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비평의 난처함

선언하는 행위

by 오윤오
본문 도입부.


나는 책과 영화를 비롯한 작품들을 이것저것 읽고 감상하면서, 후기나 감상문이란 명목으로 글을 써 왔다.


누군가가 그 글들이 실은 '비평'이 아니었는가 묻는다면, 나는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비평을 하려는 의도가 추호도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또 그렇지가 않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나는 되다 만 비평의 잔해를 그러모아 해골의 문장으로 추려, 비평의 장례를 치러 왔다고 해야 할 성싶다.


어렵사리 써낸 글을 돌이켜보고 미적지근한 평가밖에 내릴 수 없는 난처함에는, 지금 자기가 사랑에 빠졌는지를 놓고 고민하는 이의 혼란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상대와의 첫 데이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다음 번 데이트까지 약속한 뒤에 집에 돌아가는 남자를 붙잡고, 당신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가 묻는다면, 그가 과연 자신있게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좋아한다'나 '서로를 알아가는 중이다' 따위의 표현을 '사랑하고 있다'란 말과 구분해 사용한다. 심지어는 사랑과 구분할 목적으로만 그런 표현들을 부릴 때도 있다. 사랑이 선언되어도 좋을 때까지, 사랑한다는 선언을 보류하는 것이 좋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음을 나는 경험으로 안다. 사랑은 매번 무르익은 사랑으로 밝혀지는 것이어서, 사랑이 정확히 언제 시작했는지를 파악하는 것은 영영 허락되지 않을 듯싶다. 발견된 모든 사랑은 시작하는 순간의 사랑이 아니라, 진행중인 사랑뿐이다. 이미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동시에 사랑을 거두는 힘은, 어느 정도, 사랑한다는 선언에 기대고 있음을 나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데 주저한 것만으로도 사랑이 좌절되는 불상사들을 나는 보아 왔다. 사랑임을 선언하는 것 자체가 사랑함의 일부라는 믿음을 뒷받침하기 충분한 목격이었다.


그 정도로 선언은 힘이 센 것인가? 사랑한다 선언함으로써 증오조차도 단번에 사랑이 되는, 날개 달린 어린 신의 화살 같은 마법이, 사랑이란 주문의 발음에 깃들어 있기라도 한 것인가? 사랑의 선언에 그 정도로 기적적인 힘은 없지만, 적어도 사랑의 선언 없이 사랑이 성치 못하다는 것만큼은 알고 있다. 오랜 시간 사랑하면서 단 한 번도 서로에게 사랑한다 말해본 적 없는 연인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나는 듣도 보도 못했다. 사랑이라는 말의 엄존은 사랑에 빠진 이들이 침묵하는 것을 허락해준 적이 없다. 사랑한단 말은 마치 암구호처럼,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선언으로서, 침묵을 깨뜨려야 한다. 사랑이 아님이 아님을 사랑한단 암구호로 입증할 책임이, 사랑에 빠진 이에게는 있다. 그러므로 사랑이라 말하길 주저하는 이에겐, 사랑이 아님의 혐의는 무고가 아니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음이, 침묵과 주저와 우유부단이 사랑의 반의어로 맞선다고 나는 주장하겠다. 그러니, 사랑을 원치 않는 이들은 침묵하라. 그것으로 사랑하지 않기 충분하다.


비평도 마찬가지다. 비평이라 선언하길 주저하는 글은, 비평으로 밝혀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비평이라 불리길 거부한 내 글들도 비평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수학 강의에서 배운 것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무정의 용어"란 것이었다. 정의되지 않되, 다른 것을 정의하는 데 사용되는 용어를 뜻한다. 무정의 용어가 없다면, 우리는 정의된 용어로만 다른 용어를 정의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은 끝없는 정의의 연쇄라는 불가능을 요구할 것이다.


무정의 용어처럼, 정의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사용해야 하는 것이 있다. 나는 사랑과 비평이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우리는 사랑이 도대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할 수 없어도, 사랑을 할 수 있다. 이 세상에 행해지는 사랑의 수도 없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되, 각각의 사랑을 모두 아우르는 정의를 파악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 아님도 안다. 사랑임을 밝혀내는 것은 사랑의 정의였던 적이 없고, '이것은 사랑이다'란 선언으로 사랑은 부지해 왔다. 사랑은 언제나 사랑의 예시만으로 부지해 왔다. 사랑은 언제나 술어 자리에서만 온전히 사랑일 수 있었다. 사랑을 판가름하는 것은 사랑의 정확한 조문이 아니로되, 사랑의 학學은 오로지 판례집이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모른다. 나는 사랑을 주어로 올려 놓으려는 시도의 불가능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랑의 의미를 안다고 하는 이들의 해설은 예외 없이, 사랑에 대한 그들 각자의 믿음을 넘어서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이 이룩한 사랑을 폄하하지는 않았다. 그들의 해설이 사랑의 필요충분조건을 건져내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들의 믿음이 사랑을 성취하기에 충분했음은 변함없었다. 나는 그것이 용기라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선언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지난 글들을 다시 읽으며 나는 생각한다. 나는 문학을 사랑하고 있다. 언제 사랑하기 시작했는지 영영 알 수는 없으나 나는 사랑하고 있다. 언제 사랑이 끝날지 또한 알 수 없으나 나는 사랑하고 있다. 그러나 또한 지난 글이 비약을 무마하고 애써 뽐내어 괴로운 자세로 뒤뚱거리며 나아간 흔적을 읽으면서 나는 생각한다. 아직은 비평이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언젠간 어느새 비평에 성공한 글이 하나쯤 나올지도 모른다. 퇴고와 함께 밝혀질지도 모른다. 탈고와 함께 비평했다고 외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문학에 대한 사랑이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