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선 이야기 3 - 기생충

by 서유정

해마다 봄이 되면 학교에서 기생충 검사를 했다. 담임 선생님은 교탁 옆에 서서 입을 꾹 다문 채로 누런 종이봉투를 하나씩 나누어 주셨다. 책상 줄을 따라 돌고 도는 봉투를 우리는 익숙하게 받아 들었다.

"얘들아, 이건 아주 중요한 거니까, 절대로 잊지 말고 내일까지 꼭 가져오도록 해."

그 '아주 중요한 거'는 다름 아닌 똥이었다.

그 시절엔 집집마다 화장실도 변변치 않았고, 아이들 뱃속에 기생충과 함께 사는 일이 흔했다. '횟배'라는 말이 일상에 있었고, 똥이 묽으면 "회충이 뱃속에서 잔치 벌였구먼" 하며 웃는 어른들도 있었다. 그래서 봄마다 기생충을 검사하느라, 온 학교에 조용한 똥 전쟁이 벌어지곤 했다.

배변 봉투는 이름은 근사했지만, 생김새는 초라했다. 약간 거친 누런 종이로 된 작은 봉투에 반, 번호, 이름을 쓰는 칸이 있었다. 봉투 속에는 비닐봉지가 접혀 있었고, 그걸 묶을 실까지. 거기에, 그걸… 싸야 했다. 말만 들어도 속이 울렁거렸다.


그날도 배변 봉투를 받아 들고 하교하는 길이었다. 가방에 넣자니 뭔가 찝찝하고, 손에 들고 가자니 사람들이 놀릴 것 같고. 어색한 표정으로 걷고 있는데, 갑자기 대진이가 배를 움켜쥐며 말했다.

"야… 나 지금 똥 마려워. “

나는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이건 기생충의 계시였다. 내 똥 대신 대진이의 똥을 제출하면 되잖아! 나는 똥을 규칙적으로 싸는 체질도 아니었고, 무엇보다도 똥을 떠서 봉투에 담아 가방에 넣는다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찔했다. 내가 조심스레 말했다.

"야, 대진아. 너 혹시… 내 것도 싸줄래?"

대진이는 나를 쳐다보다가 푸하하 웃더니 말했다.

"그래, 괜찮아. 나 똥 진짜 많이 싸. 똥 싸는 건 껌이지."

이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성하도 부탁했다.

"야야야, 그러면 내 것도! 이왕 싸는 거 나도 부탁!"

그렇게 우리는 은밀한 ‘똥 작전’을 시작했다.

집 뒤편, 담벼락과 담 사이의 좁은 틈바구니 공간이 현장이었다. 마치 군사작전을 하듯, 우리는 조용히 신문지를 깔고 준비를 마쳤다. 대진이는 바지를 내리고 장렬히 임무에 돌입했고, 성하는 부엌에서 몰래 가져온 젓가락을 들고 도우미 역할을 자처했다. 나는 배변 봉투 세 개에 각자의 반, 번호, 이름을 정성껏 써넣었다. 대진이는 말 그대로 '똥 천재'였다. 똥이 어찌나 굵직하고 잘 나오는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와… 야, 넌 진짜… 대단하다."

"그치? 나 똥 싸는 건 자신 있다니까!"

성하는 능숙하게 젓가락으로 똥을 잘라 비닐봉지에 담아서 실로 입구를 단단히 묶고 봉투에 넣어 밀봉했다. 세 사람의 분업이 척척 이루어졌다. 다 끝난 뒤, 대진이는 쿨하게 말했다.

"이거 내가 다 가져갔다가 내일 제출할게. 문제없어."

나는 그 순간, 우정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똥까지 나눌 수 있는 사이, 이게 진짜 친구 아닌가?

다음날 학교에 가니 똥 냄새가 복도에 가득했다. 아무리 실로 꽉 묶고 잘 싸매도 근처에 똥 냄새가 났다. 심지어 한동안은 책가방 속에까지 냄새가 났다. 교실 들어가는 뒷문 앞에 큰 상자가 있었고 아이들이 들어가면서 배변봉투를 내고 있었다. 대진이도 얼른 세 개를 내고 교실로 들어왔다. 그 순간, 나는 괜히 뿌듯해졌다. 임무는 완수되었다.


