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이 지나면서부터 찝찝한 마음이 살아난다.
그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어서 더 찝찝함으로 강하게 느껴지는 듯하다.
처음엔 일요일이 되면 무조건 아이들을 데리고 힘들어도
일어나서 교회를 데리고 갔는데 점점 아이들이 적응하고 나니 안일해진 마음에 아이들만 보내고 나는 가지 않는 것이다.
교회, 정말 한때는 나에게도 무조건 가야 하는 곳이었는데
결혼하고 나서부터 가지 않으니 마음이 사라진 것이다.
이렇게 나에게도 정말 마음을 새겨야 나갈 수 있는 그런 곳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차라리 아예 눈을 뜨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아서 못 갔다고
핑계 아닌 핑계라도 대보겠지만 아이들이 나가기 준비를 위해선 분명히 내가 눈을 뜨고 일어나야 하기에 그냥 내가 마음이 없고 게으름으로 가지 않았다는 걸 스스로 잘 알기에 찝찝함이 피어오른다.
후회할 거 알면서도 그 잠깐의 편함을 선택하는 내가 더욱
한심해지기도 하는 순간이다.
거기다 이번주엔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중학교 친구들의 사진을 보게 되었다. 웬만하면 보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정말 순식간에 마주하게 된 장면이었다
서로 살아가는 방식과 길이 달라진 친구들이기에 내가 없이 그들끼리 만나고 친밀하게 지내는 모습에 많은 질투심에
불타오르면서 우울함으로 나오니 어느 순간 피하게 되어버렸는데 하필 딱 보게 된 것이다.
그 분노와 질투, 거기에 이어지는 우울감을 너무 조절하고 싶었고 사라지게 하고 싶었다.
그들끼리 따로 채팅방을 만들어 약속을 잡아 만나고 모여
캠핑 가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애써 마음을 다잡아보려 노력하며 스스로를 이해시키고자 노력했는데 쉽지 않았다.
그러니 나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들의 만남을
목격하고 싶지 않았던 것.
이 두 개가 합쳐지니 일요일이 지나고 월요일이 지나면서
마음이 여간 찝찝한 것이 아니다.
나도 이런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깊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 말이다.
어차피 결혼하지 않은 그 친구들과 내 삶의 방향 자체가 다른데 내 인생을 그들과 함께 가고자 하려고 하는 게 말도 안 되는 일뿐더러 나는 가족만이 중요하지 그들과 꼭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다는 것. 그리고 그 근본의 뿌리 깊은 곳에 내가 해결하지 못한 나만의 자격지심이 함께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질투할 것도, 질투할 수도 없다는 것.
이렇게 생각하며 근본적인 답을 깨닫기까지 늦지 않은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럼에도 알게 되니 찝찝한 마음이 조금은 사라졌고 기본적으로 다름을 받아들이고자 다짐하게 되었다
내가 어떻다고? 그렇다고 내 인생이 싫은 것도 아니고 감사함으로 살아가고자 하면서도 이상하게도 왜 그들 앞에 서면 작아지고 위축이 되는 것인지 왜 나 상황 속에서 당당하지 못한 지 전혀 그럴 이유가 없음에도 일단, 그들이 만나는 상황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거 자체가 나를 위축시키고 있었나 보다.
이제 그러지 않을 것이다.
그럴 이유조차 없고 누구도 그러라도 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나는 내 현재 상황이 너무 좋고 너무 행복하고 정말 만족한다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건 그들이 아닌 나만의 가족들.
순간 찝찝한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알아챈 듯
아들이 본인의 문제들로 내 마음이 어지러 놨고 조금도 다른 곳에 향하지 못하게 만들어줬다. 참, 고맙다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