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가니,합리화를 시작했다.
친구가 뭐고, 대학이 뭔데?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싶다.
12년 간 공부하고, 대학은 '누구나'가니까, 나는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기부-학교 생활을 기록해 놓은 생활기록부-를 하나의 주제, '경영'으로 통일시켰다. 고3이 되고, 하나의 진로로만 통일시킨 내가 자랑스러웠다.
나름 공부도 열심히 해서, 나는 전국 모의고사 중상위권에 들었고, 당당하게 인서울 상위권 대학에 수시원서를 집어넣었다. 그렇게, 인생이 탄탄대로일 거라 생각했다.
오만한 자의 최후는, 좋지 못하다.
그런데 나는, 내가 오만하지 않다고 오만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건 오만이 아닌, 자신감이라고. 내 실력에서 나오는 자신감일 뿐이라 합리화했었다.
대학에만 집착하는 학교생활이 어떨지, 기성세대 사람들은 잘 모를 거라 생각한다. 마냥 학교에서 친구들과 놀고, 희희낙락 청춘을 보내고 있을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어느 뉴스 댓글만 봐도 그렇다. 학교폭력에 대해 기사가 나면, 그게 다 가정교육을 못 받아서 친구끼리 장난 좀 친 거 가지고 일을 키운다고 하던 것이, 불과 몇 년 전 이야기다. 실상은 그렇게 희희낙락, 청춘이 아닌데. 어른들은 그걸 몰라준다.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비단 학교폭력뿐만 아니라, 친구 관계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 정다운 그림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친구니까, 친하게 지내야 하고. 나눠야 하고. 그렇게 가르치던 게 어른이다. 그런데 왜, 시험은 경쟁이란 사실은 어릴 때부터 가르치지 않았을까.
결국 친구를 짓밟고 올라가야 승리하는 구조가 학교라는 사실을, 어른들은 말해주지 않았다. 분명, 내 친구였는데, 그렇게 배웠는데. 어느새 친구는 없고, 경쟁자만이 남아있었다.
몇 년 전, 유행했던 드라마가 있다. 학구열이 심한 학부모들이 어떻게 자녀들을 교육하는지 보여주는 드라마였다. 드라마가 방영할 당시, 비판이 엄청났었다. 아직 학생인데,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저건 너무 비약이 심한 거 아니냐고.
물론, 드라마가 비약을 한 부분도 상당수 있었다. 그러나, 드라마 속에 나온 주인공들의 대사("쟤만 없었으면, 내가 1등인데)가 실제로도 많은 학생들이 하는 생각이란 걸 어른들도 알아주었음 한다.
대한민국의 교육은 예전부터 말이 나오고 있다. 입시만을 위한 치열한 경쟁사회가 아이를 더 뛰어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치열한 경쟁사회는 아이의 행복을, 절대.
증가시킬 수 없다.
친구가 어느새 경쟁자가 되고, 나보다 잘 되면 배 아파한다. 나보다 많은 대회에 나가고, 많은 상을 타고, 좋은 성적을 받고. 그런 친구의 모든 것을 시기하며 내가 너무 못난 것이 아닐까 자책한다. 그렇게, 불행해진다.
친구가 나보다 잘 되면 멋지다고, 넌 정말 최고라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말하라고 배웠고, 그렇게 말하려 했다. 그러나 실제로 나오는 말은 "너 너무 열심히 하는 거 아니야? 좀 쉬엄쉬엄 해~"이다. 나보다 잘 되면 배알이 꼴리고, 끌어내리고 싶어 진다. 어쩔 수 없다. '내가 더 좋은 대학에 가려면, 나보다 우수한 쟤를 끌어내려야 하니까.'
이게 어른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저절로 습득하게 된 우리의 생존방식이다.
친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며 없어진다. 친구? 그딴 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런 거 만들 시간에, 공부를 더 해야 한다.
시기하고 질투하고, 진정 이런 사회를 원했나?
어른들은, 나쁘다.
친구를 만들어도, 결국 쓸데없는 짓이 된다는 걸. 왜, 어째서, 알려주지 않았나. 친구를 소중하게 대하라 해서 그렇게 대했고, 아껴주래서 아꼈는데. 그런 소중한 친구를 애초에 만들 기회를 주지나 말지.
어른들이 나빴다.
친구를 소중하게 대하라 해서 그렇게 대했고, 아껴주래서 아꼈는데. 그런 소중한 내 친구를, 미워하고, 망하길 기원할 줄 알았으면, 친구 같은 거 처음부터 안 만들었을 텐데.
친구가 잘 되면 좋겠다가도, 또 너무 잘되면 내가 잘 될 수 없을 것만 같고, 앞서가는 친구가 짜증이 나서, 못된 말만 골라서 친구에게 퍼붓는다.
잘난 쪽은 밑바닥으로 내려가기 싫어서 더 애를 쓰고, 밑바닥은 더 깊은 밑바닥으로 내몰리기 싫어서 더 애쓴다.
대학이 뭔데. 내 친구도 빼앗고, 내 행복도 빼앗고, 내 자존심도, 자아도 모두 빼앗아가는 걸까.
대학이 뭔데.
그러니까 이건,
대학이 뭔지 말해주지 않은 어른들이 나쁜 거다.
그렇게 합리화했다.
그렇게 합리화해야, 내가 버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