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가니, 합리화를 시작했다.

일생일대의 수능을 위해? -1

by 오도

'수능'


참 많은 생각이 드는 단어이다. 누군가에겐 현재의 목표이고, 과거의 목표였고, 미래의 목표일 것이다. 내겐 아직까지는 과거의 목표일 뿐이다.


나는 대학만 가면 모든 게 바뀔 줄 알았다. 그럼에도 가고 싶은 대학은 하나로 정해져 있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그랬다. 내 목표는 ㅇㅇ여자중학교를 나오고, ㅇㅇ고등학교를 가서 ㅇㅇ대학교를 가는 거였다. 이건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내가 원했던 대학은 우리 지역의 거점 국립 대학교였다. 그냥 어렸을 때부터 저 학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당연히 난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기도 했다.


중학교 때까지는 문제가 없었다. 나는 전교 상위권에 들었고, 평균이 90점 밑으로 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그렇게 앞으로도 잘할 거라는 자신감에 차서 고등학교를 입학했는데, 고등학교는 내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떤 공부들보다 쉬웠는데, 왜 그때는 그렇게 열심히 하지 않았던 걸까?


정해진 기간, 정해진 분량, 정해진 내용.

삼박자를 고루 갖추었는데, 왜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사실 내가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열심히 했다.


하지만 내 노력은 재능과 재능을 곁들인 노력형 천재를 이기지 못했다. 사실 내가 그냥 공부를 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건 확실히 아니었다.



그런 아이들이 있다. 분명 공부를 곧잘 하는 것 같은데, 열심히도 하는데, 성적이 낮은 아이.


그게 나였다. 나는 노력을 해야지만 얻을 수 있었고, 노력하지 않는 순간 성적이, 저 지하 깊은 곳으로 들어갈 것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내가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 있었는데, 그게 무엇이었을까?



바로 '모의고사'였다.

혹자는 내게 묻는다. 모의고사가 잘 나오면, 당연히 똑같은 시험인데 학교 시험도 잘 봐야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물론 이건 정확히 맞는 말이다. 그러나 시험의 형태가 많이 달랐다. 모의고사는 어느 정도의 틀은 있지만, 범위와 내용이 정해지지 않은 시험이었고, 학교시험 즉, 내신은 범위와 내용이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내용이 정해진 학교 시험을 더 잘 봐야 이치에 맞지 않는가?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지금도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게 꼭 맞는 말도 아니었다. 그 증거인 '내가' 있었으니까. 나는 거의 항상 내신보다 모의고사를 잘 봤고, 모의고사 탐구는 항상 1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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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도 크게 변하는 건 없었다. 수학 과외와 영어 과외에서 이제 더 이상, 학교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것 말고는.

고3이 되면, 학교 공부보다는 수능을 위한 공부를 한다. 비단 이건, 과외뿐만이 아니라 학교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교과서는 버린 지 오래, 수능특강으로 수업을 했다. 그렇게 공부하면서 나와 선생님들이 느낀 것은 단 하나였다.


'왜 얘는 성적이 안 나오지?'

'아니, 분명 개념도 잘 알고, 적용도 잘하는데?'

'하나하나 다 따져가면서 하는데?'


'근데 왜?'


왜 성적이 안 나오는 것인가.

나는 항상 사탐만 1을 찍었지, 다른 과목은 1이 잘 없었다. 그럼에도 학교와 과외 선생님들 모두 내가 탐구가 1이라는 사실에 희망을 걸었다. 그렇게 나를 응원해 주셨다.



앞의 글들에서 말한 것처럼 학교가, 그렇게 나쁜 곳만은 아니었다. 처음으로 내게 사과를 한 어른도, 나를 배려하는 사람도, 나를 응원하는 사람도 모두 학교에 있었으니까.


그러나 모두가 내가 잘되길 바라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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