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는 날 데리고, 좋은 레스토랑엘 데려갔다.
“유학 생활 힘들 텐데, 잘 먹어야 해.”
그다음 주도 아저씨는 나를 반제 호수로 이끌었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어. 독일서는 그냥 우산으로 가리고 다 입더라.”
난 수영할 기분이 아니라고 고갤 저었다. 하나를 만나진 못했다.
“언니, 요즘 어디를 그렇게 다니는 거야?”
하루 종일 식당에서 서빙하고 들어온 저녁, 현지가 물었다.
“교회가 언니 이야기로 발칵 뒤집혔어.”
“무슨 얘기?”
“언니가 서울식당 아저씨랑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안 좋은 일이 일어났다는 걸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상한 우유를 마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절대 아니야. 누가 그런 소릴 해?”
“한인 사회 좁은 거 알지? 여자 유학생이 그런 소문 걸려들면, 다들 잡아먹겠다는 듯이 떠들어 대는 거?”
현지는 속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난 멍해졌고, 엄마의 우는 얼굴이 떠올랐다.
‘독일 가면 사람 조심해야 해. 되도록 한국 사람 말고 독일 사람들과 만나.’
병원에 있는 엄마가 이 소식을 들으면 얼마나 속상할까. 마음이 아팠다.
“로운아, 요즘 어떻게 지내니?”
영상 통화 화면에 비친 아빠의 얼굴이 평소보다 훨씬 기운 없어 보인다.
“고모에게 이야기 들었다.”
“고모요?”
“그래, 네가 식당 아저씨와 안 좋은 소문이 났다고.”
아빠는 소문이라고 에둘러 말했지만, 표정이 일그러졌다.
“사실 아녜요. 아빠.”
“그런 소리 들을 거면 당장 때려치우고 나와! 힘든데 뒷바라지해 줬더니.”
아빠는 허공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
뒤셀도르프에 사는 고모까지 내 이야길 듣다니, 나쁜 소문은 태풍처럼 모두를 휩쓸고 간 걸까.
난 급여 정산을 하기 위해 식당에 갔다.
“사장님, 저 이번 달 급여 정산해 주세요. 일은 더 못하겠어요.”
“여기가 어디라고! 당장 꺼져!”
아주머니는 기가 막히다는 듯 악을 바락바락 쓰며 나에게 고함을 쳤다.
난 큰 소리에 움츠러들었다. 주말도 반납하고 종일 서서 고생했는데, 남은 게 소문뿐이라니. 서러움이 복받쳤다.
“안 돼요. 사장님…. 급여 계산해 주셔야 갈 거예요!”
“뭐? 미친년! 사람들이 널 보고 뭐라는지 알아?”
그녀는 날 벌레 보듯 하며 말했다.
“김사장. 무슨 일 있어요?”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입술을 꽉 깨물자, 어디서 많이 본 남자가 식당에 들어왔다. 주성이었다. 아니 요나스.
“아유, 양 대표가 여긴 웬일이에요?”
아주머니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목소리가 나긋해지더니, 주성에게 자리를 권했다.
“제가 한인회 일도 하는데, 요즘 시끄러운가 보네요. 조용히 급여 처리해 주고, 끝내세요. 공부하러 온 학생 애먹이지 말고요.”
난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리에 귀를 의심했다. 지난번 비 오는 날도 그렇고, 내가 필요할 때 나타나다니. 엄마가 열심히 기도해서일까.
“... 아유, 우리 남편 얼굴에 먹칠을 했어요. 좁아터진 동네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제가 더 억울해요!”
나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어허, 김사장. 일 어렵게 만들지 말고요. 나도 거래선 하나 없어지면 불편해요.”
주성의 말에 아주머니의 얼굴색이 바뀌더니, 계산대에서 100유로를 몇 장 빼, 손에 쥐여 주었다.
“네가 빠졌던 날은 계산에서 뺐어.”
난 떨리는 손을 보여주지 않으려 애쓰며 현관으로 향했다. 돈의 액수보다, 주성의 정체가 궁금해져 넋이 나간 얼굴로 겨우 밖으로 나왔다.
“한인 식당 담당하는 유통업체가 다음 달 바뀔 모양이에요. 서울 식당도 잘 챙기라 얘기할게요”
주성은 가게 안에서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다 흘깃 돌아서 나를 쳐다보았다.
‘고맙다고 안 해도 돼. 얼른 가!’
그의 따스한 눈이 말하는 것 같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