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꿈이 있어!"라고 말하는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마침 코로나도 창궐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기에 이 기회에 꿈을 탐색하기로 했다.
정보보안전문가, 선생님, 교수, 간호사, 회계사 등등... 세상에는 많은 직업들이 존재했고, 그 수많은 직업들 사이에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건 없었다.
분명 일주일 전만 해도 간호사가,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내가 검색한 수많은 후기들이 그 직업을 선택해선 안된다고 내게 말하고 있었다.
넌 이 직업을 택해선 안돼... 네가 버틸 수 있을까?
라고 계속해서 물으며 내 진심을 확인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계속 그 질문이 떠올랐고, 점차 내 무의식엔 직업에 대한 물음 보다 다른 물음이 차지하는 비율이 커져만 갔다.
'내가 정말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일까?'
혹자는 묻는다.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느냐고. 그러나 나는, 진정 내가 필요한 사람일지 계속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거짓말했다.
'저는 꿈이 있어요!'라고.
내가 원하는 건 진정 없었고, 나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런 나를 누군가 먼저 알아봐 주길 바라는 건 너무나 이기적이고, 못난 행동이기에 누구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걸 미래의 아이들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은 고민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건 모두 어른의 잘못이므로. 무언가를 물어도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고, 정해진 길로 가라며 채찍질을 내는 세상의 잘못이므로. 그런 세상의 잘못이 있어도, 아이들은 계속 질문하고, 생각하며 자라야 한다.
세상은 내게 꿈을 강요했다. 비단 그건 내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꿈이 있는 아이여만 했다. 모든 아이에게 세상이, 어른들이 강요했다. 모든 직업을 해보고 싶었던 아이는, 철저히 세상 속 한 부속이 되기 위하여 단 하나의 꿈이 있다고 거짓말해야 했다. 이건 아까도 말했듯이, 비단 내 이야기만이 아니다.
몇 주 전, 공부를 잘하던 아이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랜만에 다시 만났다. 그 아이와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는 안부 인사를 하다가 그 아이가 무슨 과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아, 물었다. 그 아이는 한의예과라고 답했다. 나는 "너 약사가 되고 싶었던 거 아니었어?"라고 물었고, 그 아이는 "나는 사실 공대에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그냥 약사가 되고 싶다고 한 거였어. 한의예과는 그냥 성적 맞춰서 들어간 거고."라 답했다.
나는 그 아이의 고등학교 1학년때의 모습을 안다. 약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하며, 동아리도 들어가고 열심히 학교생활을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하던 동기가 꿈이 아니라 그냥 부모님의 반대 때문에 결정하게 된 가짜 꿈 때문이었다니.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 아이가 꿈에 확신이 있는 것이 멋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강요에 따른 거였다니. 물론 강요로 인하여 더 좋은 재능을 펼칠 수도 있으나, 이건 다른 문제였다.
'꿈이 확실하지 않았었구나!'
이 사실을 깨닫자, 그 아이를 보며 부러워하던 과거의 나는 치유되었지만, 역시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이모든 건, 어른들이 나빠서다. 내가 저 아이의 꿈이 확실하지 않아서 치유받은 것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우울해진 것도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