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샨(阿里山) 일출, 아리샨국립공원. Day 9(1)
오늘은 내가 기대하고 기대하던 아리샨 트레킹을 하고 타이중으로 가는 날이다.
찌아이역에서 타이중까지는 기차로 1시간 20분 정도 걸린다. 찌아이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타이중으로 이동할까 고민도 했는데 하루 하루 짐 들고 이동하는 것도 피곤한지라 타이중에서는 3일 숙박하는 일정으로 예약했다. 이동수단이 많지 않아 버스 출발 시간에 맞춰 계획을 세우다 보니 다음과 같은 일정이 나왔다.
오늘의 계획
6:00 일출감상
7:30 아침식사
8:10 숙소 출발
8:20~30 7322C 아리샨행 버스 탑승
9:30 아리샨 도착
14:10 아리샨 출발
16:55 타이중 기차(기차에서 도시락)
18:20 타이중 도착
아리샨에 가려면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한시간은 더 가야 한다. 조식먹고 느긋하게 출발하는 것도 좋겠지만 다음 일정인 타이중 도착이 너무 늦어질 것 같다.
이 소심이 엄마는 가능하면 밤에 돌아다니는 것을 피하려고 하고 있다. 메인 거리의 유명 호텔로 가는 것이 아니니, 처음 가는 숙소가 어떤 곳일지, 골목이 으슥할지, 주변 환경이 어떨지도 모르는 상황에 아이와 함께 밤 늦게 헤매는 것은 좀 불안하다.
고민하느니 일찍 출발해서 여유있게 움직이기로 한다. 힘들게 간 아리샨인데 시간에 쫓기면서 보고 싶지 않아. 여행에서의 나의 기조는 "쉬더라도 가서 쉬자."
아리산 일출을 보는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새벽에 산악 열차(쭈샨시엔)를 타고 산에 올라가는 것이다. 일출을 보고 바로 아리샨 트레킹을 시작하는 이 일정도 끌리기는 했지만... 짐은? 아이는? 그 타협점이 숙소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이 숙소였다.
관심이 없을 줄 알았던 아들도 함께 하겠다고 하니 함께 나가보자!
해뜨는 시간이 6시 20분이라고 하던데, 6시가 넘으니 옆방에서 문 열고 닫는 소리가 들린다. 다들 부지런하구먼.
“시우야 일출 보러 가자”
잠옷에 주섬주섬 겉 옷만 걸치고 일출 전망대로 나간다. 우리가 어제 밀크티를 마구 흘렸던 그곳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다.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하며 해돋이를 기다리는 외국인들도 있다. 내가 생각했던 모습이 저것이었는데. 흠. 나중에 우리도 언젠가는 가능하겠지.
내 기억 속의 해돋이는 항상 추웠는데 오늘은 포근한 아침이다.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멍하니 서서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우아하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언제 해가 뜨는 거냐며 투덜투덜대는 아이도 있다. 나는 난간에 올려놓고 동영상으로 일출 장면을 찍고 있는 누군가의 핸드폰이 떨어질까 신경 쓰며 기다린다.
매일 뜨고 지는 해인데, 여행을 하면서, 산위에서 떠오르니 두근 두근 설레이인다. 아름답고 신비한 그 순간이 여행을 더 밝혀주고 풍성하게 해준다. 그래서 이렇게 지루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해 뜨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잠시 후 산 위로 노란 빛이 비추더니 해가 조금씩 나온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하늘을 환하게 비춘다. 더 이상 육안으로 볼 수 없는 상태가 되며, 주위가 환해지고 더워지고 긴 그림자가 늘어진다.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이 하나 하나가 감각으로 느껴진다.
방으로 들어오니 잠시 해돋이와 함께 멈췄던 마음의 시계가 급하게 돌아간다. 대충 짐을 쑤셔 넣고 조식이 시작하는 시간에 맞춰서 아예 가방을 들고 식당으로 간다.
아이가 30분만에 식사를 끝마칠 수 있을 것인가.
"시우야 천천히 빨리 먹어"
마음과 머리가 따로 노는 엄마가 종종 하는 말이다.
어제의 호텔 조식보다 종류는 적었지만 내가 딱 먹을 것들만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더 마음에 들었다. 죽, 토스트, 빵, 잼, 커피. 그리고 사장님이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먹어보라고 강력 추천하신 우롱찐빵. 차의 향이 진하게 나는 이 찐빵- 정말 맛있었다. 구입도 가능하지만 이미 짐 많은 여행자라 백 번 고민하고 마음을 접는다.
