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값으로 매길 수 있을까?
우리 집에는 대형견 골든 리트리버가 살고 있다. 아무리 순종 골든 리트리버라도 천만 원짜리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맞다. 그 아이를 데려 올 때의 가격이 15만 원이었으니 택도 없이 가격을 부풀린 꼴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 거금 천만 원이라는 계산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똥꼬 발랄하고 철이 없던 악마견 시절 우리 강아지의 취미 생활은 식탁 위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밥 먹은 식탁에 주방용 소독제를 뿌리고 싹싹 닦아 놓아도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상을 물리기가 무섭게 식탁 위로 뛰어 올라와 음식 냄새를 맡곤 했다. 버릇을 고치려 별다른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지만 모든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갔고 급기야 이 녀석의 취미는 더운 여름날 시원한 식탁 위에 앉아 식구들을 관찰하는 것이 되었다. 문제는 아이의 크기가 급속도로 커가는 것에 있었다. 대형견답게 1~2주에 2kg씩 꾸준하게 무게를 불려 가던 아이가 식탁 위에 올라가는 것이 너무도 위험해 보여 30킬로에 육박하는 아이를 허리 통증을 무릅쓰고 조마조마 내려놓고는 했었는데 예정된 수순처럼 사고가 터지고야 말았다.
혼자인 시간 식탁 위에 올라갔다가 가족들이 귀가하는 소리를 듣고서 자기 무게를 생각하지 않고 식탁 위에서 뛰어내려 뒷다리를 접질렸던 것이다. 오른쪽 뒷다리를 절으며 걷는 아이를 데리고 24시간 동물 병원으로 달려갔다. ‘대형견에게서 흔히 발생하는 고관절 이형증일까? 아니면 다리가 부러지기라도 한 걸까?’ 걱정되는 마음을 붙들고 각종 검사를 마치고 인대 파열이라는 진단명을 받게 되었다. 인대를 재생시킬 수는 없어서 십자 인대 수술(TPLO)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대형견 수술이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하여 급하게 수술 날짜를 잡았고 아이는 두 달여간의 수술과 재활 과정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술비는 450만 원
거기에, 각종 검사비와 약값,
관절에 좋다는 사료까지 더해지니
세 달 동안 700만 원이 훌쩍 넘는
지출이 발생했다.
노견 레트리버에게 흔하다는 고관절 이형증의 수술비는 500만 원에서 1000만 원을 상회한다. 그렇기에 처음 데려올 때부터 큰 병원비가 들어갈 일을 예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먼 미래의 일처럼 여겨졌고 이제 슬슬 아이의 노후를 대비하여 적금을 들어야 하나 생각하던 차였다. 그러니 수술비를 쥐고 있었을 리 만무했고 근 돈은 힘들게 모아 온 예금이나 적금을 깨서 마련해야만 했다. 누군가는 그렇게 큰돈이 들어가는데 다리를 조금 절더라도 그냥 두는 것이 어떠냐고 말한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 말에 혹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아이들이 사달라는 장난감, 사주고 싶었던 책, 입고 싶었던 옷과 노화를 방지해 준다는 각종 시술에 영양제까지… 가지고 싶었던 것들을 미루며 한 푼 두 푼 모아 온 예금을 깨야 한다고 생각하니 잠도 오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돌도 안 된 새끼 강아지이다. 이 수술이 아니면 그는 평생 다리를 절고 살아야만 할 것이다. 더군다나 우리는 그를 가족으로 맞아들였고 철없는 그에게는 우리가 모든 것이 아닌가 생각하니 수술을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한숨 쉬는 내 앞에 남편이 거금 500만 원을 내밀었다. 결혼 생활 10년 동안 비상금을 모아 주식에 투자했던 돈이라고 한다. 용돈 30만 원에 아등바등 살아가는 그에게는 그야말로 목숨과도 같은 돈이었을 텐데 그 돈을 내 손에 쥐어주며 온갖 서사가 물밀듯 밀려왔던 결혼 생활 동안, 대형견과의 그 숱한 전쟁통에도 내려놓지 않던 두 무릎을 꿇으며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말도 없이 대형견을 데려와서 미안해. 다시는 마음 내키는 대로 다하지 않을게. 약속해.‘ 힘없이 말하는 그를 일으켜 세우고 병원으로 향했다.
다행히 강아지는 잘 버텨주었다. 수술은 무사히 잘 끝났고 이주일 간의 입원 기간을 거쳐 집으로 돌아온 강아지를 재활하며 두 달이 흘렀다. 긴 털을 아름답게 휘날리며 산책하던 아이의 허벅다리 털이 짧게 깎였고 좋아하던 산책도 한 달이 넘게 할 수 없었다. 그 힘든 시간을 함께 견디며 눈물과 한숨으로 지새운 모자란 주인 옆에서 위안을 얻으며 잘 버텨준 아이가 대견할 뿐이다. 그런 시간이 다시는 오지 않기를 바라며 약간은 둔한 다리로 둥실둥실 엉덩이를 흔들며 산책하는 아이를 쓰다듬는다.
동물을 치료하는 데에는 너무나도 큰돈이 들어간다. 하지만 그렇게 큰 지출을 무릅쓰고서도 그보다 귀한 인연, 관계를 위해 희생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맞벌이를 하며 일정한 소득이 매달 입금되는 우리 부부는 운이 좋게 그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있었지만 반려 동물을 키우는 모든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은 이들이 동물과의 힘든 시간을 어떻게 견뎌낼까 생각하니 콧잔등이 시큰해져 온다. 이제 가난한 이들은 반려 동물조차 키울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자연스러운 일조차 빈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안타깝다.
이제 우리는 육아를 하는 이들보다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가 더 많은 시대에 살고 있다. 나 또한 힘든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할진대 동물이 사람과 같은 혜택을 누리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강아지를 안고 동물병원으로 향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병원비에 깜짝 놀라 따지고 들다 경찰에 붙들려 가는 일이 흔하게 발생하고 비싼 병원비로 인해 가족과 같은 반려 동물의 치료를 포기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이 발생하는 상황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병원비로 인해 너무 많은 이들이
아파하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덜 아픈
돌봄과 이별일 수 있을까?
경제적으로 너무 많이 힘들지 않더라도
다른 생명을 지켜줄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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