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코디

by 정양갱

하교 시간.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교문에서 쏟아져 나와 학교 앞 공원으로 흩어진다. 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평소 엄마는 나를 데리러 올 때 차에서 기다리는데 오늘은 학교 근처에서 볼 일이 있어 밖에 있다고 했다. 만나서 같이 차로 가자고. 그렇게 통화하며 엄마를 찾는데, 저 멀리 타는 듯한 여름 볕을 받아 더욱 눈이 부신 갈치 한 마리가 휴대폰을 귀에 대고 걸어오고 있다. 엄마다.


엄마가 입은 블라우스가 딱 갈치 같다는 말이다. 어깨를 약간 덮는 짧은 소매에 움직일 때마다 햇빛을 반사하는 진회색 광택 소재의 블라우스는 마트에 누워있는 먹갈치를 생각나게 했다. 옷감을 짤 때 펄이 들어간 은색 실을 쓴 것 같다. 블라우스와 맞춰 입은 짙은 남색 스커트 역시 찰랑찰랑 흘러내리는 광택 소재의 주름 스커트인데, 역시 펄이 있는 실을 쓴 것 같다. 걸을 때마다 물결을 이루는 엄마의 치마는 짙은 남색의 바다가 물결치는 것처럼 보였다. 짙은 남색 바다에서 헤엄쳐오는 갈치처럼 보이는 엄마에게 나는 휴대폰으로 다급하게 말했다.

“엄마 지금 네이비색 긴치마 입고 있어?”

“어 왜? 너 어디야?”

“위에는 지난주에 이모한테 할머니랑 같이 산 그 티 입었지? 반짝이는 티?”

“어 나 보여?”

“엄마 거기 서! 엄마 차 어디에 있어? 차로 갈게”

“왜? 너 내가 창피해?”

“응! 엄마 갈치 같아!!”

......

“참나~ 알겠어. 차로 갈게. 멀리서~~~ 따라와. 야 근데 진짜 이 티가 뭐가 어때서 그래? 치마도 일부러 맞춰서 입은 거야~”

“엄마, 이 많은 사람 중에서 엄마밖에 안 보여. 너무 화려해......”

“너는 패션을 몰라......”

“나는 진짜 엄마랑 취향이 안 맞는 것 같아”


엄마의 코디에 대한 나의 팩폭은 농담 반, 진담 반이다. 엄마도 그런 내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라 크게 상처받지 않을 걸 안다. 키가 크고 친구 엄마들보다 날씬한 편인 엄마는 어떤 옷을 입어도 보기 흉하지는 않다. 다만 너무 튄다는 게 문제다.

이번 주 엄마가 입은 옷들을 떠올려보면, 어제는 연두색 망사 소재의 반팔 블라우스를 입었다. 몸 쪽은 안감이 덧대져 있지만, 팔 부분은 망사 한 겹이어서 속이 다 비쳤다. 어깨 쪽에는 공주 블라우스처럼 퍼프가 잡혀 있고 앞쪽에는 같은 망사 소재의 연두색 긴 리본이 목을 둘러 드리워져 있는데, 엄마는 가슴 쪽에 이 리본을 나비매듭으로 묶어 마치 선물처럼 보였다. 연두색 망사 천에는 전체적으로 올이 뜯긴 것 같은 질감의 연두색 도트 장식이 있는데, 나는 이 연두색 블라우스를 보고 “브로콜리 같다” 고 말했다.


며칠 전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색 반팔 원피스를 입은 엄마를 봤을 때는 뱀파이어가 떠올랐다. 그 원피스는 펄이 들어간 건 아니지만 반지르르한 광택이 도는데, 이모와 엄마는 그 원피스를 쭈그리 원피스라고 불렀다. 원피스를 일부로 돌돌돌 말아서 묶어두면 전반적으로 쭈굴쭈굴한 주름이 잡히는데 그 주름이 잘 잡혀야 예쁘다고 했다. 쭈글이 원피스를 입을 때 엄마의 립스틱은 더 빨갛게 보이는데, 일부러 더 빨간색을 바르는 것인지 궁금했다.


베이지색 샤스커트 얘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치마는 한복 입을 때 볼륨을 주기 위해서 입는 속치마 같은 느낌이다. 치마를 풍성하게 하기 위해서인지 몇 겹의 천이 덧대져 있다. 치마 가장 바깥쪽에는 베이지색 안감이 훤히 드러나 보이도록 망사 천이 둘러져 있는데, 문제는 그 망사 천에 검은색으로 그려져 있는 그림이다. 치마를 입으면 주름이 잡히기 때문에 처음에는 몰랐는데 그렇게 화려한 샤스커트에 많은 사자와 표범들이 달리고 있는 거다. 엄마도 처음에는 그 그림이 동물인 줄 모르고 그냥 무슨 형이상학적인 무늬인가 보다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엄마! 치마에 사자랑 표범이 그려져 있어!”라고 말하니까, 약간 당황한 듯한 엄마는 웃참에 실패하고는 “어 진짜 그렇네ㅎㅎㅎ... 왜 치마에 사자랑 표범이 그려져 있지?ㅎ 근데 자세히 봐야 보이니까 괜찮아”라고 했다. 옆에 있던 눈썰미 좋고 한때 라이온킹 영화에 푹 빠졌던 남동생도 그동안 그 치마에서 사자와 표범을 발견하지 못했는지 “엄마~ 이 치마 입고 사파리 가면 좋을 것 같아요!” 했다. 엄마는 발목까지 오는 샤스커트를 입고 사파리에 가는 건 좀 아니다 싶었는지 당황한 듯 얼버무렸다. “어. 그... 그래...”

이런 엄마의 코디를 내가 부담스러워하는 것만큼 엄마도 나의 코디를 못마땅해하며 반격하곤 한다. 중학생이 되고부터 나는 온라인으로 옷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엄마가 사준 옷을 잘 안 입는 게 큰 이유였다. 한 번은 녹이 슨 것 같은 카키색이 은은하게 감도는 물 빠진 청바지를 샀는데 엄마는 그 바지를 보고 “걸레 빤 물에 염색한 바지 같아......”라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다. 묘하게 공감이 됐다. 요즘에는 반팔 라운드 면티에 글씨가 프린팅 돼 있는 디자인을 좋아하는데, 예를 들면 ‘1989’ ‘STANDFORD’ 같은 문구가 적혀있다. 그중 ‘STANDFORD’가 적힌 티를 본 엄마는 “STANDFORD 대학에 가고 싶어서 산 거야?”라고 물었다. “미국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연세대, 고려대, 전주시’가 적힌 티를 입는 것 같겠네~”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러고 보니 나랑 같은 학원에 다니는 선배 언니는 ‘HARVARD’가 적힌 티를 입고 온 적이 있는데 ‘HARVARD는 서울대 같은 느낌일까?’라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서로의 취향이 이렇게 다르지만, 엄마는 내가 이번 기말고사를 잘 보면 백화점 데이트를 하자고 제안했다. 시험공부를 하게 하기 위한 엄마의 큰 그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이 제안이 벅차게 좋았다. 옷가게를 돌며 내내 우린 서로 다른 곳을 보겠지만 행복할 것 같다. 어서 공부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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