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샨(阿里山) 가는 길, Day 8(1)
'아침부터 객실에서 머드 온천을 해보자.'
6시부터 눈이 절로 떠진다.
아침에 온천하고 조식 먹으러 가자 했던 아드님은 잠에 취해서 눈을 못 뜬다.
여행 내내 계속 머릿속으로 뭔가 생각이란 것을 해야 했는데, 혼자 탕에 들어가서 가만히 눈감고 조용히 멍'때리는' 시간이 너무나 행복하다.
아들은 조식을 먹으러 갈 때야 겨우 일어나서 엄마 혼자 놀았다고 억울해한다. 엄마 혼자 노는 것은 못 보는 아드님. 난 깨웠거든?(소리가 크지 않았을 뿐)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먹는 호텔 조식. 아침을 잘 먹지 않는 나는 샐러드, 죽, 빵, 시리얼, 커피 정도 먹을 만했고, 다른 아침 식사류는 입맛에 그다지 맞지 않았다. 과일 종류도 별로 없고, 그나마 있는 과일도 맛도 없다는 것이 특히 아쉽다.
시우는 채소와 면을 선택하고 양념을 넣어 직접 만들어 먹는 국수 DIY코너를 상당히 좋아했다. 그 앞에 한참을 서서 맛을 보며 만들어 왔는데, 만들면서 많이 먹어서인지 정작 남은 국수는 별로 없었다. 자기가 정말 맛있게 만들었다며 뿌듯해한다. 그래, 네가 만들어서 네가 맛있게 먹었으면 됐다.
밥을 먹고 객실에서 마지막으로 욕탕에 물을 받고 마지막 온천을 즐긴다.
“우리 같은 손님만 있으면 여기 망하겠는데?”
오늘의 목적지는 아리샨 숙소! 아리샨이 아니라 아리샨 '숙소'가 목적지다.
아리샨은 독립된 산의 이름이 아니라, 대만 최고봉인 위샨(玉山)주변의 약 2000m 급의 산 전체를 일컫는 말로 대만에서 너무나 유명한 산악 휴양지다.
"여긴 꼭 갈 거야!"
친자연주의 성향인 나는 가이드북을 가득 채운 푸르른 아리샨의 사진만 보고도 아리샨에 매료되어 버렸다. 타이난에서 아리샨에 들렸다가 타이중으로 가자. 그런데 이 매력적인 관광지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다.
아리샨에 가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찌아이를 베이스로 하여 하루 숙박한다. 그리고 다음 아침에 두 시간 반 정도 버스를 타고 아리샨에 갔다가 다시 찌아이로 내려오는 것이다. 두 번째, 아리샨 입구에 숙소를 잡고 다음날 새벽 산악기차를 타고 일출을 보고 트래킹을 즐긴 후 내려가는 것이다.
이전에는 찌아이 역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아리샨까지 갈 수 있었지만, 1999년 대만 지진이 발생하면서 일부 구간이 폐쇄되었고 아직도 보수 재건 중이라고 한다. 그래도 산악열차를 타야겠다면, 찌아이에서 기차를 타고 가다가 내린 후 다시 버스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산악열차는 아침 9시경 한 대, 주말에는 두대만 운행된다.
아이를 함께 어떻게 가는 게 좋을까? 교통편이 많지도 않다. 신경 쓸 것투성이.
새벽 6시 일출? 산악열차? 그냥 가지 말까?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던 중에 찌아이에서 아리샨 가는 길에 작은 규모의 숙소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복잡하고 힘들다면 중간에 한번 끊어가자!
폭풍 검색으로 찌아이에서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고 숙소 근처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아리샨 썬라이즈’ (H& 阿里山初日-H& Alishan Sunrise)를 찾아냈다. 여기서 자고 다음날 아리샨에 가는 거야. 오케이! 아리샨 가즈아!
