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이야기 4 - 서호 목욕탕

by 서유정


집집마다 지금처럼 온수가 나오는 시절이 아니었다. 항상 찬물로 씻고 온수가 필요하면 물을 데워서 사용해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뜨거운 물이 필요하면 연탄불에 주전자를 올려놓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금방 식어버리기 일쑤였다. 보일러니 온수기니 하는 것은 텔레비전 속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였다. 아침마다 데운 온수는 온 가족이 아껴서 세수하는 데 사용했다. 머리는 삼사일에 한번 감을 수 있었지만 목욕은 매일 집에서 할 수 없었다.

동네 목욕탕이 정말 중요했다. 목욕탕 없는 동네는 없었다.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 아침에 목욕탕을 갔다. 물이 깨끗해야 한다고 새벽 일찍 목욕탕 문 열자마자 갔다. 난 일요일은 학교도 안 가고 늦잠 자고 싶어 죽겠는데 엄마한테 이끌려 갈 수밖에 없었다.

“일어나. 목욕탕 가자.”

“조금만 더 자면 안 돼?”

“너 까마귀가 사촌 하자고 하겠다. 이 목에 때 좀 봐라. 어이구.”

“난 차라리 까마귀 할래. 까마귀는 목욕탕 안 가잖아? 왜 나만 가야 돼?”

결국 엄마한테 등짝을 한 대 맞으면서 이 대화는 끝난다.


아빠와 오빠는 남탕으로, 엄마와 언니, 남동생, 나는 여탕으로 들어갔다. 나는 은근히 남탕에 가고 싶었다. 어찌 된 일인지 아빠는 목욕을 빨리 끝내고 집에 먼저 와있는 거다. 게다가 여탕은 항상 사람이 많았다. 동네 여자들과 나이 어린 남자아이들까지 다 오니 여탕이 아니라 가족탕이었다. 아무튼 답답한 여탕에 오래 있어야 했고 엄마는 아프게 때를 밀었다.

엄마는 늘 나를 세숫대야에 앉혀 놓고 거친 때수건으로 등을 문질렀다.

“아이고, 이 때 좀 봐라. 이걸 달고 어떻게 살았누?”

엄마는 늘 감탄으로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때를 모아 팔 수 있으면 부자 되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렇게 때를 밀고 헹구고 다시 밀었다. 하지만 때는 또 나왔다. 끝이 없었다. 그 고통을 견디는 유일한 보상은 목욕 끝나고 마시는 바나나 우유 한 병이었다. 그 노란 우유의 달콤한 맛은 등짝의 고통을 상쇄시켜 주는 유일한 위로였다.

그래도 때를 안 밀고 있을 땐 찬물 목욕탕에서 헤엄치며 놀 수 있었다. 동생이랑 냉탕에서 첨벙거리며 물장구를 치고, 갑자기 추워져서 다시 온탕으로 뛰어 들어가는 그 리듬감이 어린 나에게는 꽤 중독적이었다. 그러다 가끔, 고요해진 순간엔 물속에 온몸을 담그고 수증기 속에서 숨을 크게 들이쉬며 목욕탕의 소리를 들었다. 발소리, 물소리, 대야 부딪히는 소리, 웃음소리, 아주머니들의 수군거림. 그 모든 것이 하나의 거대한 합창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아.... 여탕에서 하루는 우리 반 친구 성하를 만나고 말았다. 발가벗은 몸으로. 순간, 아무 말도 못 하고 눈으로 서로의 몸을 빠르게 훑어봤다. 이런 민망한 순간이 벌어지다니.... 어제까지 옷 입고 교실에서 같이 공부했는데 오늘 아침 목욕탕에서 맨몸으로 만났다. 침묵 속에서 눈빛으로만 수많은 말이 오간 것 같았다.

