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샨(阿里山) 가는 길, 아리산썬라이즈. Day 8(2)
"또 오르막? 오 마이 갓!"
내린 곳 길 건너편에 숙소를 알리는 표지판이 보인다.
정말? 이쪽으로 가라고? 어제에 이어 또 엄청난 오르막이.
오르막 초입에 뭔가 어울리지 않게 번쩍번쩍한 인디고 아리샨 호텔(Hotel Indigo Alishan)이 있다.
“우리 숙소가 여기… 면 좋겠지만 아니야.”
“알아”
쿨하게 말하고 짐을 끌고 좁은 옆길로 유유히 가는 아드님. 그래. 이제… 아는구나. 아이가 지 몸 만한 캐리어를 밀고 있으니 지나가던 동네 아주머니가 선한 웃음을 지으며 응원해 주신다.
“이제 다 왔어요.”
땀을 뻘뻘 흘리며 드디어 도착.
가파른 계단 위로 산장 같은 분위기의 건물이 보인다. 체크인은 저기서 하는 건가 보다. 짐을 버리고 가고 싶었는데, 마침 계단 한편에 ‘짐을 가지고 올라오지 마시오’라고 쓰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올라가기 전에 봐서 다행이지. 안내 보드까지 만들어 놓은 것을 보면 올라가서 불평한 사람들이 많았나 보다. 괜히 으쓱한 기분.
"오느라고 수고했어요!"
호스트 아주머니께서 여기서는 체크인만 하고, 숙소는 조금 더(!) 올라가라고 했다. 체크인을 하며 아리샨 트래킹 코스, 버스 시간표 등의 여러 가지 다양한 정보를 아낌없이 주신다.
“저녁 먹을 데가 있을까요?”
“버스 정류장 앞에 마라탕 집이 있어요. 가만… 거기가 오늘 영업을 하나? 오늘 쉬는 날이면 편의점에서 사 먹어야 해요.”
식당이 하나밖에 없다고! 그 조차도 닫았을 수 있다니. 그래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던 건가. 거기 말고는 입구 쪽에 있던 호텔에 가서 먹어야 하는데 거기는 인당 이천 위엔 정도 한단다. 뭘 파는 거지? 우선 마라탕 집을 가봐야겠다.
밖으로 나오니 동물원 우리처럼 넓은 케이지에 열 마리도 넘는 고양이들이 자유롭게 뛰놀고 있다. 아이들이 착하니 들어가서 봐도 괜찮다고 하는데 동물들과 별로 안 친한 우리는 서로 들어가라 양보하고 밖에서 구경만 했다. 철망 사이로 슬며시 손을 집어넣는 아들. ‘물리면 어쩌려고.’라는 생각이 먼저 들며 화들짝 놀라는 엄마다.
오르막길을 조금 더 오르면 약간 컨테이너 느낌의 숙소가 보인다. 떨리는 마음으로 공동 현관을 열었더니 나무로 된 긴 복도가 나오고 방도 나무로 되어 있어 숲 속 작은 펜션에 놀러 온 것처럼 신이 난다. 등은 센스 있게 구름 모양이다. 나는 왜 호텔 방보다 이런 숙소에 더 끌리는지. 편하게 살 팔자는 아닌가 보다.
왜 인지 화장실에 사다리가 있다. 당장에 사다리를 밖으로 빼서 벽에 기대 놓고 올라가기를 시전 하는 아드님. 에어컨이... 없네? 지금은 선선해서 괜찮은데 여름에도 괜찮을까? 여름에 왔다면 당황할 뻔했다. 미니 선풍기가 있었고, 제습기가 있다! 장기여행자에게 꼭 필요한 제습기, 어제 덜 마른 수영복을 다 말릴 수 있겠구나.
햇살이 너무 좋은 지금. 마침 시우가 방으로 내다 놓은 사다리에 수영복을 걸고 말린다. 빨래 널어놓는 용도로 사다리가 있는 건가? 알록달록 수영복을 나무사다리에 널어놓으니 금세 우리 집인 듯 친근하다.
해돋이 전망대에 가서 쉬면서 티타임이라는 것을 가져보자.
아주머니가 주신 커피랑 밀크티를 타서 종이컵을 들고 우아하게 전망대로 향한다.
