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 물과 불, 물처럼 청산유수로 흘러가는 말과 같이 문명은 말이 글이 되고 글이 사람들 가슴에 불쏘시개처럼 타오르면서 세상을 밝히고 변화시킨다. 이처럼 스스로 그러한 자연에서 빠져나와 세상을 만든 인간의 문명은 물로 만든 지구라고 하는 자연에서 프로메테우스가 전해준 불을 손에 넣어 만든 세상까지 어느 순간부터 자연의 섭리와 세상의 원리 사이에서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가는 폭주기관차가 되기 시작했다.
물불 가리지 않고 오천 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려온 식민지 청년 출신의 대통령 박정희는 3선 개헌을 통해 종신집권이라는 독재자의 길로 달려가는 폭주기관차가 되어 실제로 기어이 3선 대통령이 되었고 그가 달려가야 할 길은 60년대 파독 광부와 간호사, 베트남 파병군인, 결정적으로 망국의 식민지 백성들의 피와 땀이 녹아있는 대일청구자금으로 대한민국 산업화의 시동을 걸어 산업의 쌀과 같은 철을 쏟아내기 위해 포항제철을 만들었으며 국토의 혈맥과도 같은 경부, 호남 고속도로를 개통했으나 그 보다 일찍이 우남의 민주화를 경험한 대한민국 국민들 눈에 비친 3선 대통령 박정희는 종신집권이라는 독재자의 길로 달려가는 고속도로에서 과속하고 있는 자동차처럼 비추어지기도 했다.
이처럼 민주화와 산업화는 양날의 검이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었다.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여반장如反掌이기도 하고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과 같이 어디에 갔다 거느냐에 따라 영웅과 간웅, 독재와 민주가 갈라지는 제한속도가 없는 아우토반과도 같은 고속도로를 박정희는 독일의 도움을 받아 국토에 건설했으나 이미 민주화를 경험한 국민들 마음속에 박정희의 이미지는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폭주하는 독재자 같았다.
1960년 내내 산업화의 성공에 고무된 1917년 11월생 박정희가 휴전과 분단이라는 안보리스크 속에서 1968년 1.21 김신조와 같은 무장공비가 청와대 턱밑까지 들어와 대한민국을 전복하고 자신의 목숨까지도 위협할 정도의 북의 일상화된 도발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싸우면서 건설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에 직면했고 그는 향토예비군을 창설했으며 학교에 교련과목을 설치하는 학원교련화를 70년대에 접어들자마자 본격화했고, 이에 대항하여 1971년 교련반대 데모가 대학캠퍼스에서 들불처럼 퍼져나가고 있음을 1908년 1월생은 불안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吾日暮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오일모도원 오 고도행이 역시지”라는 춘추시대 오자서가 친구 신포서에게 말한 것처럼 이때쯤 박정희는 무엇에 쫓기는 사람처럼 우남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망국의 절망에서 혁명적으로 구축한 선언적 민주화의 폐단을 절감하고 대한민국의 현실에 맞는 실제적 민주정으로 이행하지 않는다면 결코 자신과 같은 불행한 식민지 청년, 자신과 같은 불행한 군인들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역사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망국의 식민지 청년으로 질곡의 역사를 거쳐온 세대들 자신의 한 몸을 크게 불사르는 대연大燃이라는 산업화를 통하여 반드시 대한민국을 번영시켜 후대를 향한 대연大然을 달성하리라고 1971년 박정희는 그때 굳게 마음먹었는지도 모른다.
1971년 1월 26일 북한 조선적십자회와 일본적십자사 대표가 재일교포 북송 재개에 합의하였다. 2월 4일 미국에서 나스닥이 설립되었다. 2월 6일 한국과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과 국군 현대화 계획에 합의하였고 2월 8일 정부는 155마일 휴전선을 국군이 전담한다고 발표했다. 2월 9일 제3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발표되었다. 3월 27일 주한미군 7사단이 철수하였다. 3월 30일 미국 시애틀에서 스타벅스가 오픈하였다. 4월 27일 제7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져 박정희가 김대중을 이기고 3선에 성공했다. 이에 따라 5월부터 대학생들이 부정선거에 규탄하는 시위를 했다. 8월 12일 대한적십자사는 북한 조선적십자회에 남북 이산가족 찾기 회담을 제의하였다. 8월 15일 브레튼우즈 체제가 종료되었다. 8월 23일 실미도 사건이 일어났다. 12월 9일 파월 국군 병력이 6년 만에 철수하였다.12월 10일 대한민국에 첫 민방공 훈련이 개시되었다.
운명의 1971년 크리스마스 12월 25일 명동성당에서 열린 예수성탄대축일 자정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박정희의 장기 집권을 경고하는 강론을 했고 박정희가 이에 격분해 미사 중계방송 중단을 지시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강론 중계 중단 사건이 벌어지고 몇 시간 뒤 서울에서 대연각호텔에서 화재사건이 발생해 대규모 인명피해가 생겼다. 사망 191명 실종 25명 부상 68명을 낸 대연각 호텔 화재는 참사현장이 TV를 통해 국내외로 실황중계되는 빨리빨리로 상징되는 고도경제개발 시대의 어두운 장면이 백일하에 드러나는 , 오일모도원 오고도행이역시지吾日暮途遠 吾故倒行而逆施之라는 춘추시대 오자서의 독백이 다시금 실감 나는 1971년 성탄절의 참사였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도 좋다는 사즉생의 각오로 자신의 몸을 크게 불사르는 대연大燃을 통하여 후대에게 자신의 결핍을 결코 물려주지 않으려 했던 박정희의 대연大然처럼 대연각大燃閣 호텔은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타올랐고, 2025년 우리 국민들은 박정희와 같은 산업화시대의 희생 덕분에 대연大然을 지나 태연泰然도 넘고 당연當然하고 의연依然하게 민주주의를 누리고 있지만 박정희가 1971년에 간파한 민주화를 가장한 도로조선의 음습한 냄새를 동반한 선동의 폐해가 2025년에도 죽지않고 살아 남아 여전히 한반도 백년전쟁의 양상이 사이버전이라는 새로운 전쟁과 만나고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국민도 드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