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비행사: 꿈을 쫓는 소년
다시 처음부터 완결까지
1
비행 전 점검을 마치고 항공기에 올라탄 도현은 활주로를 향해 나아갈 준비를 하면서 고흥에서의 마지막 비행에 아쉬움을 느낀다. 도현은 깊은 잠에 빠진 듯이 고요한 Windsock을 바라보며 후회 없이 이곳 하늘을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고흥 Traffic HLC043, Final 항공기 있습니까?”
고흥 하늘, 오늘은 어떠한 항공기도 떠 있지 않지만, 도현은 평소처럼 하던 대로 하늘을 향해 이륙 허가를 받는다.
‘Final clear, RWY clear’
활주로 위에 덩그러니 놓인 그의 항공기 프로펠러를 빠르게 돌릴 준비를 마쳤다.
“043, Now Taking off RWY 32”
그는 부드럽게 출력을 넣으며 고흥 활주로를 날아오르는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즐기고 있다. 이곳에서의 아버지에게 비행을 배우면서 느꼈던 감정들. 기쁨, 슬픔, 그리고 희망의 감정들을 푸르른 하늘 위에 예쁘게 피어있는 작은 구름 안에 간직하려는 것처럼 그의 경비행기를 고흥 활주로위로 날아 올린다.
팔영산의 웅장한 산맥을 향해 비행기 기수를 돌려놓고 아버지에게 배웠던 비행 기술들을 하나둘씩 연습해 본다. 그 뒤로 펼쳐지는 수평선은 도현의 비행기술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주려는 듯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비추어 준다. 도현은 아버지를 따라 고흥 하늘을 비행하기 시작한 12살 때부터 봐왔던 고흥 풍경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기고 말았다.
“저 너머 수평선을 바라봐. 항공기에 있는 계기는 단지 확인용일 뿐이니까. 네가 보고 있는 것을 믿어. 그게 답이야.” 아버지에게 들었던 조언들이 머릿속을 지난다. 그리고, 어느새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확인이라도 할 듯이 그는 아버지에게 배웠던 기술들을 완벽하게 해낸다. 그는 기동들을 마치며 이제는 이곳에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 좋은 비행기, 더 많은 비행 기동들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오늘이 고흥 하늘에서의 마지막 비행이 되고 말았으니까. 그가 일찍부터 비행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를 떠올리며, 기동을 그만두고, 고흥 하늘을 이리저리 산책하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도현의 아버지 재현은 아들 도현의 항공기를 바라보고 있다. 자신의 꿈을 위해서만 달렸던 젊은 시절 시간을 뒤로하고, 이제는 아들의 꿈을 위해 만든 Goheung Highwind Academy에서 아들을 가르쳤던 10년의 시간들을 돌아본다. 이제는 아들이 더 큰 세상을 향해 떠나야만 한다는 것에 아쉬움과 걱정이 남는다.
“고흥 Traffic 043, Entering Left downwind RWY 32 Landing”
“왜 벌써 들어와?”
“더 아쉬워질까 봐요.”
재현은 아들의 항공기가 들어오고 있다는 통신에 무전하고는 그가 이제는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 점점 더 현실로 다가옴을 느꼈다. 그 순간, 도현의 눈앞에 지나간 독수리 한 마리는 그의 항공기에 덮칠뻔했다. 깜짝 놀라 항공기 기수를 급격하게 튼 그는 더 이상 생각에 잠기기를 그만두기로 한다.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구나.’
일몰 직전 고흥 하늘을 붉게 물들인 노을과 함께 그의 항공기가 활주로를 향해 가까워 온다. 그는 활주로에 가까워질수록 그를 기다리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에게 잠시 시선을 빼앗긴다. 아버지 재현은 아들이 이곳에서의 마지막 비행에 함께 아쉬움을 느끼며 그가 착륙하는 모습을 자신의 눈으로 깊이 담아두려는 것처럼 그를 애잔하게 바라보고 있다.
“고흥 Traffic 083, on Final RWY 32”
아버지 재현과 이곳 고흥에서 다양한 바람들을 경험하며 연습했던 착륙. 오늘 이곳은 그 어떠한 바람도 불지 않는다. 그가 떠나는 것을 아는 듯 오늘 하늘은 고요했다. 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아주 사뿐하게 바퀴를 활주로에 접지시켰다. 천천히 출력을 줄이며 아버지 재현이 기다리고 있는 곳을 향해 항공기를 정지시킨다. 그는 이제 이곳에서의 미련을 남기고 않고 떠나야 하기에 마지막까지 아버지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을 것이다. 엔진 Shut down 절차를 마치고 Canopy를 열어 아버지를 향해 걸어간다. 아버지에게 감사함을 어떻게 표현할지 전날부터 밤잠을 설치며 많이 고민했지만, 그가 항공기에서 내렸을 때는 신기하게도 망설임이 없었다. 어느새 그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있었으며, 그동안의 고마운 감정을 말없이 표현하고 있었다. 그가 이곳에서 비행을 배우면서 더 큰 꿈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준 재현과 한동안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떠나기로 결정했고, 그런 결정을 믿어준 아버지에게 도현은 그저 고마움을 내비치고 싶었다.
