 가장 먼저 가고 싶어 했다. 내가 좋아할 것 같은 영화가 나오면 먼저 알아보고 데이트를 제안했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내 기분을 가장 알아주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늘 살뜰히 챙기는 엄마였는데, 엄마가 이제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엄마의 눈은 그놈만 향하고 있다.
그놈은 한마디로 정말 밥맛이다. 남자 자식이 무슨 애교를 그렇게 부리는지 눈뜨고 못 봐줄 지경이다. 목소리는 어떻게 하면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미스터리다. 구강구조에 이상이 있는 게 분명하다. 못하는 것도 많고 구멍도 많다. 그놈의 그런 점이 엄마를 끌어당긴다. 놈은 그 사실을 알고 일부러 더 그러는 것 같기도 하다. 최근 그놈이 아팠다. 아픈 듯 고통스러워하던 그놈이 나를 바라보며 웃는데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아픈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 엄마를 보면서, 그만큼 내게는 소홀한 모습을 보면서 나는 깨달았다. 엄마가 나보다 그놈을 사랑한다는 것을. 사람 마음속에 담을 수 있는 사랑의 양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그놈을 향한 사랑이 클수록 나를 향한 사랑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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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
둘째가 아팠다. 감기를 심하게 앓았는데 아침에 일어나 걷지 못하겠다고 하더니 다리를 절었다. 놀란 마음에 애를 업고 정형외과에 갔다. 의사 선생님은 초음파로 보시더니 고관절활액막염이라고 했다. 감기 후에 바이러스가 고관절을 감싸고 있는 활액막 쪽으로 가서 통증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일시적인 것이면 일주일 내로 회복이 되지만 증상이 오래가면 안 좋은 징후일 수도 있으니 주의해서 봐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둘째는 첫날보다 통증이 줄었다고 했지만, 이번에는 무릎이 아프다고 했다. 다시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이 병의 특징 중 하나가 바이러스가 관절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통증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했다. 일주일은 지켜보자고 했다. 셋째 날 아들은 발가락 관절이 아프다고 하다가 다시 고관절 통증을 호소했다. 일주일이면 좋아진다고 했는데 2주가 지나도록 차도가 없었다.
병원을 찾았다. 혹시 안 좋은 징후가 있을 수 있으니 MRI를 찍어보자고 했다. 겨우 열 살인 아이가 40분가량 진행되는 MRI 검사를 움직이지 않고 하기는 힘들어 보여서 검사실에 같이 들어가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40분을 버텼다. 귀가 먹먹하고 온몸이 뻐근했다. 다행히 괴사 같은 나쁜 징후는 없었다. 계속 신체활동을 줄이고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아들의 다리 통증은 4주째 이어지고 있다. 신체활동을 줄이라고 해서 방과 후에 테트리스 블록처럼 빈틈없이 짜 둔 태권도학원과 축구교실을 중단했다. 아들의 비는 시간은 내가 채워줘야 헸다. 좋아지기만 한다면 뭘 못하겠는가. 아픈 다리로 학교에 가 주고 다른 학원들도 가주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아들 병간호를 하면서 네 살 위 딸에게 통 신경을 못 쓰고 있다. 학교 끝나고 학원 차를 기다리는 5분 남짓 나는 매일 딸과 통화를 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선생님 수업 이야기, 급식 반찬으로 뭐가 나왔는지,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 하지 못할 친구 욕도 딸은 스스럼없이 내게 다 쏟아냈다. 학교에서 학원 갈 때 먹을 간식도 못 챙겼다. 아침에 챙겨가라는 말로 대신했는데 딸은 오늘도 가져가지 않았다. 어제 옷장을 뒤적거리며 여름옷을 찾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작년에 산 옷이 대부분 작아졌을 텐데, 올해 입을 옷을 못 샀구나' 생각했으면서도 오늘 주문을 못했다. 온 정신이 아픈 아들에게 쏠려 있어 그런지 저녁 반찬도 맛이 없는 것 같다. 사실 늘 먹던 반찬이 크게 달라진 것 같진 않은데 사람 마음이 음식을 향하지 않아 그런지 더 맛이 없게 느껴진다. 모든 게 못마땅한 딸의 입이 나와 있는 건 며칠 전부터 느끼고 있었지만, 나는 이해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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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ND>
아침에 일어났는데 갑자기 왼쪽 다리가 아팠다. 힘이 쭉 빠지고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다. 무서웠다. 엄마는 나를 업고 병원에 가셨다. 의사 선생님은 감기바이러스가 관절로 갔다고 했다. 다음날은 아픈 건 덜했지만 무릎이 아팠다. 그다음 날엔 발가락이 아팠다. 첫날처럼 통증이 심하진 않지만,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기분 나쁜 통증이 느껴졌다. 잘 쉬고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2주 이상 낫지 않아 MRI라고 하는 검사도 했다. 공사장 소음보다 시끄러웠다. 나는 커다란 헤드폰을 쓰고 있었지만 엄마는 귤처럼 생긴 스펀지 두 개를 귀에 끼고 내 손을 잡고 옆에 있어 주셨다. 사실 혼자 검사받으라고 했으면 못했을 것 같다.
4주가 지났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태권도 학원도 못 가고, 축구 교실도 못 가고 있다. 하루가 재미가 없다. 태권도 학원차를 타고 학원에 가는 친구들이 부럽다. 나는 이번에 알게 됐다. 움직이지 않고 뛰지 않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 중 하나라는 것을.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태권도 학원에 가지 않는 시간에 엄마가 오셔서 시간을 보내주는 것이다. 책을 읽으라고 가져올 때도 있지만, 망고주스를 사주시거나, 아이스크림을 사주시기도 한다.
엄마에게 누나의 전화가 왔다. 마침 내가 영어학원에 갈 시간이다. 엄마는 누나의 전화를 바쁜 듯 끊으셨다. 며칠 전 누나는 내가 아프다고 젤리를 사다 줬다. 평소 누나랑 많이 싸우기도 하지만, 고맙고 미안했다. 어제는 저녁 먹던 도중 누나가 나를 쳐다봤는데 나는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웃었다. 그런데 누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마음이 안 좋다. 아무튼 빨리 태권도 학원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