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에 들어오자, 동혁이 방 안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
폭풍 같은 하루를 보낸 난, 500유로를 손에 쥐고 멍하니 있었다.
인터넷 스트리밍 사이트를 열고, 음악을 틀었다.
똑똑!
겨우 잠잠해졌는데, 노크 소리에 다시 심장이 뛰었다.
“지금 듣는 노래가 뭐야?”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동혁의 얼굴을 보니 피식 웃음이 났다.
“이하이. 온리”
아무라도 붙잡고 울고 싶은 날, 다가온 동혁을 보며 말했다.
“무슨 일 있어?”
울음을 겨우 참고 있는 날 보며 동혁이 말했다.
“구설에 오르는 거, 진짜 힘든 일인데.”
내 이야길 듣자, 동혁이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붉었던 하늘에 막 어둠이 스미고 있었다.
“지난번 네가 얘기한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재미있었어.”
“그렇지? 좀 오래되긴 했는데, 미생도 있어. 정주행 각오하고, 볼래?”
“아, 그거?”
“봤어?”
동혁이 잠시 생각에 잠기다 말한다.
“넌 그래도 정체를 드러낼 수 있잖아. 난 그러면 끝장이야.”
“무슨 소리야? 네 정체가 뭔데?”
끝장이라는 말에, 나도 모르게 답을 조르는 듯이 물었다.
“나 한국 사람이야. 북한 사람 아니고. 연기였어.”
“뭐?”
“한국에서 사고를 좀 쳐서. 다시 시작해 보려고.”
“북한 사람으로 시작한다고?”
“흠, 그게 더 편해서.”
“무슨 일 하는지 모르지만, 독일에서 북한 사람보다는 한국 사람이 훨씬 유리할 텐데.”
동혁은 가만히 듣고만 있다.
오늘은 끝까지 정말 요란스럽다. 이대로 잠을 이룰 수 있으려나. 그런데 문득, 동혁의 말투가 훨씬 자연스럽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까지 그걸 눈치조차 못 채다니.
학생 식당 메뉴에 내가 좋아하는 감자경단이 나왔다.
샐러드도 듬뿍 담아 자리에 앉았다.
“오늘도 혼자야?”
고개를 드니 벤이 서 있었다. 그는 내 앞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난 얼른 머릿속으로 얼굴을 스캔했다. 혹시 뭐 묻은 건 없겠지?
“응, 빨리 먹고, 시험 준비하려고.”
벤을 만나니, 나도 모르게 시험 이야기가 나온다. 윽. 다른 이야기도 많은데.
“하하, 논문 준비하겠네. 주제는 정했어?”
“아직 할 게 많이 남긴 했지만. 슐츠 교수님과 상담해 보려고. 통계학 시험과 젠더 교수님 과제도 통과해야 하고.”
“그래, 좋은 결과 있길 바라! 난 졸업 후 베트남에 갈 것 같아. 아버지 회사에서 몇 년 일해보려고.”
“베트남에?”
난 지금 헤어지는 것처럼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응, 한국에 있는 너랑도 가까워지겠지. 독일보다 더.”
벤은 의미심장한 말을 하며, 식판을 들고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