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이야기 7 - 삼총사

by 서유정


12월에는 반마다 학예회가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의 학예회는 단순한 아이들 놀이가 아니라,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부모님들까지 한데 묶어 주는 커다란 잔치 같은 행사였다. 11월부터 교실 분위기는 달라졌다. 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연극 준비가 시작되었는데, 그게 일종의 겨울 축제 준비 같은 것이었다. 반마다 뭘 할지 의논을 하고, 대본을 짜고, 역할을 정하면서 교실 안은 매일 시끌벅적했다.

우리 반은 결국 ‘흥부놀부’를 하기로 했다. 그중에서도 성하는 중요한 놀부 역을 맡았다. 반 아이들 모두가 ‘역시 성하니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또박또박 대사를 외우는 목소리, 어른스러운 태도, 그 나이에 드문 카리스마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대진이와 나는 제비 역을 맡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제비는 대사가 없기 때문이었다. 까만 바지에 종이로 날개만 만들어 붙이면 준비 끝. 마음은 살짝 억울했지만, 또 한편으론 무대에서 실수할 일도 없으니 마음이 편하기도 했다.


수업이 끝난 뒤 연극 연습을 하고 있는데, 1반의 덕수가 갑자기 우리 반에 들이닥쳤다. 덕수는 원래도 덩치가 크고, 목소리가 우렁찬 데다 자기 집이 모래내 시장 과일가게라서 웬만한 애들은 눈치를 보곤 했다.

“야, 전성하. 너 이리 나와 봐.”

성하는 놀란 눈으로 물었다.

“왜?”

“너 귤 먹었지?”

성하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그렇다. 내가 귤 먹은 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순간 덕수 얼굴이 시뻘개지더니 거친 말이 튀어나왔다.

“이 개자식.”

그러고는 다짜고짜 성하한테 달려들어 엎어뜨리고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성하가 당황해서 그대로 얻어맞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성하도 정신을 차리더니 덕수를 거꾸로 엎어트리고 주먹질을 퍼부었다. 두 아이가 복도 바닥을 굴러가며 뒤엉켜 싸우는 동안, 우리 반 아이들과 옆 반 아이들까지 전부 몰려들어 원을 둘러싸고 구경했다. “와!” 하는 함성, “잡아라!” 하는 외침, 복도는 순식간에 장터처럼 시끄러워졌다. 그 장면은 마치 연극 연습보다 더 실감 나는 연극 무대 같았다.

덕수는 시장 과일가게 아들이었다. 그 집 과일을 안 먹는 동네 사람은 없었고, 설날이나 추석 때도 덕수네 가게에서 과일을 사지 않으면 안 될 정도였다. 그런데 고작 귤 한두 개 먹었다고 저렇게 덤벼들다니,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였다. 귤 좀 먹었다고 맞아야 한다면, 학교 애들 절반은 매일 두들겨 맞아야 할 판이었다.


마침 선생님이 달려오셔서 두 아이를 떼어 놓고 소란을 정리하셨다.

“무슨 일이야? 너희 둘은 왜 그래?”

성하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덕수가 먼저 아무 이유도 없이 때렸어요.”

덕수도 지지 않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씨, 저 새끼가 우리 귤을 그냥 먹었어요!”

선생님은 두 명을 데리고 교실로 들어가셨다. 우리는 복도 유리창에 바짝 달라붙어 그 안을 들여다봤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성하와 덕수가 각각 억울하다고 손짓을 하며 목청을 높이는 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아이들끼리 수군거리며 상황을 추측하는데, 마치 우리가 재판을 방청하는 관객이 된 기분이었다.

잠시 후 성하가 교실 밖으로 나왔다. 그의 얼굴은 분노와 억울함이 뒤섞여 있었다. 가방을 메고 휙 돌아서더니, 대진이와 나를 부르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뒤를 따라나섰다. 성하네 집에 도착하자 그는 부엌으로 직행하더니 소쿠리에 가득 담겨 있던 귤을 전부 마당에 쏟아 버렸다. 귤들이 바닥을 구르며 깨져 터졌고, 그 향기가 마당에 가득 퍼졌다. 성하는 방으로 들어가 울면서 주먹으로 눈물을 훔쳤다. 대진이와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방문을 조용히 닫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종로 미용실에서 흘러나온 이야기 덕분에 전말을 알게 되었다. 덕수네 아저씨가 가게에서 남은 과일을 종종 성하네 어머니에게 가져다주곤 했는데, 며칠 전에도 귤을 건네주다가 덕수네 아줌마에게 딱 걸린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덕수네 집에서는 부부 싸움이 벌어졌고, 그 화풀이가 학교에서 성하에게 쏟아진 것이다. 동네 아줌마들은 입을 모아 성하 어머니 험담을 늘어놓았다. 아니 과일 가져다준 사람도 덕수네 아저씨이고 누가 달라고 했나. 게다가 덕수네 아저씨는 성하네 아줌마랑 전혀 어울리지도 않는다.


