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생각하면 쉬운 일도 아니고, 만약 쉬운 일이라 하더라도 전자는 그럴 수 있었지만, 후자는 좀 특별했다.
고3이 되면 학교에 잘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에 나오더라도, 수업을 듣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한국지리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고3 애들은 수업을 안 듣는다고, 너네는 잘 들어줘서 너무 고맙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반드시 고3이 되어서도 수업을 열심히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들과 그 이야기를 하며 도원결의라도 맺은 양 수업을 잘 듣는 우리 미래를 생각하며 같이 뿌듯해했다.
막상 고3이 되니, 나는 수능이라는 목표 하나만 바라보아야 했다. 수업을 들어야 한다는 양심의 가책과 1년 전 친구들과 약속한 '수업 잘 듣는 것'을 지킬 수 없다는 게 신경 쓰였다.
그래서 수업을 열심히 듣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만, 자꾸만 하나의 의문점이 들었다.
'아니 이건 수능에도 안 나오는 건데, 대체 내가 왜 배워야 해?'
친구들도 거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학교에 대한 의문은 불만이 되어갔고, 그게 태도로 드러나는 친구들도 있었다. 수업시간에 대놓고 문제집을 푼다거나, 아예 이어폰을 꽂고 인강을 듣는다거나 방법은 점점 다양해졌다.
나는 아무리 딴짓을 하더라도, 수업시간에 수업과 연관도 없는 다른 과목을 푸는 건 도저히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만의 규칙을 하나 정했다.
'무조건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는 거기에만 집중하자.'
'그리고 수업에 관련 없는 과목은 풀지 말자.'
이게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3의 교실에서는 이게 꽤나 어려운 행동이다. 실제로 나는 심리학 수업에서 유일하게 수업을 잘 듣고 질문도 하는 학생이어서, 전교 유일무이의 심리학 수업 생기부 6줄을 기록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였냐면, 1줄만 적혀있는 경우도 많았고, 아예 아무것도 안 적힌 경우도 있었다.
보통 고3의 수업은 앞서 말했다시피 수능특강으로 진행되는데, 선생님들은 해설을 하시기 전에 문제를 먼저 풀 시간을 주셨다. 그래서 나는 집에서 다음 수업시간에 할 문제들을 미리 풀어오거나, 수업 시작 전 쉬는 시간에 먼저 풀었다. 그리고 수업 때 선생님이 시간을 주시면, 그때 다른 장에 있는 문제를 먼저 풀거나, 다른 수능특강을 풀었다. 예를 들어 영어시간이었다면, 영어 수능특강으로 수업을 했는데, 문제를 푸는 시간에는 영어 독해 수능특강을 푸는 식이었다. 도저히 다른 과목을 풀기에는 양심이 너무 찔렸다.
문제를 이미 다 풀었고, 자는 것도 아니었고, 선생님 말씀에 집중도 하니까, 내 행위에 대해 뭐라고 하신 선생님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게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 글들을 쓰는 것은 학생들을 어른들이 이해해 주길 바라는 것도 있지만, 내 후회를 아직 어린 학생들은 경험하지 않길 바라서다.
학교 수업 하나 집중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러나, 학생의 일과시간 대부분이 수업으로 이루어져 있고, 일상의 대부분을 어떤 태도로 보내느냐는 아주 중대한 문제이다.
물론 이건, 자신만이 판단할 수 있다.
수업에서 문제 풀 시간을 주실 때, 수업의 반 이상이 주어져서 버려지는 시간이 많았다. 버려지는 시간을 활용한 것이니, 누구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미리 풀어와서 다 안다고 하더라도, 다시 문제를 들여다볼 노력정도는 해야 하지 않았나 싶다.이게 아직까지 후회스럽다.
물론 고3의 특수한 환경상, 선생님들도 수업에 집중하지 않는 우리를 이해해 주셨고, 실제로 다 풀었으면 다른 아이들이 풀 동안 문제집을 풀어도 된다고 하신 분도 있었지만 그건 내 양심의 가책을 덜어주기엔 부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