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침대, 차가운 바다
“그럼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라는 물음에 답을 해보겠다고 다짐한 것은, 내가 아주 작은 침대 안에 들어가 있을 때이다.
‘들어가 있다’는 말에 대해 좀 더 말해보자면, 이곳은 배 안이다. 바다 위에 떠있는 상태다. 날씨가 매우 추워 모두가 작은 틈 사이사이로 들어가 있다. 이것이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떠 있는 배 안에서의 시간이다.
나는 돈 때문에 이곳에 오기도 했고, 안정적인 것 때문에 이곳에 오기도 했고, 비행을 할 수 있어서 이곳에 오기도 했다. 하지만 비행은 내가 원하는 만큼 할 수가 없다. 돈도 살아갈 수 있을 정도, 그러니까 몇 십년간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이 아니다. 그냥 현재를 살아가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을 정도. 그저 그 정도일 뿐이다.
그렇게 이곳에 온 사람들은 이렇게 살 바에는 나가서 뭐라도 시도해보는 것이 낫겠다며 나간다. 하지만 남아있는 자의 마음으로서는, 나가서 생존을 보장받지 못하고 오히려 매일을 불행한 삶으로 영위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우리 곁에 더 남아 있다. 그래서 어떤 날은, 떠난 사람보다 남은 사람이 더 겁이 많아 보이기도 한다.
돈이라는 것 때문에, 엄청난 확률을 뚫고 태어난 우리 각 개인은 자신의 재능을 넘어 세상에 내보이거나, 누군가를 위해 가치를 전달하며 더 큰 한 사람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일이더라도 결국 그 안에서 만족하고 마는 삶을 살아간다. 자기의 특기라고 할 만한 그 무엇도, 특기를 넘어 재능이 되거나 제3의 직업으로 전환되는 것은 이곳에서의 직위와 역할을 그저 그렇게 맡아가며 살아가고서는 얻어질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배 안에서의 밴드 공연을 보며 그걸 더 선명하게 느꼈다. 분명 무대에 서면 ‘가수’라고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관객이 없어도 이미 노래하고 있었다. 하루라도 자신의 재능을 세상 밖에 내보이기 위해 떠나려는 마음을 일찍부터 품고 있었다. 반면 이곳에 긴 시간 묶여버린 사람은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두려움은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에 방해를 준다.
내가 탈 비행기가 무엇인지, 나는 어떤 비행기를 타게 될지. 그 날만을 기다리며 원치 않는 기다림, 원치 않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그것이 인내심을 기르는 훈련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대항하여, 이곳을 또다시 떠나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인내와 체념은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가끔은 내가 무엇을 기르고 있는지도 헷갈린다.
그래서 다시 제목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돈을 벌기 위해 살아가지 않기로 한다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비행을 사랑하고 비행으로 돈을 벌고 싶다. 그렇다면 ‘돈을 위해 사는 삶’이 아니라 ‘비행을 위해 사는 삶’에서 돈이 따라오게 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만큼 날지 못하는 곳에서, 기다림으로 시간을 바꾸는 대신 기록으로 시간을 바꾸고 싶다. 내가 배우는 것들을 글로 남기고, 내가 느끼는 두려움까지도 꺼내어 놓고, 결국 비행하는 사람으로 살아남는 쪽으로.
그렇기에 오늘도 이곳 배 안에서 잠들며, 한 테스트 파일럿이 쓴 책을 읽다가 잠이 들어버릴 것이다. 그리고 눈을 뜨면, 다시 내 답을 조금 더 쓰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