그날 이후 성하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늘 말이 많고 똑똑하던 아이가 점점 말수가 줄고, 늘 화가 난 듯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우리도 속상했다. 삼총사가 모이면 늘 성하가 중심이 되어 이야기를 풀어가고, 새로운 놀이를 제안하곤 했는데, 이제는 그 활기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동네 사람들의 냉담한 시선과 수군거림, 이 모든 어색한 상황을 정리한 사람이 나타났다. 성하 아빠가 돌아온 것이다. 매일 학교가 끝나면 성하네 집에 가 놀곤 했는데, 성하는 더 이상 우리를 데려가지 않았다.

“이제 아빠가 집에 계셔서 안 돼”라는 것이었다.

대진이는 “그럼 인사라도 드려야지” 했지만, 성하는 “나중에”라며 피했다. 우리는 더욱 궁금해졌다. ‘성하는 저렇게 똑똑하고, 성하 엄마는 저렇게 예쁜데, 성하 아빠는 얼마나 잘 생기고 똑똑할까?’ 아이들 다운 상상은 끝이 없었다. 그런데 성하 아빠를 곧 보게 되었다.


주택상회 앞 평상에 하루 종일 앉아 있는 성하 아빠를 볼 수밖에 없었다. 주택상회로 심부름을 가다 만나게 되었다. 파란색 츄리닝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처음 본 순간, 나는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일단 키가 크고, 얼굴은 남자치고도 새하얗고 고왔다. 손가락마저 길고 가늘어, 우리 언니보다 더 예뻐 보였다. 내가 성하 친구라고 인사를 하자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그 눈동자는 지금도 기억이 난다. 이상하게도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내 뒤편 저 멀리 허공을 바라보는 듯한 눈빛이었다. 슬프지는 않은데 마음을 흔들어 놓는 눈길이었다.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나는 막 울고 싶어졌다.

성하는 학교에서 더 말이 없어졌고 준비하던 연극에서도 빠지게 되었다. 12월에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간다는 것이다. 할아버지가 사시는 동네로 간다고 했다. 김천. 처음 들어보는 낯선 동네였다.


이사 가는 날, 대진이와 나는 성하네 집 앞에 모였다. 작은 용달차에 짐이 다 실렸고, 성하 삼촌이 먼저 차를 몰고 출발했다. 성하 가족은 서울역으로 가서 기차를 타야 했다. 김천이라는 곳은 그만큼 멀리 있다는 뜻이었다. 대진이는 집에서 보름달 빵과 사이다, 삶은 계란을 챙겨 와 성하에게 건넸다.

“이건 아부지가 주신 거야. 계란은 엄마가 아침에 삶아 주신 거고. 가면서 먹어.”

그러더니 책 한 권도 내밀었다.

“이건 내가 산 거야. 네가 책 좋아하잖아.”

“삼총사? 네가 읽은 책이야?”

“아니, 난 책 안 읽어. 근데 제목이 마음에 들더라. 우리가 삼총사잖아.”

성하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마워”라고 말했다.

나는 선물할 게 없어 도시락통을 내밀었다.

“이거, 가져.”

성하는 웃으며 말했다.

“어? 보온밥통이 보온 도시락통을 주네. 하하하.”

우리는 땡땡거리 건널목까지 따라갔다. 성하는 끝내 손을 흔들며 말했다.

“그만 들어가. 잘 있어. 공부 열심히 하고. 놀지만 말고.”


그렇게 성하네 가족은 떠나갔다.

나중에 4학년이 되었을 때, 대진이는 성하를 보러 가자고 했지만 끝내 가지 못했다. 그때 우리는 깨달았다. 우리 삼총사의 브레인은 단연 성하였다는 사실을. 성하가 없으니 뭐든 진행이 되지 않았다.

똑똑하고, 아는 것 많고, 말 잘하고, 어른스러웠던 성하.

성하, 너 지금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니? 우리, 아직도 널 기억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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