사실 일곱 살까지만 남자아이가 여탕에 들어올 수 있었지만, 성하는 예외였다. 아빠가 안 계셨고, 성하 엄마는 모래내 시장에서 장사를 하시느라 평일엔 시간이 없었다. 그날 새벽, 성하 엄마는 사정을 해서 성하와 여동생들을 데리고 여탕에 들어왔다. 마침 이른 시각이라 손님도 많지 않았고, 목욕탕 주인도 못 본 척 눈을 감아주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그 시간에 내가 거기에 있었다는 것. 성하는 나를 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학교 가서 말하면 가만 안 둔다. 보온밥통.”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열 살에 이차성징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우리도 개와 고양이를 구분하는 것처럼 남자와 여자가 다르다는 것을 아는 나이였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우리는 같이 놀았다. 성하 여동생들과 함께 냉탕 갔다 온탕 갔다 하면서 물장구도 치고, 대야에 물을 담아 서로에게 끼얹으며 뛰어다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쯤, 온탕에 앉아 몸을 불리며 수증기 가득한 목욕탕을 구경했다. 온기와 열기, 뿌연 수증기까지 가득하고 옷도 벗고 자유롭고 성당에서 말하는 낙원은 목욕탕과 비슷하지 싶었다.

나는 비로소 목욕탕이 단순한 씻는 공간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온기가 있고, 열기가 있고, 벗은 몸들이 있었고, 수치심보다 해방감이 먼저 있었다. 마치 옷을 벗으니 사람 사이의 장벽도 사라지는 듯했다. 새벽이라 목욕탕에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아이부터 할머니까지 동네 사람이 다 모여 있었다.

서로 등도 밀어주고 이야기꽃이 피었다. 정육점 고기가 언제 들어왔는지, 육일 방앗간 집 아들이 대학 간 이야기, 민수네 아저씨 춤추러 다니는 이야기, 회수권 싸게 살 수 있는 곳, 이야기가 끝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것은 아줌마들과 언니들의 몸매였다. 내가 이상한 것이 아니라 벗은 몸이 한가득 있으니 안 볼래야 안 볼 수가 없는 것이다,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 세계의 많은 갤러리에 가 봤지만 어렸을 때 서호 목욕탕에서 본 여자 누드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뿌연 수증기 속 허연 나체가 목욕탕 여기저기에 있었다. 내가 뛰어난 화가라면 그림으로 남겨 놓을 정도로 감명 깊은 장면이었다. 특히 가장 아름다웠던 여체는 내 친구 성하엄마였다.

일단 다른 아줌마와 다르게 배가 안 나오고 허리가 날씬했다. 평소에 묶고 있던 생머리를 풀어서 수건으로 감싸 올렸다. 몸에는 직선이 없고 전부 부드러운 곡선이었다. 몸의 빛깔은 아침에 먹은 우유에 버터를 살짝 넣은 빛깔이랄까. 디저트라면 먹고 싶은 색깔이었다.

특히 아름다웠던 부분은 두 군데였다. 어깨에서 등으로 내려가는 선과 어깨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선. 너무 곱고 유려했다. 저 어깨를 보고 안고 싶지 않은 남자가 있을까 싶었다. 몸매는 날씬한데 가슴은 풍만했다. 그렇다고 다른 아줌마들처럼 크고 처진 것이 아니라 수줍게 내려간 듯 위로 약간 봉긋했다. 두 가슴 사이의 골, 가슴에서 배로 부드럽게 내려가는 선. 뒷모습은 포근하게 안기고 싶었고, 앞모습은 고요히 기대어 쉬고 싶은 느낌이었다.

게다가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은 자기 몸을 수줍어하는 모습이었다. 다른 여자들은 목욕탕에 당당하게 들어와서 거침없이 활보를 하고 다녔다. 성하 엄마는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들어와서 돌아앉아 조심스럽게 물을 끼얹는 것이었다. 같은 여자인데도 다른 이들로부터 지켜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스의 비너스, 유명한 화가들의 누드화를 통틀어도 성하엄마만큼 아름다운 여체는 본 적이 없다. 그날 나는 여자 누드의 아름다움을 처음 배웠고, 동시에 인간의 취약함과 품위를 함께 느꼈다.

목욕이 끝난 후, 엄마와 언니가 탈의실에서 옷을 입는 동안 나는 동생과 함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바나나 우유를 빨아 마셨다. 목욕탕 유리창 너머로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서호 목욕탕.

목욕탕에서는 누구나 옷을 벗었다. 평소에는 멋 부리고 다니던 아줌마도, 양복 입은 아저씨도 모두 맨몸으로 같은 탕에 앉아 땀을 흘렸다. 그래서 목욕탕에서는 체면도, 신분도 사라지고, 그냥 동네 사람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곳에서 마주친 사람과는 괜히 더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옷을 벗고 만나 서로 등을 밀어주던 곳. 가족보다 더 가까운 이웃들이 있었다. 수증기 속 그 따뜻하고 뿌연 공간이,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낙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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