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옮겨 다니며 유한한 시간을 사는 인간이 느끼는 공간과 시간에 대한 감회를 우리는 인생이라고 불러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공간의 변화를 통하여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인간의 오래된 습관을 통하여 나와 나라는 한 계단 씩 도약한다.
1980년대라고 하는 숫자는 6,70년대를 살았던 국민들 모두에게 희망의 상징처럼 다가왔다. 전쟁의 질곡과 재건의 고단함에 이어 산업화를 통해 오천 년 가난을 타파하고 번영된 대한민국을 만들고야 말겠다는 고독한 독재자와 힘을 합쳐 달려온 18년 세월은 오로지 80년대라고 하는 희망찬 시대 만을 바라다보았고 그때가 되면 산업화도 민주화도 모두가 열심히 하기만 하면 반드시 성취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공간을 옮기고 시간을 늘려가며 고단한 삶과 역동적이고 근면한 일상을 소처럼 일하면서 60년대와 70년대를 달려왔다.
그렇게 축구경기로 말하면 60년대 경제개발의 전반전을 뛰고 70년대 유신의 후반전까지 뛰고 나면 대한민국 미래는 축구의 승부처럼 확실한 팀 코리아의 승리로 마무리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승부는 호락호락 나지 않고 연장전인지 인저리 타임 injury time인지도 모를 모호한 시간인 격동의 1980년을 지나 유신보다 더한 군부독재 7년 간이 확정된 1981년이라는 새해와 마주쳤다.
정규 육사 1기생들이 주축이 된 신군부세력들은 12.12 군사반란을 통하여 대한민국 인저리 타임의 주역이 되면서 민주화 세력을 탄압하고 산업화 세력을 대체하고 요란스럽게 대한민국을 접수했다. 권력의 추는 이처럼 이상적인 당위성이나 필연적인 예정론과는 별개로 냉철하고도 정확한 실력의 차이로 기울어진다. 18년 고독한 독재자의 빈자리는 실력과 정보력 그리고 마키아벨리적인 권력욕까지도 겸비한 준비된 신군부가 경제개발의 여념이 없고 산업화에 올인하면서 후반전 막판까지 힘을 다해 기진맥진한 레귤러 멤버인 식민지 청년 출신들을 밀어내고 그 빈자리를 미국적 교육을 받은 신군부가 인저리 타임 대한민국, 팀 코리아의 교체멤버로서 화려하게 데뷔하였다.
세계패권질서의 최전선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미국이라는 패권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정권이 흔들리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강력하고도 결정적인 축구 심판, 미국이 그라운드 안에 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인저리타임의 절대 주관자였던 미국이라는 심판이 추가 시간을 얼마나 줄 지는 누구도 몰랐다. 팔이 안으로 굽듯이 미국이라는 그라운드의 심판은 자국의 커리큘럼으로 양성된 정규 육사 1기생들이 하루빨리 일제 식민지 청년출신의 대통령을 위시한 산업화 세력이라는 구 세대를 몰아내고 정규육사 1기생과 같은 신세대로 멤버교체를 하기 위해 세계 패권국 미국은 안달이 났고 때가 되자 미국이라는 심판은 호각을 불면서 인저리 타임을 포함한 전 후반 90분이 끝났음을 선언하고 새로운 연장전을 고민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1908년 1월생은 칼라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서 만감이 교차한 상태로 제5 공화국 출범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로써 자신과 같은 식민지 청년출신들의 기성세대는 퇴장하고 미국적 교육과 사고를 받은 신세대, 신군부가 대한민국을 접수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모습을 보고 영욕을 겪고 이 자리까지 달려온 세대로서 회한과 희열을 함께 느꼈다.
1981년은 전두환이 새 헌법에 따른 선거인단식 대통령 선거를 통해 연임하면서 '제5공화국'이 출범됐고, 계엄령도 2년여 만에 해제됐다. 3년 만에 다시 치러진 11대 총선에서 민주정의당이 승리했다.
미국에서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취임해 공화당이 다시 정권을 잡았으며, 전임 지미 카터 대통령의 도덕정치 인권외교라는 이상주의를 버리고 대소반공 강경책을 통하여 소련을 압박하면서 패권경쟁의 시동을 걸면서 세계 패권질서의 변화가 시작된 한 해가 되었다. 1월 23일 대법원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피고인 12명에 대해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 등 원심을 확정했다. 정부는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김대중을 사형에서 무기로 감형키로 결정했다. 2월 3일 전두환-레이건 양국 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 백지화 등 14개 항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했다. 9월 30일: 제84회 바덴바덴 IOC 총회에서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가 서울특별시로 확정 지어졌다. 11월 5일 건설부는 제2제철소를 전남 광양만에 건립키로 최종 확정했다. 12월 19일 한국 수출실적이 2백억 달러를 돌파했다.
신군부는 전 후반 90분을 숨 가쁘게 달려온 개발독재 산업화세대가 득점한 골을 1980년 인저리 타임에서 실점하지 않고 지켜내어 유신독재의 연장전이라고 할 수 있는 제5 공화국을 활짝 열어젖히면서 새 술은 새 부대로 라고 하는 격언대로 인물과 제도와 체제를 재정비하고 대한민국 번영이라는 최종적인 골을 향해 야심 차게 달려 나갔으나 집권 과정에서 흘린 피로 인해 집권 내내 그리고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어내고난 다음에도 소급하여 처벌받는 독재정부로서 길이길이 역사는 심판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