아들이 협조로 계획했던 시간에 나올 수 있었다.
“고양이들아, 많이 못 놀아줘서 미안해.”
“우리는 이제 간단다”
아이가 고양이에게 아쉬운 작별인사를 하고 어제 왔던 그 길을 내려간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같은 숙소에 묵었던 외국인 청년이 앞뒤로 배낭을 매고 그곳으로 온다. 진정한 배낭여행자의 포스! 대만에서 배낭여행을 하는 중이라는 호주 청년 톰(이라고 하자)과 반갑게 인사한다. 같은 차를 타고 가야 할 것 같은데 언제 올지, 구글 맵이 잘 안 맞는 것 같다고 하며 연신 핸드폰을 본다. 그래… 동서양을 막론하고 버스에 민감한 우리 뚜벅이 여행자들.
“버스는… 음… 10분 후에 도착해요.”
알려주자 깜짝 놀라며 묻는다.
“그거 무슨 앱이에요?”
“이거 버스 플러스라는 앱인데 버스 번호를 치면 몇 분 남았는지 나와요.”
정보에 빠른 K아줌마. 대만 여행 정보카페에서 어떤 분이 공유한 앱인데 사실 받아 놓은 것도 잊어버리고 있다가 우연히 어제 밤에 보게 되었다. 이렇게 버스가 자주 오지 않는 곳에서는 너무 너무 유용한 앱이다.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양 으스대며 알려준다.
톰은 오늘 아리샨에서 일박을 더 할 예정이라고 하며, 좋았던 곳을 물어본다.
"당연히 꽌쯔링이죠!"
자기도 마침 온천에 가고 싶다고 찾아보더니 내일 가야 겠다고 하며 정보를 검색한다. 리액션이 좋은 친구다. 그러면서 나에게는 양명산 온천을 추천해준다. 그 와중에 온천이 중국어로만 생각나고, 영어로 생각이 안난다.
“원취엔, 온센, 핫워러…”
“핫 스프링?”
“그래! 그거.”
한국 가면 영어 공부 좀 해야 겠다. 엄마는 아들이 이럴 때 실전 회화를 좀 해보면 좋겠는데
“I’m 김시우.”
하더니 도망가서 혼자 논다. 으이구.
칼 같이 10분후에 버스가 도착한다. 짐 싣는 것을 도와준 끝까지 매너 좋은 톰. 버스에 올라 타고 자리에 앉아서야 한숨 돌릴 여유가 생긴다. 버스 타기 미션 성공.
이 아침부터 버스에 이미 사람들이 가득 차 있다. 정말 아리샨은 인기가 많구나. 버스는 점점 더 위로 올라가고, 창밖의 풍경들도 더욱 더 아찔해진다. 날씨도 너무 좋고, 비현실적으로 푸른 빛의 하늘. 아들 상태가 오늘은 괜찮다.
드디어. 두근두근.
버스에서 내려 바로 보이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계란, 바나나 같은 비상 식량을 비축해 놓는다.
“버스 타고 왔어요?"
"네."
입구에서 직원 아저씨가 묻는다. 왜지? 나한테 관심있나? 노란색 종이를 내놓으란다.
“노란색 종이가 뭐에요?”
아저씨가 못 알아들은 줄 알고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영어 할 줄 아는 분을 데려온다.
“옐로우페이퍼”
영어든 중국어든 그러니까 그게 뭔데요? 고개를 젓자, 옆에 있던 시우가 대답한다.
“엄마, 아까 노란색 표 받았잖아.”
내가? 정말? 주머니를 뒤져보자 거짓말처럼 노란색 영수증이 나온다.
맙소사. 버스 타고 온 사람들은 이 종이를 보여주면 입장료 반 값 할인을 받을 수 있었다. 영수증이려니 하고 신경도 안 썼더니 받았다는 것 자체도 잊고 있었다.
“오우~ 김시우~ 제법인데?”
아들 얼굴에 한 건 했다는 뿌듯함이 뿜어져 나온다.
“엄마. 기억 안나? 엄마는 기억력이 안 좋아 큰일이네.”
시우가 여행하면서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멘트 였다.
용량은 한정되어 있는데 기억해야 할 게 너무나도 많단 말이다. 너랑 함께 있으니 네가 잘 챙겨주면 큰일이 아니지, 이 녀석아.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