찌아이역에서 아리샨에 가는 버스는 대략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있다. 정확한 시간을 체크하려고 어제 꽌즈링 정류장을 물어봤던 찌아이 역 인포메이션 센터에 물어본다. 오늘도 기다렸다는 듯 알아보기 편한 정류장 지도를 꺼내 보여 준다.
정류장과 출발 시간을 확인을 했으니 밥을 먹어야지. 역 앞의 모스 버거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요요우 카드도 충전하고, 아들 버스비 용 현금도 미리 챙겨 놓는다. 대만 버스는 잔돈을 거슬러주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준비해 놓아야 한다. 잔돈 안 주냐고 물어보면 기사 아저씨들이 별로 안 좋아하더라.
유명한 관광지의 명성에 맞게 이미 정류장은 사람들로 붐빈다. 등산복을 입고 제대로 등반 준비를 한 사람, 비닐봉지에 도시락을 들고 있는 연인들, 커다란 배낭을 멘 외국인들 이미 줄을 길게 늘어서 있다. 거기에 엄마와 아들, 대형 캐리어 하나 추가요! 게다가 요즘은 아리샨이 벚꽃 시즌이라고 한다.
나는 종점이 아니라 중간에 롱토우핑(龍頭平 용두평)에서 내려야 한다. 이 버스가 롱토우핑에 가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동네방네 소문내기 신공을 사용한다. 짐을 실으면서 짐 싣는 아저씨에게 물어보고, 버스 기사 아저씨에게도 큰 소리로 물어본다.
“롱토우핑 가지요?”
누군가는 도착하면 알려주겠지. 시우는 뒤쪽에 앉고 싶다고 했지만 기사 아저씨와 가까운 두 번째 줄에 앉는다. 아저씨가 내리라고 하면 후딱 내려야 한다고! 뒷자리의 할아버지가 내 말을 들으셨는지, 가는 곳이 ‘롱토우’냐 ‘롱토우핑’ 이냐 묻는다.
“'롱토우핑’이요”
어디서 숙박하는지도 물어보셔서 사실대로 대답했더니 옆에 앉은 아들이 그런 개인정보를 알려주면 어떻게 하냐고 나를 조용히 꾸짖는다. 그… 그런가?
버스가 출발하자 맨 앞에 앉아 계시던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꺼낸다. 아니겠지? 그랬다. 도시락을 꺼내더니 천천히 식사를 하시기 시작한다. 아… 할아버지. 무선 이어폰을 꽂고 계신 트렌디한 할아버지. 문도 열 수 없는 버스 안에서 음식냄새가 진동을 한다.
“엄마 버스에서 뭐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몰라. 되나?”
어제 꽌즈링 가는 길처럼 계속 위로 올라가면서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진다. 정말 장관이지만... 그 길이 계속 꼬불꼬불, 우리가 올라온 길이 내려다 보여 아찔하기까지 하다. 갑자기 시우의 상태가 안 좋아진다. 멀미는 잘 안 하는 아이인데 엎드렸다 일어났다 어쩔 줄 몰라하며 괴로워한다.
“엄마 나 토할 것 같아.”
“시우야. 거의 다 왔어. 조금만 참아.”
아이를 달래며 생각한다. 중간에 숙소를 잡아서 정말 다행이야, 어쩔뻔했어. 생각만 해도 진땀이 난다.
“다음이 롱우토핑인데, 혼자 찾아갈 수 있겠어?”
역시! 뒷자리 할아버지가 알려주신다.
“네, 10분이면 간다고 하던데요.”
못 찾아간다고 했으면 알려주려고 했을까? 뒷자리라서 얼굴도 제대로 못 봤는데 너무 감사했다.
지옥 같은 시간을 어찌어찌 버텨 버스에서 무사히 내린다. 우선 맑은 공기를 마시며 심호흡을 시킨다. 정류장에 주변을 왔다 갔다 하며 쫑알쫑알하면서 금세 컨디션 회복. 다행이다. 아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