“고마워요.”
많은 말이 필요 없었다. 이미, 서로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재현은 아들 도현의 꿈을 위해 10년이라는 시간을 이곳 Goheung Highwind Academy에서 도현을 가르쳤고, 아들 도현 또한 그런 아버지의 가르침을 잘 따라왔기에 이곳을 잘 떠날 수 있을 것이다.
고흥 하늘을 마지막으로 비행한 도현은 활주로를 벗어나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가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자동차 안은 적막했다. 재현은 핸들을 잡은 채 아들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고요한 표정 속에 감춰진 아들의 복잡한 심정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병원 안으로 들어섰고, 복도는 숨소리마저 삼킬 듯한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도현은 차가운 병원 바닥을 울리는 자신의 발검음 소리가 더 크게 느껴져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수술실 앞에 도착하자 문 위의 붉은 ‘수술 중’이라는 불빛은 아직 켜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수술대에 누워 간호사의 손에 이끌리며 도현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엄마, 나 갔다 올 테니까 수술 잘하고 와”
어머니는 작은 미소를 보이며 도현의 손을 잡았다. 걱정하지 말라는 듯, 그녀의 눈은 도현의 눈을 바라보며 안심시켜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얇게 떨리는 손끝에서 도현은 그녀의 마음속 불안을 느낀다.
“엄마는 걱정하지 말고, 너만 생각해. 강해져야 해. 알겠지?”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간호사는 수술 시간이 다가왔다는 듯이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수술실 문은 천천히 열렸고 차가운 공기가 문틈에서 흘러나왔다. 안쪽에서 하얀 수술복을 입은 의료진들은 도현과 그의 어머니가 서로 앉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현은 어머니를 이대로 헤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그러고는 수술실 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그들을 향해 어머니를 잘 부탁드린다는 마음을 담아 머리를 숙였다. 그렇게 문이 닫혔고 도현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걸 막으려는 것처럼 그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었다. 아버지 재현은 그런 도현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에게 말한다.
“이제 가야 한다. 도현아.”
그는 어머니를 두고 결국, 병원문 밖을 나선다.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누군가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았지만, 그는 마지막 어머니의 말을 듣고 약해질 수 없었다. 어머니도 자신 때문에 그가 여기에 남길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그는 죄책감을 떨쳐버렸다. 그리고, 반드시 자신이 미국 학교에서 최고의 학생 비행사가 되어 졸업한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와 함께 발걸음을 옮긴다. 인간은 어떨 때는 이기적이고 어떨 때는 그렇지 않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도현은 이기적인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가 그런 자신의 모습을 용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 아버지였다. 그들에게 미안했지만, 그는 지금은 자신만 생각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간절한 꿈을 위해, 죄책감은 수술실 문 앞에 내버려 두고 병원 문을 나서게 된 것이다. 그녀의 마지막 미소가 떠오를 때마다 떠나는 발걸음이 느려졌지만,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공항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탑승 수속을 마친 도현은 비행기 출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게이트 앞에서 아버지와 마주 서 있었다. 넓은 창문 너머로 항공기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이 보였지만, 도현의 시선은 이내 다시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최고가 돼서 올게요. 아버지”
“그럴 거야.”
재현은 아들 도현에게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그가 아들에게 가르쳐준 모든 것은 이미 그에게 담겨있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어린아이였지만,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을 내비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재현은 그가 이곳에서의 걱정, 미련, 후회의 감정들을 모두 내려놓길 바라면서 아들 도현을 믿고 있다는 뜻이 담긴 눈빛을 보내 주었다. 어느새 품에 안겨있는 아들 도현에게 말한다.
“잘 갔다 와 아들”
재현은 멀어져 가는 도현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가 떠나는 길은 이제 도현 스스로 개척해야 할 몫이라는 것을. 그렇게 아들에게 마지막 미소를 보내며 손을 흔든다. 도현은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몇 걸음 되지 않아 뒤를 돌아본다. 아버지는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