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 <<대성당>>을 읽고 남김
- 이번 글은 레이먼드 카버 소설집 <<대성당>>과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을 읽고 남긴 메모입니다.
-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개인적 취향과 인상을 토대로 편하게 감상을 남겨보았습니다.
- 두 소설집에 대한 전반적 인상을 언급하고 있어 열람에 주의를 요합니다. 어떤 종류의 스포일러도 원치 않는 분께서는 먼저 작품을 보고 읽어주세요!
레이먼드 카버의 작품세계는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이란 제목으로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단편선을 통해 첫만남을 가졌었다. 그러나 <대성당>이 카버의 대표작으로 취급되는 모양이어서, 해당 작품이 표제작으로 수록되어 있는 또다른 문학동네 판 단편선을 이후 읽게 되었다. <<누가 이 침대를 쓰고 있었든>>의 단편 중에서는 표제작과 <심부름>이 좋았다. 특히 <심부름>은 나머지 수록작과는 다른 스타일을 보여 주는 단편으로, 아주 독특하고 강렬한 울림을 주어서 꼭 다시 읽어 볼 생각이다. <<대성당>>에서는 <칸막이 객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열>, <대성당> 등이 인상깊었다.
내가 읽은 카버의 작품들은 보통, 억울할 만한 불행 - 그 불행을 말끔히 해결할 수는 없었음 - 그럼에도 건네어지는 위로, 순으로 이야기의 얼개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소설의 방점을 '그럼에도'라는 부사어에 두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경험상 이는 서사예술 중 대부분의 수작들이 곧잘 주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담담한 묘사로 인물의 행동을 섬세하게 보듬는다. 인물 내면에 대한 직접적 서술이 주의깊게 절제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 절제미 덕분에 읽는 사람은 글이 쉽게(말하자면 '만만하게') 여겨져 가독성을 높여 주는데, 곱씹어 읽으면 또다른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비유하자면 '울창한 숲 속으로 낸 포장도로' 같은 소설들이라 할 수 있겠다. 입문은 쉽되 숙지는 어렵게 만드려는 대중예술의 전략을 보여 준다고 생각되는 까닭에서다. 어쩌면 단순명료함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작품의 제일전략으로 삼아도 나쁘지 않을 만한 방식이 아닐까. 다만 첨언컨대 이 소설은 잘 읽힌다는 점에서만 대중적이라 할 수 있지, 다루고 있는 주제의식까지 대중적이라고 할 순 없을 듯싶다.
카버라는 소설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영화 <버드맨> 덕분이었다. 영화 주인공 직업이 배우인데, 배우가 출연하는 연극이 카버 단편소설의 각색이라는 설정이다. 단편 제목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이다. 해당 작품을 아직 읽어보진 않았지만, 읽어본 다른 단편들을 놓고 생각해 보니, 과연 그의 작품들은 희곡으로의 각색이 용이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 작품에 작가의 의도 없이 등장할 수 있는 사물은 으레 없겠지만, 카버가 소설 속에서 사물을 다루는 섬세한 솜씨는 그중에서도 두드러져서, 마치 무대를 주의깊게 둘러 보면서 소품 놓을 곳을 물색하는 작가의 손길이 소설에서 느껴지기도 한다. 작가가 일상의 풍경과 대화로 작품의 의미를 드러내는 방식을 애용하고 주제의식을 직접적으로 밝히는 일이 좀체 없다는 점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직접적 서술의 직사광선을 의도적으로 멀리하고 있으니, 의미는 사물들의 온기를 통해서만 전달될 수가 있는 것이므로, 세심한 사물배치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사정이 있어서 대화로만 이야기를 견인해야 하는 극으로 옮기기도 편할 것 같다.
소재 자체도 한 가정의 규모 안에서 선정하고 있다. 대부분 부부나 연인이 작품의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집이나 그에 준하는 실내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주제는 일상과 강하게 밀착해 있다. 주제는 일상이다, 라고 단정하고 싶을 정도다. 작가는 가정집 거실에서 벌어질 만한 긴장들의 전문가인 것 같다. 그래서 카버의 소설에는 '거실 단막극'이란 별명을 지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