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 육아 전쟁터
고생했어요.
잘하고 있어요.
힘들고 지치는 건
당연해요.
당신의 육아도
나의 육아도
토닥 토닥
-문션 에세이 <엄마인 당신, 안녕한가요?> 중
2013년 8월 출산을 하고 9월에 바로 학교를 다녔다. 대학 4학년 2학기를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나이라 누가 봐도 애를 낳은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 번 정도 아기를 친정엄마에게 맡기고 등교했다. 다행히도 우리 딸은 통잠을 잘 자는 아기라서 큰 문제는 없었다. 보통 신생아를 낳으면 밤낮 없는 생활이 이어지는데 다행히 까다로운 아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가족들의 도움이 컸지만 육아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었다. 그런데 첫째 낳은지 100일 만에 또 한 번의 반전이 생겼다. 바로 둘째가 생겨 버린 것이다. 아직 육아가 서툰 초보 엄마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래도 다시 한번 나에게 찾아온 소중하고 고귀한 생명을 반갑게 맞이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두 번째 아기를 맞을 준비를 하며 대학을 졸업했다. 그렇게 배가 점점 불러갔고 첫째 때보다는 몸과 마음은 더욱 힘들어졌다.
친구들은 한창 예쁘고 빛나는 모습인 반면 나는 계속해서 2년째 임신을 하다 보니 예쁜 옷은커녕 펑퍼짐한 원피스로 그 기간을 보냈다. 나도 예쁜 옷을 잔뜩 입고 외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친구들 모습과 나의 모습을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고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었다.
둘째 임신기간에는 몸이 더욱 무거워지고 조산기도 있어서 입원도 하며 지냈다. 둘째 때는 첫째 때와는 달리 평온한 마음 상태를 갖지 못한 것 같다. 그렇게 나의 껌딱지 아들이 태어났다. 태교를 제대로 못해서 그런지 태어나자마자 예민 보스를 제대로 장착했다. 잠투정이 굉장히 심했고 새벽 내내 갑자기 울어댔다.
둘째가 울음신호를 보내면 첫째와의 응애화음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낮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저녁에는 남매의 불협 응애화음을 듣느라 정신과 체력이 피폐해졌다. 그때의 내 나이는 25살이었다.
첫째와 둘째가 울음이 터지면 앞뒤로 업고 달래느라 정말 힘들었다. 남편은 일이 늦게 끝났다는 이유로 아이들 울음소리에 아는척도 하지 않았다. 귀에 방음벽을 쌓은 것 같은 수준이었다. 한두 번 도와줬던 기억은 있지만 새벽에 이런 상황이 자주 생겼기에 다툼도 많이 해왔다.
어느 날은 이제 제법 잘 서 있는 둘째를 씻기려고 잠깐 욕조에 놔두고 물을 켜둔 채 잠깐 가스불을 끄고 왔는데 아기가 소리지르는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급히 달려가 보니 뜨거운 물을 틀어놔서 아기가 발바닥에 화상을 입은 것이다.
이렇듯 엄마가 된 이후로는 매일 자책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가득했다. 크게 다친 것은 아니지만 둘째를 생각하면 너무 미안한 상황들이 많았다. 부주의한 나 때문에 다친 적도 많아서 아직도 그 미안하고 죄스러운 감정들이 생생할 만큼 생각하고 싶지 않다. 반복되는 좌충우돌 상황들로 인해 계속해서 자책했고 나를 돌볼 틈도 없이 자존감만 낮아지기만 했다.
또한 내가 25살이면 남편도 25살이었다. 나도 철이 없었지만 남편은 더 없었다. 우리는 그 시기에 온갖 전쟁을 했고 아마도 첫째가 4살이 되던 즈음 남편과의 큰 전쟁이 끝나고 휴전을 찾아가고 있었던 것 같다. 결혼 생활의 안정기를 찾아가면서 내 삶에도 균형이 잡혀갔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전쟁의 예고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