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에 입학한 후 가장 큰 변화로 느껴지는 것은 단연 ‘시험’이다. 초등학교 때 본 시험은 생활기록부에 점수가 남지 않는 단원평가 정도이고, 문제도 어렵지 않아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중학교는 다르다. 수업시간에 배운 과목들을 사나흘에 걸쳐 오직 시험만 보는 시험 기간이 있는 것부터 충격이다. 한 학기에 1차 고사, 2차 고사라는 지필 시험을 두 번 보는데 엄마는 중간, 기말고사라고 불렀다. 시험 때마다 과목별로 수행평가라는 것도 진행하는데, 이것도 성적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해서 긴장된다. 고등학교에 가면 이런 방식의 시험점수, 내신성적이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을 결정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이제 시작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특목고, 자사고 진학을 생각하는 경우라면 중학교 때 주요 과목 성적이 고입에 영향을 준다고 하니 중학교에서 보는 시험이 내 앞날을 결정할 첫 관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지난번 본 1차 고사는 첫 시험인 탓인지 어이없는 실수도 있었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게 휩쓸려 시험을 봤다. 문제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고, 무엇보다도 전체 문항의 3분의 1 정도 차지하는 서답형, 서술형 문제가 어렵게 느껴졌다. 이번 2차 고사는 지난번 겪은 실수를 만회하고 잘 봐야지 마음먹고, 지난번보다 일찍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엄마와 정한 목표점수를 받으면 백화점에 가기로 했는데 이것도 생각보다 꽤 큰 동기부여가 됐다. 아빠는 전 과목 100점을 맞으면 내가 사랑하는 뷔페에 가자고 미끼를 던졌는데, ‘지금 나를 놀리는 건가?’ 하는 생각만 든다.
학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도 여간 뜨거운 게 아니다. 시험 몇 주 전, 교무실 문 앞에 “Don’t do that 제이미! 교무실 들어오지 않아요”라는 문구가 붙었다. 우리가 제이미가 됐다. 시험 문제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문구 옆에는 ‘티니핑’ 캐릭터를 본 따 만든 ‘시험핑’ 그림도 같이 붙어있었다. 지난번 1차 고사 때는 교무실 문에는 “폭싹 잠갔수다” 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담임 선생님들의 경쟁도 뜨겁다. 1차 고사에서 우리 반은 9개 반 중에 8등을 했다. 우리 뒤를 지켜준 반, 꼴등 한 반의 친구에게 듣기로 그 반 담임은 한껏 고무되셨다고 했다.
“얘들아! 우리 지난번 시험에서 꼴등 했잖아. 선생님은 욕심 없어. 제발 꼴등만 면하자! 너희들 이번에 체육대회도 1등 하고 지금 반 분위기 너무 좋은 것 알지. 이 분위기 이어가면 우리 꼴등 면할 수 있어!”
우리 반 담임 선생님도 지지 않으셨다.
“얘들아! 선생님은 지금 너희들이 너~~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 7반 체육대회 1등 하고 지금 분위기 좋은 거 알지? 우리도 분발하자! 지금처럼만 하면 돼!”
담임 선생님은 작은 포장지에 “1-3반 시험 잘 보자”라는 스티커가 붙인 과자선물세트를 반 친구들에게 선물하셨다. 담임 선생님을 꼭 빼닮은 귀여운 캐릭터 스티커도 같이 붙어있었다. 그 과자 선물을 받자 나는 전쟁에 나가는 군인들에게 배급되는 식량을 받은 것처럼 마음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시험을 앞둔 우리 반 선생님의 걱정은 하나 더 있었다. 선생님은 중국어를 가르치시는데 선생님이 되신 후 7년 동안 고등학생들만 가르치시다가 중학교에는 이번에 처음 오셨다고 했다. 아직 미혼이시고, 늘 다정하고 상냥한 말투, 단정한 원피스와 단정하게 자른 앞머리, 어깨 길이의 긴 머리가 잘 어울리는 분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기쁨이와 슬픔이가 섞인 듯한 인상을 주는 귀여운 선생님. 문제는 지난번 시험에서 1학년 중국어 평균점수가 50점대였다는 것이다. 이번 시험에서 중국어 평균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문제를 쉽게 내실 거라고 했다. 공부 "하면 된다"고. 선생님은 수업시간에도 길 잃은 어린양들을 한 마리도 놓치지 않고 끌고 가기 위해 노력하셨다.
“얘들아! 중국어로 오늘은 진티엔이고 내일은 밍티엔, 모레는 호우티엔이야. 진티엔은 금일, 밍티에는 명일로 외우면 발음이 비슷해서 잘 기억하겠지? 그런데 호우티엔 이게 좀 낯설지? 호우티엔은 ‘호우~~’ 뭔가 멀리 던지는 느낌이 들지 않니? 호우~~!! 그래서 제일 먼 모레구나, 이렇게 생각해! 알겠지!!!”
선생님의 간절한 마음이 “호우티엔~~” 발음에 담겼다. 단정한 원피스를 입고 단정한 헤어스타일을 한 선생님은 한 손을 어깨 위로 높이 들고 점프하며 공 던지는 흉내를 내셨다. 선생님의 저 모습을 기억한다면 “호우티엔”은 기억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드디어 시험 첫날 아침. 엄마는 노란색 배경에 빨간색으로 곰돌이인지 고양이인지 모를 그림이 그려져 있고 사각형 테두리에 ‘나 자신을 믿어’ ‘다 끝장나게 잘할 것이다’ ‘만점 파이팅!’ ‘해낼 수 있다’ ‘원하는 점수가 나올 것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귀여운 부적 이미지를 문자로 보내주셨다. 나는 이 귀여운 부적 이미지를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바꿨다. 부적 덕분이었을까, 수학시험에서 답안지 마킹을 마치고 시간이 남아 다시 한번 답안지를 보는데, 조금 전 수정테이프로 수정한 답안의 문항이 6번이 아니라 9번인 것이었다. 남은 시간이 5분도 안되는데 답안지를 바꿔야 하는 상황. 갑자기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떨리는 손으로 답안지 다시 쓰고 나니 진이 다 빠졌다. 다음 날 아침에는 전날 시험 본 것 중에 100점 맞은 시험지를 내 머리에 비볐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그러고 싶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네 살 어린 남동생이 말했다.
“누나 내 꺼 파샤프(*대파 모양 샤프) 빌려줄까? 나는 이걸로 시험 보면 100점 맞더라”
동생의 진지한 표정을 보자 시험지를 머리에 비비고 있는 자신이 멋쩍어졌다.
나흘간의 시험이 끝났고 과목별로 가채점을 할 때마다 우는 친구, 좋아서 뛰는 친구들이 꼭 있었다. 가채점 결과 엄마와 백화점 데이트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시험이 끝난 날 나는 먹고 또 먹고, 자고 또 자고, 지겹도록 넷플릭스와 휴대폰을 보며 하루를 보냈다. 이런 게으름은 시험 기간을 열심히 보낼 때 더 달콤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대입까지 얼마나 많은 시험을 볼까. 시험! 부디 친해지길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