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 너머
대문이 열리고 골든 레트리버 한 마리가 뛰어나온다. 푸른 대지를 박차고 후텁지근한 여름의 공기를 가르며 그가 달린다. 거친 숨을 몰아치며 도착한 그의 발치에 거대한 바다가 펼쳐지고 그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푸른 물결 속으로 뛰어든다.
골든 레트리버를 키우기 전 각종 sns를 통해 수영을 즐기고 물을 좋아하는 그들의 영상을 즐겨 보아 왔다. 바다 수영은커녕 수영장에서도 젬병인 나는 푸른 바닷속으로 힘차게 뛰어드는 그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자유로움에 나도 모를 향수를 느끼곤 했다.
그런데 막상 골든 레트리버를 키우다 보니 이렇게 크고 둔한 녀석이… 정말로 수영을 잘할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40킬로에 육박하는 커다란 녀석이 덩치에 비해 초라하기만 한 가느다란 네 개의 다리를 열심히 휘젓는다 해도 도저히 물에 뜰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레트리버는 보더콜리나 도베르만처럼 날렵하고 유연하게 움직이는 종도 아니지 않은가? 의심은 커져만 갔다.
'영상에 나오는 개들은 특수한 훈련을 받은 걸 거야. 아무런 훈련 없이 배우지도 않고 어떻게 개가 혼자 수영을 할 수 있겠어?' 멋지게 수영하며 물속에서 자유로운 우리 강아지의 경이로운 모습을 보고 싶은 욕심을 슬그머니 내려놓기로 했다.
드디어 심바와 맞이하는 첫여름이 왔다. 쨍쨍 내리쬐는 강한 햇빛과 자맥질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한 계절, 강렬한 에너지와 아득한 낭만이 공존하는 꿈속 같은 계절. 여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기본적으로 5도 2촌 생활을 하는 우리 가족은 시골집에서 긴 여름을 보낸다.
답답했던 아파트 생활에서 탈출한 것에 가장 큰 기쁨을 느낀 것은 우리 집 강아지였다. 시골집 곳곳을 누비고 다니며 메뚜기도 잡고 황토 목욕도 하고, 좋아하는 풀 냄새도 실컷 맡고서 시원한 그늘 속에서 까무룩 단잠에 빠지는 강아지, 마당 한편에 마련한 간이 수영장 한가득 물을 채워 두고 하하 호호 물놀이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함께 나의 여름이 달콤하게 익어 갔다.
큰 비가 지나간 어느 날 인가 해서 수량이 많아진 근처 계곡으로 온 가족이 짧은 소풍을 떠났다. 큼직한 수박 한 통과 물 한 병만 있으면 완벽한 시간이다. 아이들과 계곡에 도착해 발을 담그고 물장구치는 그 순간 심바가 물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진짜 수영을 하는 거야? 진짜?' 호기심 어린 모두의 눈초리. '배운 적도 없는 수영을 어떻게 하겠어.' 의심하는 눈초리 속에서 한 발 한 발 물속으로 걸어 들어간 강아지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물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유유히 헤엄치기 시작했다.
땅 위에서 버벅대고 우당탕탕 헐겁게 넘어지던 그 모습은 어디로 가고 여름의 제왕처럼 위풍당당하게 헤엄치는 그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자신의 강아지를 멋지다고 생각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운 좋게도 나는 그 순간 그를 정말로 멋진 자연의 피조물이라고 생각했다.
유전자 어딘가에 숨겨져 있다가
특수한 환경과 맞닥뜨렸을 때
자연스레 발현되는 타고난 자질은
얼마나 대단한가?
배움 너머 어딘가에 자신에게 새겨진
유전적 특성을 찾아
마음껏 자맥질하는 그의 모습은
자연의 신비였고 아름다움이었다.
레트리버의 발에는 물갈퀴가 있다. 오랜 세월 오리 사냥을 하던 습성 때문에 그러한 진화가 이루어졌을 거라고들 하지만 때로 나는 엉뚱한 상상을 한다. 그들의 유전자를 거슬러 올라가면 물개나 물범처럼 바다에서 서식하는 포유류와 접해 있지는 않을까? 오래전 조상들의 바다를 헤엄쳐 먹이 생활을 했던 습성을 이어받아 물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며 그 기원에서 오는 평안함을 누리는 것이 아닐까.
자신의 특성을 발현시켜 자유롭게
유영하는 존재의 모습은 아름답다.
심바를 바라보던 내 시야에 물속에서 어푸어푸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어린다. 그들이 타고난 장점과 그것이 발현될 수 있는 환경, 나는 그것을 찾으려 얼마나 한 노력을 기울였을까? 재능을 찾아 그 기질을 발현하는 것을 스스로의 몫이라고 내버려 두려면, 재능이 없는 영역에서 서툰 것 또한 용납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날마다 강요하는 영어 동화책과 수학 학습지는 우리집 강아지에게 수영도, 100미터 달리기도 1등 하라고 등을 떠미는 것과 것과 무엇이 다를까?
아이들이 나와 남편으로부터 흘러들어온 유전적 특성을 가지고 살다가, 삶의 어느 순간에 그들 스스로 자유롭게 유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나 자연스럽게 날아오를 수 있도록, 나는 그저 그 안의 힘이 꺾이지 않게 다독이고 보살펴야 하는 존재가 아닐까? 수영을 배우지 않아 허우적대는 아이들에게 달려가 기꺼이 그들 곁에서 보호자가 되기를 자처하는 강아지의 모습을 보며 감동과 시름이 깊어지는 이유다.
배움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스스로 찾기까지
엄마는 그저 그 날개가 꺾이지 않게 지켜줄게.
고요히 반짝이는 햇살 아래 다짐해 본다.
그러니 심바야, 아이들의 물놀이를 부탁해. 엄마는 여기서 좀 쉬었다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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