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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램프 Aug 05. 2023

인생의 속도는 모두 다르다 (1)

비혼주의자의 대단한 반전

누군가에게 뒤처지기 싫어서 제 속도를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속도를 맞춰서 더 이상 뛸 힘이 없어지게

되는 것처럼, 결국 중요한 것은 느리더라도 어딘가로 향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나만의 속도를 찾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멈춰있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도착할 테니까요.     

-김상현 에세이 <결국 무엇이든 해내는 사람> 中     


어린 시절, 부모님의 잦은 다툼을 자주 보며 자란 나는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자식 셋을 키우시며 장사를 하시던 부모님은 돈을 벌고 모으는 것에 온갖 신경을 쓰셨으며 가족과의 여행은 거의 없었다. 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부모님은 누구의 도움 하나 없이 두 분이서 그 당시 30대 초반에 몇 억을 모으셨다. 온몸에 베인 절약 정신과 함께 그 돈을 은행에 저축하셨다. 그 모습을 보고 감탄한 은행 지점장님은 젊은 청춘들이 정말 대단하다며 부모님께 큰 투자를 하실 만큼 성실하셨다. 날이면 날마다 집과 일만을 반복하시며 우리를 돌보셨다.    




  

나는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학을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었고,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지 2년이 되었다. 친구들과의 밤샘 술자리, 홈파티, 여행 등 청춘의 특권을 즐기고 누리며 지내던 나날이었다. 처음 몇 달은 해방된 기분을 느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님의 집이 그리웠다.     





이주에  번은 엄마 밥을 먹으러 집으로 돌아갔다. 엄마는 내가 엄마 밥을 먹으러  것을 아셨는지 밥을 먹는 동안 한참을 지켜 봐주셨다. 우리 집에서는 어릴 때부터 자주 먹던 특별식이 있었는데 바로 삼겹살이다. 일주일에  번씩  가족이 모여 신문지를 거실 전체에 깔아두고 삼겹살을 구워 먹었던 추억이 있다.      





오랜만에 집에 온 나를 위해 엄마는 삼겹살을 준비해주셨다. 상추 위에 밥을 얹고 그 위에 고소하고 윤기 있는 참기름에 절인 고기 한 조각을 올리고 파채를 수북이 쌓아 청양고추와 쌈장을 올리고 쌈을 말아 입에 넣기 바빴다. 우리 가족은 삼겹살에 꼭 밥을 함께 쌈을 싸 먹는 우리 가족 문화가 있었다. 계속해서 말을 해도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입 안 가득 쌈을 집어넣었다.      





쌈을 끼얹으며 말했다. “엄마, 나는 결혼 절대 안 할 거야, 애 낳는 거도 싫어,” 엄마는 우리 셋을 낳고 키우시면서 자신의 삶이 창살 없는 감옥과 같았다는 말을 자주 하셔서 그런지 나의 결정에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셨다. “여자가 능력 있으면 혼자 살아도 돼”라는 엄마의 말씀에 한 번 더 내 비혼주의를 확신하게 되었다.     

비혼주의자란 일반적으로 혼인한 적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 용어로 결혼 경험이 없는 사람을 말하며, 간헐적 동거나 이혼, 사별 등으로 혼자 사는 사람도 포함한다.      





한국 내에서는 2000년 초반부터 혼인한 적이 없는 사람에게 미혼(未婚)이라는 단어보다 싱글, 독신 비혼(非婚)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동안 사용되었던 미혼(未婚)이라는 개념은 결혼이 정상적인 삶의 형태이며, 결혼하지 못한 미완성의 상태로 결핍이 내포되어 부정적 이미지를 포함하기에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비혼(非婚)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이다.      





비혼이라는 단어를 품었지만 20대 초반 청춘이었던 나는 만난 지 100일 만에 매일 결혼하자고 주문을 걸던 남자친구가 생겼고, 연애 2년 끝에 동갑내기인 개구쟁이 남자친구와 결혼하게 되었다.     

이 어린 청춘 남녀는 서로의 아내와 남편, 부모의 역할을 전혀 준비하지 않고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비혼주의자로서 당당히 외치던 나는 친구들 중에서도 일찍 결혼을 한 편이었고, 그렇게 내 인생의 속도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달려가고 있었다.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거나 꿈을 향해 달려가며 청춘을 즐기고 있었다. 그와 달리 나는 임신을 하여 출산의 두려움을 생각하며 청춘을 헤매고 있었다.     

그렇게 첫 아이가 태어나고 온갖 모성애로 가득 차있는 나를 보며 참으로 신기했다. 단 몇 년 전에는 비혼주의를 외치던 나였는데 이제는 자식을 품고 낳게 되니 모성애 DNA로 가득차 있었다. ‘내가 엄마라고? 내가 엄마라니..’ 어색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현실이었지만, 요정 같은 나의 딸을 보기만 해도 배부른 행복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비혼주의자로서 당당히 선언했던 나는 결혼, 출산, 육아로 젊은 엄마의 삶으로 남들과는 다른 인생의 속도로 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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