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종일 어디 갔다 왔어?
면접은 면접인지라, 긴장이 풀려 침대 위에 댓 자로 누웠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현지였다.
“서울 식당에서 면접 봤어.”
“일하려고?”
“응, 돈 벌어야 공부할 수 있지.”
“식당일 생각보다 힘들다던데, 괜찮겠어?”
현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주말만인데 뭐.”
현지는 자신도 모르는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아무 조언도 더할 수 없는 미안함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창밖 슈프레강 위 하늘이 붉은 저녁 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트램이 어딘가로 달려갔다. 현지의 말을 들으니,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저지르고 수습하는 나와 달리, 현지는 앞을 내다볼 줄 알았다. 그럴 때마다 나보다 어린 현지가 어른처럼 느껴졌다.
망설임도 잠시, 토요일 오전 약속된 시간에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에서 브로콜리 다듬는 것부터 배워야 했다. 아주머니는 젊은 시절 간호사로 일하며 고생한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병원 가서 중환자들 옷 벗기고, 대소변 치우고 밥 먹여 가며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었지. 독일인들 눈밖에 안 나려고 말 한마디 조심하면서 죽어라 일했어.”
그 이야기는 나에게 “나처럼 고생해야, 일다운 일 한 거지.”처럼 들렸다.
“브로콜리도 다듬을 줄 몰라? 언제 감자 10kg 다 깎을래? 세월아 네월아 하다 하루 다 가겠다.”
내가 아주머니의 성에 차지 않을 때마다, 잔소리는 심해졌다.
“저 사람 말, 너무 신경 쓰지 마. 오늘 저녁엔 뭐 해?”
“집에 가야죠. 과제도 많고요.”
“내 딸이 로운이랑 나이가 비슷해. 한번 만나봐. 친구처럼 지내면 좋잖아.”
아저씨는 전 부인과 낳은 딸이 있었고, 딸의 이름은 하나였다.
“유학생이야?”
하나는 나를 보며 물었다.
“대단하다. 혼자. 일도 하고 공부도 하고.”
나를 잘 아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하나는 한국인이지만, 독일서 나고 자라서인지 말할 때마다 외국인처럼 느껴졌다.
“편하게 생각해. 혹시 이 옷 입을래?”
난 눈이 번쩍 뜨였다. 하나의 옷장엔 입을 만한 옷들이 가득했다. 하나는 원하는 대로 다 가져가란 제스처를 했다.
나와 체형이 비슷한 하나의 옷장에서, 티셔츠와 카디건, 원피스 여러 벌 챙길 수 있었다.
“언니, 티셔츠 잘 어울려!”
가슴팍에 숫자가 쓰여 있는 7부 티셔츠를 입자, 현지가 말했다.
“오늘 저녁에 뭐 해?”
아저씨는 또 물었다.
“시간 괜찮아요!”
난 지난번 하나가 선물한 옷가지를 생각하며, 흔쾌히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