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이야기 6 - 찹쌀떡, 메밀묵

by 서유정

조기 청소회. 아침마다 집 앞에 나가 청소를 해야 했다. 이게 뭐라고 이름까지 붙여놨는지 모르겠다. 그 시절 동네는 마치 군대 같아서, 누가 대문 앞에 먼지 좀 쌓였다 싶으면 바로 통장 아줌마가 눈에 불을 켜고 잡아냈다. 가족 중에 아무도 안 나오면 나중에 동네 회의에서 이름이 거론됐다. “저 집은 애도 많으면서 청소할 사람은 없나 봐?”

그러니 누군가는 꼭 나와야 했는데, 언니랑 오빠는 학교 갈 준비에 바쁘고 엄마 아빠도 정신없이 바쁘면 결국 내가 나갔다. 내 키만 한 싸리 빗자루를 들고 대문 앞에 서 있으면, 그 모습이 꼭 국민학생이 아니라 어린 청소부 같았다. 빗자루가 나를 휘두르는 건지 내가 빗자루를 휘두르는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그런데 세상에! 언제나 유혹은 찾아오는 법이다. ‘뿌우—’ 하는 소리와 함께 골목 끝에서 나타난 건 소독차였다. 하얀 연기를 뿜으며 천천히 들어오는데, 그게 그냥 차가 아니었다. 내 눈에는 마치 구름 속에서 나타난 용의 마차 같았고, 또 다른 눈으로 보면 선녀 전용 자가용 같았다. 온 동네 아이들이 “와아아!” 소리 지르며 따라갔다. 나는 빗자루를 대문에 던져 버리고 애들하고 같이 달렸다. 솔직히 빗자루는 나보다 그 자리에 더 잘 어울렸다.

우리 반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소독 냄새가 나는 하얀 연기는 벌레와 모기를 없애는 연기였다. 친구 말이 머릿속 이도 없어지고 우리 몸도 깨끗해진다고 했다. 나는 달리기를 못해서 조금 가다가 뒤처지고 말았다. 너무 아쉬웠다. 쭉 가면 선녀와 나무꾼에 나오는 선녀처럼 하늘로 붕 뜰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엄마가 내가 던져놓은 빗자루를 들고 잔소리를 늘어놓으셨다.

”넌 도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니? 저 봐라. 소독차 쫓아다니는 거 사내 녀석들 하고 동네 개들 말고 누가 있니? 뭐가 신이 나서 그 안에 껴 있냐? “

나는 대답 대신 기침만 했다. 사실은 엄마 잔소리도 소독 연기 속에서 사라질 줄 알았는데, 잔소리는 연기보다 더 오래 남았다.


동네 아이들이 따라다니는 차는 또 있었다. 똥차였다. 요즘은 유행이 지난 오래되고 성능이 별로인 차를 똥차라고 한다. 옛날에는 정말 똥을 싣고 다니는 차가 있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동네에 왔다. 화장실이 수세식인 집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의 집이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똥차의 냄새는 100미터 밖에서부터도 알 수 있었다. “똥퍼~ 똥퍼~” 하고 차가 들어오면 아이들은 코를 막고도 신기하다는 듯 구경했다. 나는 단 한 번도 따라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건 연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냄새’였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내가 하도 울고 불고 하면서 요강에 똥을 싸서 아빠가 집을 사자마자 화장실부터 고쳤다. 나는 화장실에 빠질까 봐 못 가고 친구들이 한 이야기가 무서워서 또 화장실에 못 갔다. 똥을 다 싸면 화장실 귀신이 빨간 손으로 닦아줄지 파란 손으로 닦아줄지를 물어본다는 것이다. 자기 마음에 안 드는 대답이면 화장실 밑으로 아이를 잡아간다는 것이다. 나는 절대로 재래식 화장실을 안 갔다.


놀이터 옆에서 항상 자리를 지키던 달고나 아저씨는 동네 아이들의 비밀 기지 같았다. 삐걱거리는 철판 위에 설탕을 올리고 불로 녹여 눌러 찍을 때 나는 그 달큼한 냄새, 그리고 아이들이 숨죽이며 기다리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생생하다. 하지만 아무리 달고나가 맛있어도, 그 인기를 능가하는 이는 따로 있었다. 바로 뻥튀기 아저씨였다.

”뻥이요~! “

하면서 온 동네가 떠나가라 폭탄 터지는 소리가 나면 아이들뿐만 아니라 아줌마들까지 모여들곤 했다. 깡통에 옥수수를 넣으면 강냉이가 나오고 쌀을 넣으면 튀밥이 나왔다. ‘펑!’ 하는 폭탄 같은 소리에 다들 심장이 덜컥했는데, 그다음에 하얗게 부풀어 오른 튀밥이 쏟아져 나오면 함성이 터졌다.

엄마도 늘 오빠 핑계를 대며 쌀을 들고나갔다. 사실은 엄마 본인이 제일 좋아하셨던 것 같다. 나는 줄 서는 담당이었다. 그때는 번호표 같은 게 없어서 그냥 아이들이 깡통 옆에 죽 늘어섰는데, 줄을 보고 있으면 거의 우리 학교 반절은 다 거기와 있는 수준이었다. 차례가 되어 ‘펑!’ 하고 튀겨지면, 하얀 튀밥이 마치 눈 폭풍처럼 쏟아졌다. 튀밥은, 그냥 음식이 아니었다. 내겐 마법사의 묘기 같았다. 그 고소하고 달달한 맛은 밥보다, 떡보다 더 특별했다.

나는 우리 집 것 튀기고도 그냥 앉아서 아저씨가 짐 쌀 때까지 구경했다. 혹시라도 마지막에 덤으로 한 번 더 ‘펑!’ 소리가 나면, 그건 아이들에게 하늘이 주는 보너스였다. 어린 마음에 ‘만약 전쟁터에서 총알 대신 튀밥이 나오고, 대포에서 강냉이가 터져 나온다면 세상은 얼마나 평화로울까’ 하고 상상하기도 했다. 지금은 튀밥이 다 튀겨져서 봉투에 담겨 있다. 나는 예전의 뻥튀기 소리가 가끔씩 그립다.


낮에만 장사꾼이 오는 게 아니라 밤에도 간식을 팔러 오시는 분들이 있었다. 찹쌀떡~. 메밀묵~.

시원한 계절, 저녁 먹고 세수하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을 무렵 들려오던 그 목소리는 마치 마법의 주문 같았다. 엄마는 꼭 찹쌀떡만 샀다. 찹쌀떡을 먹어야 언니 오빠가 학교 입학시험에 붙는단다. 메밀묵을 먹으면 미끄러져서 떨어지고. 나는 시험 안 보니까 메밀묵 좀 먹어 보면 안 되냐고 했더니 가족이 더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덕분에 나는 어린 시절, 찹쌀떡만 실컷 먹었다. 그래도 좋았다. 차갑고 쫄깃한 맛이, 마치 내 혀에 박하사탕을 붙여놓은 것처럼 신기했다. 게다가 아저씨들 목청이 얼마나 좋은지. 오늘 하루 수고했다고 이거 먹고 힘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배달시키면 온갖 것이 다 집에 오지만 두 가지 메뉴밖에 없던 그 시절. 어쩐지 행복의 비결을 슬며시 알려주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선택하면서 행복을 느끼지만 동시에 선택하지 않은 옵션에 대한 아쉬움이 말도 못 하게 밀려온다, 50가지 중에 한 가지를 고르면 50배로 더 행복한 것이 아니라 선택하지 않은 49가지에 대한 미련이 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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