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나른한 기분을 파자마와 함께 벗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었다.
신호등 속 모자 쓴 아저씨가 초록색으로 변했다. 아저씨의 손짓을 주시하며, 전철역으로 걸음을 옮겼다.
‘친환경 페스티벌’에서 과 친구들을 많이 만났다. ‘그러면 그렇지.’ 기대는 마지막 순간에 나를 비웃는다.
벤과 둘이 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바글거리는 독일 애들 속에서 멀어져 갔다.
“이제 왔어? 접수대에 가서, 명찰받아. 자리도 그쪽에서 배치해 줄 거야.”
벤은 겨우 한마디 하고, 바삐 자신의 자리로 뛰어갔다.
난 접수대로 서둘러 갔다.
소개해 준 벤에게 혹시라도, 안 좋은 소리가 들어가면 무슨 창피일까.
“저 처음 왔는데요.”
데스크에 독일 여자가 나를 흘끔 보더니, 명찰을 찾아서 준다.
“부스 17번이에요. 5시까지. 다음.”
독일어가 서툴러, 독일 친구와 함께 유기농 샴푸와 비누를 팔았다. 무대에선 낯선 밴드가 기타 공연을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서서 일하니 다리가 아팠다. 음악 소리는 듣는 둥 마는 둥, 담당자에게 계좌번호를 적어주고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헤이! 로운, 수고 많았어!”
아픈 다리를 낫게 하는 건 음악이 아닌 벤의 목소리다.
“수고는. 소개해줘서 고마워!”
“한번 해봤으니, 다음에 또 소개해 줄게!”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그의 센스에 감탄한다.
“그래, 다다익선이야. 이런 일자리 또 있으면, 당연하지!”
벤은 내게 천으로 만든 에코백을 쥐여 주었다.
북새통 같은 장터에서 물건 팔았다는 전우애 같은 게 생겼는지, 훨씬 편해진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벤이 준 에코백을 펼쳐 보며, 자꾸 웃음이 났다.
쌀이 벌써 떨어졌다니. 급하게 한인 상회에 들렀다.
시험 준비한다고, 학생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해 집에서 뭘 해 먹질 못했다.
“오랜만이네!”
“네. 일본 쌀 있죠? 5kg 하나 주세요!”
바퀴 달린 장바구니에 쌀을 넣고 나서는데, 벽에 붙은 광고가 눈에 들어온다.
“서울 식당 직원 급구”
축제에서 물건 파는 알바를 하니, 식당 알바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붙었다.
종이 끄트머리에 있는 전화번호를 떼서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여보세요. 서울 식당이죠?”
“네. 맞아요.”
수화기 속 아주머니 목소리가 둔탁하고 카리스마가 있어 순간 멈칫했다.
“사람 구한다고 하셔서요. 주말에요. 맞죠?”
“요즘 주말에 사람이 많아서요. 한번 들러보실래요? 유학생인가요?”
“네. 가능하시면 내일 오후에 들를게요.”
내일은 오전 수업만 있는 걸 떠올린 후 말했다.
식당은 홀 3개와 안쪽 주방까지 규모가 꽤 컸다. 아주머니는 60대 중후반으로, 마른 체형에 화장을 진하게 했지만, 사나운 눈매는 숨길 수 없었다.
아저씨는 놀랍게도 훨씬 젊은 50대 정도로 보였다. 둘이 부부라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주말엔 너무 바빠서, 주방과 홀 두 군데서 일해야 해요. 괜찮겠어요?”
아주머니는 나를 찬찬히 뜯어보더니, 시큰둥하게 물었다.
“네. 괜찮아요. 급여는 광고지에 쓰여 있는 대로인가요?”
“네. 식사는 제공하고요.”
아저씨는 나를 흘끔 보더니, 눈인사하고 주방에 들어갔다. 아주머니가 식당 전체를 장악하고 있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