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동갑 남자랑 사는 이야기 3

아빠 좋아, 남편 좋아

by 은조


선거날, 사전투표를 미리 한 터라 개운한 휴일로 다가왔다.

전날 쉬는 날이라고 맥주를 마셨는데 황남편이 퇴근하기 전 시작된 혼술은 나를 취하게 만들었고 나는 만취가 되었다.


그래도 초반엔 황남편을 기다리며 속도와 취기를 조절하고 있었는데 두세 시간 뒤 밖에서 지인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그곳을 들렸다 집에 온다는 황남편의 연락을 받고 나서 끈을 놓고 마셔버린 것이다.


그 음주의 여파는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었고........

아침에 분명히 눈은 떴지만 뜬 게 아닌 거 같고 침대가 나를 지배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하는 거 같은 그런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창 너머로 보이는 밝은 햇살을 보니 이렇게 누워만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불끈! 들었다.


밖에도 나가고 싶었고 해장도 필요하고 황남매도 밥을 먹어야 하니 뭘 먹을까, 어디로 나갈까 하며 황남편에게 내 마음을 전달했고 우린 나름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침대 위에서


몸이 편하니 생각은 점점 게을러지고 둘 다 말로만 떠들 뿐 마음속엔 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것이 서로에게 비쳤다.

하지만 이런 소중한 함께 있는 날에 집에만 있는다는 건 너무 아깝다는 마음이 다시 들어 나는 나갈 것을 당당하게 요구했고 황남편의 “나가면 돈 많이 쓰는데” 하는 대답에서 나의 호기롭던 당당함은 단 1초 만에 꺾이고 말았다.


며칠 전 주말에도 이미 많이 쓴 게 사실이고 친정엄마에 생신으로 조금 큰 지출도 있던 것들이 머릿속에 쭉 지나가는데... 더 이상 거기서 나는 당당함을 유지할 수 없었고 미안함마저 들던 찰나에 다시 미안해지지 않았다. 미안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렇게 한마디로 모든 갈팡질팡했던 마음은 한순간에 정리가 되었고 그렇다면 이제 눈치게임이 시작된다.

우리 집 휴일의 암묵적인 규칙, 평상시에는 먹지 못하는 라면을 먹는 날인데 침대에서 일어나 누가 끓일 것인가,,,

아들은 어떤 라면 보다도 육개장 사발면을 좋아하고 딸은 짜파게티를 좋아해서 각자 따로 해줘야 한다.


어려운 건 아니지만 귀찮은 게 사실이라 둘 다 버티고 있는데

왜 누워만 있냐는 나의 말에 “너도 이 나이 돼봐”라는 대답에 조용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이러단 끝이 안 날 거 같아서 아이들 라면 먼저 내가 해결했다.


그러나 나의 오기? 자존심? 우리 라면만큼은 끓일 수 없었고

끝내 우리의 라면은 황남편이 끓였다. 먹는데 물이 많은 한강라면이었지만 그걸 말해버리면 다음엔 안 할 거 같은 생각에 맛있는 척 김치를 동무삼아 먹었다. 한강이든 어떻든 해장에 라면은 언제나 옳고 국물은 더 옳았다.


모두 배가 찼고 뒷정리를 마친 나도 다시 침대에 누웠다.

나가지 않는다는 생각 하니 오랜만에 누워만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우니 술의 기운이 다시 올라왔고?

한숨 더 자야겠다고 생각하니 순간 행복해졌다.

잘 수 있는 상황 때문일까? 그 상황 속 여유로움이 느껴져서였을까? 무엇 하나 때문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순 없지만 어쨌거나 나는 행복한 잠에 들었다.


오래 잔 거 같진 않은데 “엄마 자? ”하는 딸에 물음에 “ 응 엄마 자고 있어 깨우지 마”라고 대답하는 황남편에 말소리에 눈이 떠졌다. 조금 더 자려고 애써 눈을 감아 보지만 다시 잠들지 못했고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양심의 가책으로 몸을 일으키는데 황남편이 조금 이따 동네 한 바퀴 돌자는 이야기를 했다. 어딘가 상해 버린 마음에 그리고 나갈 생각이 전혀 없어진 마음에 나가지 말자고 이야기 한 뒤 집안일을 시작했다.


또다시 배가 출출해지던 찰나 황남편도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고 내가 지난주부터 노래 노래 부르던 주꾸미를 포장해 오겠다고 했다. 신난 나는 아이들 먹일 고기도 함께 부탁했다.


생각보다 황남편은 엄청 빨리 다녀왔다. 받으라며 한가득 담겨있는 봉지 속엔 주꾸미와 함께 먹을 치즈와 아들이 먹고 싶다던 삼겹살, 상추, 딸아이 취향에 소고기 거기다 냉면까지 담겨 있었다. 황남편은 고기를 굽고 나는 식탁에 필요한 세팅들을 마친 뒤 상추를 흐르는 물에 앞 뒤 정성껏 닦고 있는데 밖에 나가지 않는다고 어딘가 상해 있던 마음이 괜찮아지며 이런 상황 또한 나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굽고 끓이고 볶고, 다 정리를 한 뒤 앉은 식탁에선 황남매가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내 앞에는 부르스타 위에 올려진 팬에선 빨간 양념들이 바글바글 섞이며 통통하게 오르는 주꾸미가 있었는데 그 순간이 너무 행복했다. 그 감정을 숨기지 않고 내뱉었다. “ 너무 행복하다”


모두 각자 좋아하는 음식들로 가득 찬 모습 속 삼겹살을 먹으며 엄지 척해주는 아들을 바라보는 황남편의 시선 눈빛 아빠가 해주는 냉면이 제일 맛있다고 말하는 딸아이의 말에 작지만 따뜻한 미소를 머금는 황남편의 모습에 숨길 수 없는 행복의 감정이 올라오지 않았을까, 지금에서야 조금 더 깊이생각해 본다


거의 대부분 우리의 생각과 의견을 잘 들어주고 따라주는

황남편, 무려? 나보다 나이가 12살이나 많은 띠동갑 남편이지만 나이만큼 생각 또한 성숙하고 깊어 너무 감사하다.

이렇게 감사한 남편 이것만 그 한마디 했다고 마음이 상했던 나를 돌아보며 나는 언제 깊어지고 성숙해질까 생각이 드는

이 남편이 내 남편이라 너무 다행이다 생각 드는 그런 어느 날의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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