한 달 뒤, 결과가 나왔다. 양호선생님과 주전자를 든 6학년 오빠가 교실에 왔다. 뱃속에 기생충이 있는 아이들은 복도로 불려 나갔다. 보통 회충이 제일 많았고 해당 학생들은 주황색 작은 알약을 세 알씩 먹어야 했다. 그러면 회충이 죽고 그날 저녁에 똥을 싸면 죽은 회충이 나오고 뱃속이 깨끗해진다고 했다. 담임 선생님은 남은 아이들에게 기생충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인체에 얼마나 해로운지를 진지하게 설명해 주셨다. 양호 선생님이 3반으로 가시기 전에 말씀하셨다.

“ 김대진, 김민선, 전성하. 너희 셋은 이따 점심시간에 밥 먹지 말고 양호실로 내려와라. ”

정적이 흘렀다. 뭔가 이상했다. 단순한 회충 정도가 아닌 느낌이었다. 우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점심시간에 양호실로 향했다.

양호실에는 이미 열댓 명의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양호 선생님은 조용히 다가오더니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회충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기생충도 많아서 다른 약을 먹어야 해. 오늘은 똥 쌀 때까지 밥 먹지 말고 기다렸다 밥 먹어야 한다. 그동안 배가 좀 아플 수도 있어.”
양호선생님이 한 움큼의 약을 주셨다. 내 작은 손으로 약을 받으니 두 손 가득히 찼다.

“이따가 집에 가서 먹으면 안 돼요?” 성하가 말했다.

“저 혹시 기생충 죽을 때까지 밥을 굶을까요? 아니면 물을 많이 먹어서 익사시킬 수도 있는데....”

나는 용기 내어 말했다. ‘익사’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나올 때, 나름 지적인 표현을 했다는 생각에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선생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지금 당장 먹어야 해."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건 내 똥이 아니에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대진이가 꿀떡꿀떡 삼키기 시작했고, 성하도 눈 딱 감고 약을 털어 넣었다. 선생님의 시선이 나를 향하자, 나는 결국 고개를 숙이고 입을 벌리고 약을 먹었다. 약은 많았다. 입안이 텁텁해지고, 위장은 뭘 삼킨 건지 몰라서 당황하는 것 같았다. 양호실을 나서는데, 눈앞이 팽 돌았다. 뭔가 잘못된 느낌이 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다. 인생의 숙제는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다. 아무리 똥이 싫어도, 아무리 토할 것 같아도, 내 몫의 똥은 내가 담아야 한다. 내 몫의 일을 다른 사람이 할 수가 없는 것이다. 피한다고 돌아간다고 해결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난 왜 용기가 없었던 것일까. 양호선생님한테 사실대로 말할걸.

아홉 살짜리 꼬마였지만, 나는 그날 인생의 진실 하나를 똑똑히 배웠다. 거짓말을 하면 하느님께 벌을 받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은 바쁘셔서 이런 똥 문제까지 간섭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내가 내 똥을 무시하면, 똥이 나를 절대 가만두지 않는다는 것. 그걸 뼛속까지, 아니 뱃속까지, 체험했다. 지금도 인생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마다, 그 봄날의 똥과 기생충이 어김없이 떠오른다.

늘 성하네 집에 가서 같이 숙제하고 놀았던 우리는 그날만큼은 말없이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나는 토하고 싸고 식은땀을 흘리고 난리도 아니었다. 기생충이 아니라 내가 반쯤 죽다 살아났다. 엄마 아빠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보고 계시고 나는 정신도 없고 기운도 없고 비몽사몽이었다.

“ 어휴, 정말 속상해요. 괜히 집 앞으로 전학을 시켰나 봐요. 공부는 뒷전이고 맨날 남자애들하고 놀고. 애가 튼튼하긴 한데 약간 모자란 것도 같고...”

“쓸데없는 소리. 전학하고 학교 안 간다는 소리도 안 하고 친구도 많고... 그리고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서 여자다운 게 좋은 게 아니오. 두고 보시오. 민선이는 이다음에 크게 한자리할 녀석이니.”

역시 아빠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스르르 잠이 들었지. 하지만 결국 다음 날 학교를 못 갔다. 그 시절의 우리는 참 바보 같았고, 참 용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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