우아한 티타임은 개뿔.
들고 가면서 흘리고, 앉으면서 흘리고, 결국 아이가 손이 끈적끈적해져서 소리친다.
“엄마! 물티슈! 엄마! 물!”
게다가 해돋이 보는 곳은 좀 예쁘게 꾸며 놓았을 줄 알았는데 그냥 시멘트 공간이었고, 의자들이 어수선하게 놓여있어서 다소 실망스러웠다.
우왕좌왕하다가 숙소로 돌아와 손을 씻었다는 슬픈 결말. 숙소에서 대자로 우아하게 쉰다.
"너무 예쁘다."
저녁 먹으러 내려가는 길. 아까 힘들게 올라왔던 길인데 짐 없이 살짝 옆길로 들어서자 멋진 원시림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람 손이 많이 닿지 않아 정돈되지는 않지만 너무나 운치 있는 대나무 길이 있고, 시우 얼굴 보다도 큰 나뭇잎들이 무성하다. 길에서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 정말 인기척도 없는 조용한 숲 속이다. 아이는 이곳이 꽤나 마음에 드는지 긴 나뭇가지를 주워 들고 돌아다니고 나는 우연히 발견한 숲 속 전망대에서 멍하니 앉아있는다.
"엄마 배고파"
그래그래, 이제 내려가야지. 다시 정류장 쪽으로 내려오니 편의점과 마라탕 집이 보인다. 다행히도 오늘은 영업하는 날인가 보다. 원하는 재료를 바구니에 넣으면 그걸로 마라탕을 만들어 준다. 이럴 때는 다양한 재료가 조금씩 들어가는 세트메뉴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없다고 한다. 아숩. 제대로 먹는 첫 끼니만큼 이것저것 고른다. 열심히 먹어보자.
날이 조금 쌀쌀하여 안에서 먹겠다고 했더니 순박해 보이는 주인 청년이 난감해한다. 가게는 원래 테이크아웃 가게이고 이 안은 자기 집이라고 한다. 집안에서 갓난아이를 안고 앉아 계시던 언니가 우리를 보면서 환하게 웃는다. 어머! 버튼을 열리면 열리는 유리문이라서 식당인 줄 알았어요. 시우는 이미 한번 들어갔다 왔는데. 무단 침입이었다니. 죄송 죄송.
가게 옆에 놓인 하나밖에 없는 간이 테이블과 의자에 자리를 잡으니, 긴 종이 그릇에 마라탕을 한껏 담아서 가져다준다. 너무 많이 골랐는지 안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도 않네. 아들 매울까 봐 안 매운맛으로 주문했더니 맛이 애매한 채소탕이 되었다. 아들은 면만 좀 먹다가 다 먹었다고 한다. 고기를 먹으라고! 둘 다 금세 배가 부르다. 덜어 먹으라고 그릇도 가져다주며 계속 쳐다보며 신경 써줬는데 남기려니 한번 더 죄송스럽다. 적당히 잘 시켜야지.
오늘은 딱히 한 것도 없었던 것 같은데 벌써 해가 저물고 있다.
다시 오르막.
어두워지기 직전 무성한 나무 뒤로 해가 저무니 마치 나무들이 불에 타고 있는 것만 같다. 넓게 펼쳐진 빽뺵한 차 밭. 숙소로 가는 길에 또다시 우리 둘만 걸어가고 있다. 밝은 낮과는 또 다른 환상적인 분위기. 말로 이 감정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들어가면서도 계속 뒤돌아보며 이 말만 반복한다.
“지인~~~~ 짜 좋다. 너도 그렇지?”
"응!"
숙소로 돌아와 씻고 정리하고 일기까지 다 썼는데도, 심지어 텔레비전에서 한국 예능 런닝맨이 나와서 초 집중하며 봤는데도 8시 30분 밖에 안되었다. 창밖을 보면 사방이 깜깜하다.
드물게 일찍 모든 일정이 끝난 날. 잠이 올까 싶었는데 불을 끄고 누우니 잠이 쏟아진다.
둘 다 그렇게 말없이 곤히 잠든 신비로운 밤.
아리샨 매직. 레드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