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느낀 점
지난주, 새 학기가 시작되고 처음 공개수업이 있었다.
너무나도 운 좋게 날짜가 딱, 내가 쉬는 수요일이라 당연히 갈 것만을 생각하며 딴 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무엇을 입고 갈까 하는 귀여운 고민하던 그 순간 머릿속에 쓱 스쳐 지나가던 곧 다가올 사촌 동생의 결혼식-
설마, 설마 하며 기록해 둔 달력 날짜를 보니 정말 딱 공개수업이 예정되어 있는 같은 주 토요일인 것이다.
일하고 있는 직장 원칙상 일주일, 일요일을 제외하고 한 번 쉬는 것인데 토요일을 미리 빼놨기에 나는 그 주 수요일에 출근을 해야 했던 것. 그렇게 당연히 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던 공개수업에 갈 수 없게 되었다.
천만다행인 건 참여할 수 있는 남편이 갈 수 있었기에 크게 마음이 쓰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막상 당일이 되고 나니 마음이 불편했던 건 사실이었다
그래도 아이들은 엄마의 상황을 이해해 주었고 그래서 그런지 전혀 서운해하는 기색 또한 없었기에 그나마 출근길의 발걸음을 무겁지 않게 나섰다.
마침 점심시간과 겹친 공개수업, 그 덕에 나는 편하게 밥을 먹으며 남편에게 실시간으로 상황을 전달받을 수 있었는데 막상 남편은 아들 반과 딸의 반을 요리조리 왔다 갔다 하느라 정신없고 바빠했지만 지금은 어디, 지금은 어디라며 모든 것이 다 궁금한 나의 마음을 꿰뚫어 보든 사소한 것 하나하나 세세하게 전달해 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딸아이반이라며 지금 발표가 시작되었고 선생님이 뽑기로 순서를 정하는데 딸아이가 세 번째 발표하게 되었는데 지금 발표를 하기 위해 나가는 딸아이의 모습이 영~ 씩씩하지 않다고도 전했다.
모습에서 보여주듯 딸아이는 역시 순서를 기다린 뒤 뒤이어 발표를 시작하고 말을 하기도 전에 하지 않겠다며
눈물이 터졌다는 것이다. 아, 정말 장면을 실물로 본 것도 아니고 글자로만 본 것임에도 어떤 모습일지가 바로 떠오르면서 나의 눈시울까지. 뜨거워지는 게 느껴졌다,
결국 발표를 하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왔고 조금 지난 뒤에도 선생님은 딸아이에게 몇 번의 기회를 더 주셨다고 했지만 끝내 발표를 하지 않고 수업을 끝마쳤다고 했다.
마음이 안 좋으면 어쩌나 걱정만 하고 있던 나와 달리 아빠와 하교 한 딸은 편의점에 가서 젤리를 산 뒤 신나게 학원으로 달려갔다는 다행인 소식을 끝으로 그날의 공개수업 전달 이야기는 끝이 났었다.
그날 저녁 아무래도 좋을 수 없는 마음으로 퇴근해 집에 와 딸아이에게 발표하지 못한 마음에 대해 물었다.
사람들이 많아서? 부끄러워서? 둥 내가 예상했던 대답들과는 달리 발표 주제는 부모님의 모습이었고
딸아이는 아빠의 모습에 대해 적었는데 “ 우리 아빠는 대머리입니다 ‘ 이 포인트에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왜? 아빠가 부끄러워?라고 반문하는 나의 물음에 “아니, 애들이 웃는 게 싫어 ‘라고 단호하게 말하던 아이.
그 뒷 이야기를 이번, 학부모 상담 때 들을 수 있었다.
사실 한 달 채 되지 않은 학기 초 상담은 좀 생각이 많아지는 결정이긴 하다.
그리고 당연히 갈 거라고 생각했던 공개수업에서 보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오기에 보고 판단하고자 상담 신청을 안 했던 아들 녀석과는 달리, 딸아이는 해야 할 것만 같았던 나의 마음이 딱 맞아떨어졌다고 생각이 들었던 기회-
전화상담으로 할 수 있었지만 아이와 생활하는 선생님도 뵙고 싶었고 생활하는 공간의 느낌도 느끼고 싶어 방문상담으로 선택했다.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딱 정해진 시간에 맞춰 도착, 가기 전 까진 그렇게 떨리지 않았는데 막상 노크하기 전 왜 이렇게 떨리던지. 주먹을 꼭 쥐고 똑똑똑 세 번의 노크로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선생님은 온화한 미소로 맞이해 주셨고 센스 있으시게 딸아이 책상에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한 번 봐도 된다고 하시기에 책상 서랍을 보니 생각보다 잘 정돈된 모습에 마음속으로 한 번 놀라기도 하며 대견스러웠다. 본격적으로 선생님과 대화가 시작되었고 우리의 이슈는 역시나 공개수업, 발표로 시작된 눈물.
일단 딸아이는 수업시간 먼저 손을 들어 질문을 하는 편이라고 하시며 말 문을 여셨는데 그 말에 크게 두 번 놀랐다.
다소 소극적으로 임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우리 부부의 생각의 정 반대였기 때문이다. 연습도 했었고 평소에 워낙 적극적으로 잘하던 친구라 그래서 선생님은 그날 발표하지 않고 끝나면 딸아이가 많이 아쉬워할 것이라는 판단에 여러 번의 기회를 주셨던 것이었다.
결국 하지 못하고 끝나자 다음날에도 기회를 주셨는데 그날도 하지 않겠다고 해서 또다시 아쉽게 끝나게 되었다면서 그날 하굣길 왜 하지 않얐냐고 물으니 집에서 말했을 때처럼 아빠 대머리라고 하면 웃을까 봐 그랬다고 했다는 것이다.
근데 그 발표 내용을 미리 사전에 선생님이 다 보셨고 그 내용이 들어가 있어 딸아이에게 이런 내용이 들어가면 아빠가 부끄럽지 않으실까? 물으니-
“아니요, 우리 아빠는 당당해요 “라고 자신 있게 외쳤다는 것이다. 뒤이어 딸아이 의견까지 물으니 ”저도 안 부끄러워요 “라고 자신 있게 했다길래 통과를 시키셨던 건데 막상 많은 학부모들 사이에서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 하려니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저녁, 다시 딸아이에게 물었다.
- 그럼 왜 엄마로 하지 않고 아빠로 했어?
- 엄마는 못 온다고 해서 아빠로 했지.
- 아.. 그랬구나
- 엄마.. 혹시 서운해?!
- 응?? 아니 아니야
그 순간 상황에 맞지 않다는 것도 알고 내가 재혼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라서라는 것도 알지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만약 나의 상황이었다면 분명 나는 엄마에 대해 썼겠고 새아빠 딸은 자신 아빠에 대해 썼겠지. 그리고 그 둘은 당연하다고 받아 드렸겠지만 묘하게 서운해했겠지. 그것이 일반과 재혼과의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분명한 차이인 것도 모른 채
어휴, 정말 전혀 하나도 서운하지 않을 수 있어서 너무 기쁘고. 아빠의 대머리인 모습까지 자랑스러워하는 너의 모습,
너란 아이가 참으로 사랑스럽고 대견스럽고 이런 상황에서 너희를 양육할 수 있다는 것이 절대 당연하다고 여기지 않고 평생 감사히 여기며 살아가야지 다짐하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