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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희 Feb 03. 2024

발도장을 찍을 자격

프로 똥줍러가  되었습니다

새벽 5시 오랜만의 새벽 기상이다. 상쾌한 마음으로 생산적인 시간을 기대하며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간 순간. 코를 찌르는 악취에 얼어붙고 말았다.

- 이게 무슨 냄새야!

하수구가 역류해서 오물이 흘러넘쳤나 의심했지만 내 앞에 펼쳐진 풍경이 모든 것을 설명해 준다. 거실엔 온통 우리 집 강아지의 노오란 발자국이 가득하다. 급하게 강아지 화장실로 달려가니 역시나, 거대한 응가 위에 선명한 발자국! 우리가 잠든 사이에 응가를 밟고 들어와 밤새도록 거실을 누비고 다닌 그! 바로 우리 집 대형견의 흔적이다.


설상가상으로 둘째 아이 몸이 안 좋다 하여 밤새 틀어둔 보일러까지 한 몫해서 발자국 모양 그대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응가들이 거실 바닥에 가득했다. 용의자는 사건 현장을 떠나 평화롭게 새벽 단잠을 주무신다.

- 너!! 발 좀 보자!


엄마, 나 언제 나가요?

육중한 몸을 눕혀 발 수색이 시작되었다. 역시나 발톱 사이사이 끼인 덩어리들이 증거로 남아있다. 바득바득 녀석의 발을 씻기며 그 순간부터 내 머릿속에는 치열한 시간 싸움이 시작되었다. 출근하려면 두 시간 반 가량이 남았는데 내 준비 시간과 아이들 아침 차려주는 시간, 등교 준비시킬 시간을 제외하면 대략 한 시간 정도가 남는다.


그때부터 내 발에는 모터가 달리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어다니며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새벽에 청소기를 돌릴 수도 없거니와 그럴 수 있는 청소도 아니다! 물티슈 한 봉지를 희생하기로 결정하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득도하는 심정으로 거실 저쪽 끝부터 이쪽 끝까지 문지르기 시작했다.


청소를 해 본 사람은 안다. 걸레와는 달리 물티슈라는 녀석은 어떤 화학 원료에 의해서인지 웬만한 먼지나 자욱도 몇 번만 쓱싹쓱싹 문지르면 마법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그러나 이미 거실 바닥의 뭉근한 열에 의해 딱딱하게 굳은 응가는 땅바닥과 끈적하게 들러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것을 떼려 치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는 것이 엄마라는 존재이다. 이 꼴을 그대로 두고 출근했다가는 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애들 학교도 보내야 하고, 출근도 해야 하고,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어쩔 수 없지. 장갑을 벗고 물티슈 한 장을 바닥과 마주하고 손톱으로 녀석을 긁기 시작했다. 긴 손톱이 키보드에 닿는 느낌이 싫어 손톱을 짧게 자르는 내 습관이 그때만큼 싫었던 적이 없다. 문지르고 긁어내고 파내고 닦고… 말 그대로 피나는 청소 끝에야 깨끗한 바닥과 마주할 수 있었다.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아기를 키울 때만큼이나 배설물과 친해져야 한다는 이야기다. 새끼 강아지의 소량의 배설물을 처리하면서도 헛구역질하며 오만상을 찌푸리던 나는 이제 그의 응가가 예전 같지 않으면 걱정하고 그 점성을 이용해 녀석들을 처리하는 스킬을 장착한 프로가 되었다. 내가 똥부심으로 가득 찬 프로 똥줍러가 된 것은 어떠한 성장일까? 퇴보일까? 무뎌짐일까? 너그러워짐일까?


대형견을 키운다고 하면 대뜸 ‘얘네들 똥이 그렇게 크다면서요? 사람 거 보다 커요? 진짜예요?’ 묻는 분들이 있다. SNS괴담처럼 퍼져나가는 대형견의 응가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규명해 달라는 것인데 그때마다 진실을 말하면 우리 애를 똥 괴물로 바라볼까 봐 걱정되는 마음에 씁쓸한 미소로 웃어넘기곤 한다.


그래서 우리끼리  말인데요, 얘네 건 진짜 커요! 가끔 물어보시는 분들이 있어서 그럽니다. 감히, 상상하지 마세요. 상상보다 크고 튼튼하니까.


둥실둥실~ 엉덩이는 귀여워!


반짝반짝 빛나는 거실을 아이들 등원을 도와주러 오신 시어머니께 맡기고 집을 나섰다. 아, 겨울 아참 찬 공기가 이토록 산뜻했던가! 앞으로 딱 24시간만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교실 청소할 때나 사용하는 스테인리스 스크래퍼가 생겼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정집에 이 요상한 도구가 왜 있느냐 물으신다면 손톱에 피나도록 똥 긁어 본 사람이라면 모두 다 들이실 거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집에 스크래퍼 하나씩은 갖고 계신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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