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쑥 자라개
애완동물을 키운다면 당연히 유기동물을 입양할 것이라 생각했다. 브리더라는 이름 하에 순전히 금전적인 목적으로 저질러지는 온갖 잔혹 범죄들에 대한 기사를 읽고 분노하며 날을 세우던 날들이 있었고 인간이라는 한 종의 일원으로 유기동물에 대한 죄책감이 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펫숍에서 입양한 강아지를 키우고 있다.
아내 몰래 골든 레트리버를 입양할 생각으로 정보를 모으고 있던 남편은 친구들에게서 펫숍을 운영하는 지인을 소개받게 되었다. 혈통 좋고 예쁜 강아지 한 마리가 있는데 구입하겠냐는 제안을 받기도 여러 번, 온갖 사탕 발린 설득에도 넘어가지 않는 아내의 반대와 유기견을 입양하리라는 결심 때문에 결정을 지체하던 그는 긴 출장의 끝머리에서 마침내 펫숍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가게 안에는 작은 유리장 안에 갇힌 강아지들이 그를 바라보며 꼬리를 흔들어 댔다. 성견이 되어도 5킬로를 넘지 않는 소형견들이 좁은 장안을 부지런히 오가며 그를 유혹했지만 그의 시선은 소형견들과 같은 크기의 장에서 세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어 정물처럼 그 자리에 박혀 있었던 강아지 한 마리를 향했다.
- 한 번 안아 보실래요?
직원의 제안에 남편은 무언가에 이끌리듯 그 작고 따스한 생명체를 안아 들었다.
- 얘는 얼마예요?
- 200만 원이에요.
200만 원이라니! 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가격에 흠칫 놀란 그는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 그런데 K 친구분이시니까 20만 원에 드릴게요.
- 네? 20만 원이라고요? 200만 원짜리 강아지를요?
가게 주인은 강아지 가격을 20만 원으로 낮춰 주는 것뿐만 아니라 강아지를 키울 때 필요한 각종 준비물까지 잔뜩 쥐어 주며 남편을 설득했고 그는 결국 20만 원을 건네며 품을 떠나려 하지 않는 강아지와 이삿짐처럼 커다란 가방을 떠안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는 왜 200만 원짜리 강아지를 20만 원에 구입하게 되었을까? 내 삶을 일대 혼란으로 빠뜨린 펫숍 주인은 왜 적혀 있던 가격의 1/10의 값으로 저렴하게 강아지를 판매하게 되었을까? 남편이 선량해 보여 강아지를 잘 키울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일까? 강아지가 남편을 잘 따르는 모습에 훈훈한 마음이 일어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 집으로 보내 준 것일까?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남편이 펫샵을 방문했던 시기 우리 집 강아지는 벌써 2개월령을 넘어 3개월 차에 접어들고 있었고, 대형견의 특성상 어느 시기를 넘고 나면 급속도로 자라는 급성장기를 맞이하게 된다. 급성장기를 맞이하여 무럭무럭 자라는 강아지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도 펫샵에는 없거니와 사료와 각종 예방 주사 등의 엄청난 부대 비용을 떠안고 이미 커버려 팔리지도 않을 그를 가게에 데리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막대한 손실이 예상되었던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거의 공짜’로 데려왔다며 강아지를 내려놓는 그로 인해 우리 가족은 대형견을 떠안듯 키우게 되었다.
펫숍에서는 강아지가 너무 커지면 잘 팔리지 않기 때문에 급여 조절을 엄격하게 하는 편이라 새끼이지만 대형견의 피가 흐르는 우리 아이는 늘 배가 고픈 상태였다. 마음껏 먹으라고 사료를 부어주니 와그작와그작 그릇까지 먹어 치울 기세였다. 그것이 안쓰러워 마음껏 먹으라며 사료를 내어주면 토할 때까지 먹고, 또 토하고 먹고를 반복하며 먹는 것에 엄청난 집착을 보였다. 덕분에 입양 초기 우리 집은 토사물과 배설물의 하모니 그 자체였고 힘든 집안일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던 날에도 눈치를 보고 허겁지겁 사료를 집어 먹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파양이라는 카드는 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미의 사랑을 받으며 젖을 먹어야 할 시기에 좁은 유리장 안에 들어와 사람들이 주는 사료를 눈치 보며 아껴 먹었을 강아지는 안쓰러웠다. 더불어 펫숍에서는 접종을 전혀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3개월령이 되어서야 1차 접종을 시킬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아기 강아지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이므로 화가 치밀기도 했다. 더군다나 접종을 마칠 때까지는 바깥 산책도 지양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기에 에너지가 남아도는 아기 대형견이 5개월령에 접어들 때까지 집 안에 갇혀서 온갖 사고를 저지르는 것을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을 돈으로 환산하여 판매하는 펫숍의 실존에 대해 나는 반대하지 못한다. 그보다 더 한 것도 돈이 된다면 거래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들의 처사가 다른 이들에 비해 특히 나쁘다고도 생각하지 못한다. 소도, 돼지도 금전으로 거래되는데 강아지라고 특별히 금지되는 것이 형평성에 맞는 일인지 판단해 보면 마냥 강아지들의 편에 설 수도 없다.
이렇듯 동물들의 번식이나 판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는 더 근본적인 무엇인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동물을 거래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은 제공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종의 특성에 맞게 케어가 이루어지고 모체와 함께 있을 수 있을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 주며 최소한의 접종은 시켜 그들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는 것. 그것을 개인의 몫으로, 업주의 윤리, 양심의 몫으로 넘기기에는 우리는 돈의 위력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개인의 몫이 아닌 사회적인,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그들을 감히 조금 더 윤리적으로 편안한 마음으로 쇼핑하는 모습을 꿈꾼다.
가성비라는 말에 범위가 있다면
생명이 있는 것에서 만큼은 열외를 두고 싶다. 가성비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온갖 잔혹한 형태의 학대에서
그들을 데리고 나와
그들 몫의 존엄을 베푸는 사회를 희망한다.
먹을 것도 사랑도 고팠던 강아지에게 우리 가족이 베풀 수 있었던 최고의 사랑은 마음껏 먹고 쑥쑥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주는 것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타고난 그대로의, 유전자에 새겨진 모습 그대로 자라날 수 있게. 그가 누리지 못했던 사랑을 채워주며 커 갈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우리 집 강아지는 40 킬로그램의 건장한 청년이 되었다. 사랑하는 가족으로서 한 번 제대로 들쳐 안아볼 수도 없는 육중한 몸을 바라보면 그 나름의 안타까움과 고충, 아쉬움이 없을 수 없지만 그래도 나는 오늘도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이야기한다.
많이 먹고 쑥쑥 자라 개.
다행인지 불행인지 200만 원이었던 강아지는 시즌 지난 상품을 떨이하듯 20만 원이라는 헐값에 할인되어 우리 가족이 되었다. 그러나 입양되지 못한 펫숍의 많은 대형견들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자꾸만 궁금해진다. 막으려 해도 부정적이고 끔찍한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상상은 내가 부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인 걸까? 겁이 나고 무서워서 막아왔던 상상력의 둑을 터뜨린다. 아이의 선한 눈동자를 바라보면 더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예측하고 조사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엄마, 그 많은 찹쌀떡들은 다 어디로 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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