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 어딘가에 불쑥 자라나는 것들을 감당하기 어려운 나이. 세상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감정이 말끝에 걸리곤 했다. 그 시절,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엔 한 소년이 있었다.
“이 녹음기 1반에 가져다 놓아라.”
영어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 수업이 있는 다음 반으로 카세트 테이프 녹음기를 옮겨 놓아야 했다. 영어 수업은 교과서 문장을 읽고 해석하고, 문법을 배우고, 읽고 쓰고, 읽고 쓰고의 반복이었다. 문제는 영어도 어학 과목인데 듣고 말하기가 연습이 안 되었다. 그 대신 영어 시간에는 원어민의 교과서 녹음테이프를 반복해서 들었다. 만약에 외국인을 실제로 만나면 나한테 무슨 말을 할까 봐 겁이 나는 지경이었다. 정말 외국인과 대화를 할 수 있을까. 이름 말하고 직업 말하고 나서 헤어져야만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어찌 되었든 영어 시간에는 항상 녹음기가 준비되어야만 했다. 난 10반 반장이었는데 1반까지 가려면 복도를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게다가 1반부터 5반은 남학생반, 6반부터 10반은 여학생반이었다. 남학생들 교실을 다섯 개나 지나가야 했다.
“이 녹음기 1반에 가져다 놓아라.”
영어 수업이 끝날 무렵, 늘 반복되던 지시. 영어 선생님의 목소리는 무심했고, 나는 마지못해 무거운 카세트 녹음기를 들고 교실을 나섰다. 4층 복도 끝까지, 남자 반 다섯 개를 지나 1반까지. 수줍음 많은 십 대 소녀의 심장으로는 너무 먼 여정이었다. 그래서 누군가 내 일을 대신해주겠다고 나섰을 때, 윤선이의 말은 마치 구원의 손길 같았다. 윤선이는 같은 반인데 성격도 쾌활하고 약간 마당발이었다. 그녀는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1반에 남자친구가 있거든.”
이렇게 고마울 수가. 사실 윤선이는 1반 교실에 가는 것이 오히려 신난다고 했다. 겉으로는 미안해하면서 마음의 부담감을 내려놓았다. 고마움과 안도감이 뒤섞여 복잡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녹음기 배달은 윤선이의 일이 되었고, 나는 서서히 그 무거운 복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당시 우리 학교는 성산대교 근처에 있었는데 대통령 해외 순방 시에 큰길에 나가서 태극기를 흔들곤 했었다. 대통령님, 해외 잘 다녀오시라고.... 상당히 많이 걸어 나가야 해서 너무 힘들었지만 오후 수업을 안 하고 친구들과 소풍 나가는 기분이라서 꼭 나쁘지만은 않았다. 요즘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는 대통령이 약간 중세시대 왕 같은 존재였다.
모든 중학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우리 학교가 개교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교장 선생님이 매사에 열정이 넘치셨던 것 같다. 신설학교라 좋았던 점은 교복이 다른 학교보다 예쁘고 선생님들이 모두 젊고 의욕적인 분들이 많았다. 특이하게 다른 학교와 다르게 남녀공학이었다. 인근 사립 여학교에 다니는 친구 말이 자기들 학교는 선생님들이 연세가 많으시고 무섭다는 것이다. 이후 우리 학교에는 다른 학교에 없는 영어 랩 실이 생겼다. 모든 좌석에 헤드폰이 있는 어학실이었다. 당시에는 최신 시설이 학교에 생긴 것이다.
월요일 애국 조회 때마다 교장 선생님의 영어 관련 훈화 말씀이 이어졌다. 결국 수업 시간 외에도 아침저녁으로 영어 랩 실을 사용하는 ‘영어 듣기 반’이 생겼다. 뿐만 아니라 영어 말하기 대회, 영어 팝송 부르기 대회, 영어 퀴즈 대회, 각종 영어 대회와 영어 특별 활동반이 생겼다. 하도 학교에서 영어를 강조하다 보니 아이들도 영어를 섞어 쓰는 게 다반사였다. 영어가 유창해졌냐고? No. 예를 들면 이런 식.
“ go 쭉! ”
“ 저 red 팬 좀 move 시켜라.”
영어 듣기 반은 각반 별로 두세 명씩 차출이 되었는데 나도 뽑히게 되었고 나는 아침반을 선택했다. 사람 없는 반을 선택한다고 했는데 대신 남학생이 많았다. 남자 14명, 여자 3명. 다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아침에 아이들보다 한 시간 일찍 가서 영어 듣기 연습을 했다. 20분은 교과서 녹음테이프를 듣고 받아 적고, 20분은 영어 팝송을 받아 적었다. 나머지 20분은 AFKN 방송을 녹음해 온 것을 그냥 들었다. AFKN 녹음은 열 명이 돌아가면서 했다. 열 명이라 이 주에 한 번 당번이 돌아왔고 나는 주로 스누피가 나오는 미국 만화 영화를 녹음했다. 그나마 말이 짧아서 조금 알아들을 수 있었다.
영어 팝송 들을 때는 너무 좋았다. 아침부터 노래 듣는 것도 좋았고 가사를 정확히 알게 돼서 더 좋았다. 그 당시 아이들은 영어 팝송의 경우 가사를 잘 몰라서 그냥 흥얼흥얼 따라 하곤 했다. 내가 완벽하게 받아 적은 팝송은 그 당시 유행하던 F.R. 데이비드가 부른 워즈(Words)였다.
Words don't come easy to me
How can I find a way to make you see I love you?
Words don't come easy
Words don't come easy to me
This is the only way for me to say I love you
Words don't come easy
Well, I'm just a music man, melodies are so far my best friend
But my words are coming out wrong, girl, I reveal my heart to you
And hope that you believe it's true 'cause
특히 I'm just a music man 부분과 This is just a simple song 이란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just, 영어에도 이렇게 겸손한 표현이 있다니....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아침의 이른 등교, 영어 듣기 수업도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
난 항상 맨 앞, 가운데 자리에 앉았다. 교탁 앞에 앉으신 영어 선생님이 잘 보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반 영어 선생님은 아니지만 1학년 영어 수업을 들어가시는 것 같았다. 항상 옷차림이 양복바지에 하얀 와이셔츠. 단추 하나 풀은 상태.
‘ 드라큘라인가, 얼굴은 왜 저렇게 하얄까?’
의아해하면서 몰래 훔쳐보고 있었다. 선생님이라기보다 동네 대학생 오빠 같은 느낌이었다. 영어 팝송을 듣다 보면 나를 위해 선생님이 노래를 직접 불러 주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