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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진 Sep 30. 2023

너를 기다리는 동안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가는 새들처럼 “이 세상 밖 어디론가 날아갔으면 하는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각자 자기 자리에 앉는다. 주저앉는다”(황지우,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새들처럼 자유롭게 이 세상을 뜨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이 세상을 뜨고 싶지 않은 세상으로 바꾸지도 못하고,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자’는 애국가에 따라 애국하려는 듯 ‘주저앉는’ 현실. 詩에서 시인이 노래하는 현실은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비민주적인 불평등한 ‘대한 사람’들의 현실로 들린다.      


오늘의 현실은 기후 재난 때문에 새들이 세상을 뜰 수밖에 없어진 세상이 되었고 기후 재난 때문에 경제적으로 취약한 ‘대한 사람’들이 세상을 뜨는 현실이 되었다. 하루빨리 정치적으로 더 민주적이고 평등한 ‘대한’이 되지 않는다면 세상을 뜨는 새들도 ‘대한 사람’도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겠다.          


황지우 시인하면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와 함께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 떠오른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황지우 시인의 詩 <너를 기다리는 동안>의 일부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애리는 일 있을까”라는 시구처럼 ‘기다리는’ 시간의 그 애리는 마음이 시를 읽을 때마다 전해져 마음이 애리다.      


아름다운 노을은 아무 때나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네가 4시에 온다면 3시부터 행복할 것이라는 ‘어린 왕자’의 아름다운 말들처럼 ‘기다림’은 설레거나 행복한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인은 ‘기다림’의 시간을 ‘애리다’라고 노래한다. ‘애리다’(‘아리다’의 방언)는 “톡톡 쏘거나 찌르는 듯이 알알한 느낌이 있다”는 뜻이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마냥 설레거나 행복하거나 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너무 설레고 너무 행복해서 기다림의 시간이 애리다는 뜻일 테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니 얼마나 마음이 애릴까. 하지만 그 애리는 마음이 있기에 기다림의 시간은 너에게 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너에게 가고 있는 것이다.             



2023.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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