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가니, 합리화를 시작했다.

남들 부탁을 들어주던 나는, 바보였나?

by 오도

고등학교 1학년, 나는 꿈을 정했고, 그렇게 3년을 유지했다. 남들 눈에는 내가 일찍이 꿈을 정한 '우등생' 정도로 기억에 남았을 것이다. 실제로 내 대부분의 이미지는 '우등생' '열심히 하는 애' '봉사하는 애' 등등 좋은 이미지였다.


나름.


저게 진짜 좋은 의미였을까?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을 하던 그 '누군가'였을 뿐, 정말 그들의 눈에 나는 '우등생'이었을까. 하기 귀찮은 일들을 대신하는, 무언가 부탁하면 잘 들어주는, 바보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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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목을 보면 내용이 충분히 짐작 갈 것이다. 나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분명 대부분이 공감하는 이야기이지만, 대부분에 포함하지 않으면서 대부분에 속해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을 쏙쏙 골라내려 한다.


'팀플' '과제' '조장' '조원'

나는 이 말만 들으면 아직도 정말 치가 떨린다. 나는 일명 '쓰레기 처리반'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중고등학교 6년을 포함하고, 대학에 가서까지 나는 '쓰레기'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어쩜 그리 운도 없는지, 나는 항상 질이 나쁜 아이들과 함께 과제를 해야 했다. 중고등학생 때까지는 괜찮았다. 가끔 다 같이 참여해야지만 점수를 주시는 선생님도 있었지만, 나는 학교 공식 '모범생'타이틀을 가지고 있었기에 점수를 받는 것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내 조의 모든 결과물은 내 손을 거쳐 만들어지고, 다듬어진 것이었고, 그걸 모르는 사람은

전교에 내 조원들 밖에 없었다.


정말 열불이 났다. 난 이 짓거리도 대학만 가면, 다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다. 중고등학교는 나름 납득이 갈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까.


먼저, 중학교는 우리 지역에 하나뿐인 여자중학교였다. 그래서 우리 지역에 있던 모든 초등학교의 여자아이들은 타 지역으로 가지 않는 한, 모두 같이 입학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중학교 때면, 얼마나 어린가. 중학교 시절의 과제도 물론 좋았던 기억은 없지만, 그래도 이건 어리다는 이유로 충분히 넘길 수 있었다.


문제는, 고등학교 때이다. 나는 고등학교 원서를 쓸 당시, 전혀 걱정이 없었다. 300점 만점에 290점대였고, 내가 못 갈 학교는 거의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냥 집 근처 인문계 고등학교를 넣기로 했다. 원래부터 그 학교를 가고 싶기도 했었고, 지역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똑똑한 아이들이 가는 학교였다. 안전하게, 그리고 제법 우쭐해하며 나는 당당히 그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러나, 내가 입학할 당시 학교 사정으로 한 반이 늘어나면서 미달이 났다. 미달이 나면서 220점대부터 240점 사이의 그냥 찔러본 아이들이 우후죽순으로 입학했다. 정말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다. 아니, 이렇게 이 학교가 오기 쉬웠다면 나는 뭐 때문에 중학교 생활을 그렇게 열심히 보낸 것인가. 정말 후회스럽고, 짜증이 치밀었지만, 그래도 몇 달 생활해 보니 그렇게 나쁘지는 않아서 그냥 계속 다니기로 했다.


그랬으면 안 되는 거였는데.


물론 공부를 잘하는 학교라고, 팀이 잘 짜지는 것도 아니지만, 사람들이 스카이에 목매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일단 공부를 했다는 점이 성실도에 포함되기 때문에 그렇다. 꾸준히 공부를 한 아이라면, 그만큼 성실하고, 끈기 있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난 운이 나쁘게도 고등학교 3년 내내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과 팀을 함께 했다. 중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나의 이미지는 '모범생'이었기에, 내가 다 한다고 해서 다 같이 참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게 부당한 점수를 주시는 선생님은 없었다.


문제는 대학 때부터 점차 커진다.

나의 '쓰레기 처리반'활동은 대학에 가서도 이어졌다. 인생은 운도 한몫한다더니, 진짜 너무 짜증이 났다. 왜 나는 저런 아이들만 같은 팀에 걸리는지 하늘을 원망도 했다. 그래도 내가 열심히 하면, 중고등학생 때처럼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러나, 대학은 철저히 개인플레이였고, 나의 사정 따위 알려하지 않았다. 사실 그 모든 과제를 내가 다 했고, 아주 쉬운 걸 하나 맡겼는데, 그걸 제출 10분 전에 줄 거라고는 몰랐다고 애원도 했지만,


결국 난, 거의 최하점을 받았다.


진짜 억울했다. 그 조원을 믿었다. 자신이 할 수 있다길래, 기다렸다. 물론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만 한 것은 아니다. 내가 다 한 것에 숟가락만 얹겠다는 데, 화가 나지 않을 리가 없었고, 아쉬울 리가 없었다. 솔직히 내가 다 완성했으면, 더 좋은 결과물이 나올 것이라 확신했지만, 그럼에도 믿었다. 그 조원도 내 팀이고, 팀이니까 책임을 지고 싶었다. 그래서 하고 있냐고 묻고, 또 물었다. 그때마다 돌아온 답변은 "하고 있어."였다.


'근데 네가 날 배신을 해?'


대학에 가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배신감'이었다. 인간의 선함을 믿었는데, 난 그 조원을 믿었는데! 왜 날 배신하는 거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우리 학교는 인서울 권의 학교였다. 그래서 괜찮을 줄 알았다. 성적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가르면 안 된다는 기본적인 상식 정도는 나도 안다. 그러나 사회는 이미, 성적순으로 흘러갔다. 원래 돈 다음에는 성적이다. 그게 세상의 질서였고, 그게 자본주의였다. 일단 돈이 많아야 하고, 돈이 없다면 돈을 모을 비상한 머리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어른들이 미웠다.

어른들의 사회는 이렇게 잔혹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왜 꽃 같은 세상을 보게 하는가.


아이들도 알아야 한다. 어른이 되고 마주하는 세상은 따스한 봄 햇살이 아니라, 차디차고 매서운 겨울바람이라고. 누군가가 다져놓은 길이 아니라, 처음으로 밟아야 하는 진흙길이라고.


그래야 어른들은 덜 미움받을 수 있지 않을까?


어른들을 원망하던 내가, 어른의 자리에 가게 되고, 사실 세상은 원래 잔혹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맛본 배신감을,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은,

맛보지 않았으면 한다.


어른들을 덜 원망할 수 있게.


나처럼 원망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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