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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국어인쌤 Sep 06. 2023

산악열차 타고 아리샨(阿里山) 트래킹

아리샨(阿里山). Day 9(2)

 지도상으로 입구 바로 앞에 있어야 하는 인포메이션 센터가… 어디 있지?  


 아리샨에 이 무거운 캐리어를 가지고 갈 용기가 났던 것은 어디선가 들었던 '아리샨 투어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짐을 보관해 준다'라는 정보 때문이었다.  

 어디 있는 거야? 물어 물어 가는데 또 오르막? 삼일 연속 오르막? 진짜? 씩씩대며 가다 보니 눈앞에 ‘아리샨 기차역’이 떡하니 나타난다. 기차역이 가기 전에 나왔어야 하는데? 

 기차역 앞에 계단에 인포메이션 센터라는 표지판에 붙어있다. 가파른 내리막. 어우, 괜히 올라왔다. 다시 돌아갈까? 아니야. 그냥 짐을 번쩍 들고 계단길을 '다다다다' 내려간다. 오직 직진! 허리 나간다고 짐을 절대로 들지 말라고 몇 번이고 당부하셨던 시어무니 보시면 기절초풍할 일이다. 


 숨을 헐떡이며 들어간 인포메이션 센터. 

 여행자들을 위한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곳이다. 핸드폰 충전도 할 수 있고, 한국어로 된 브로셔, 지도도 있다. 우선 짐부터 맡겨보자. 

 직원의 안내에 따라 대형 가림 벽을 돌아 들어가면 커다란 선반이 있는 ‘장소’가 있다. 누군가 지키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짐 보관증을 끊어주지도 않고, 잠글 수도 없고 그냥 짐을 놓고 가게 되어 있는 선반이다. 누가 자기 것 인양 휙 들고 가버리면 그만이다. 역시 안전제일 아들이 의문을 제기한다. 


 “엄마, 이거 누가 가져가면 어떻게 해?” 

 “안 가져가겠지” 

 “엄마가 어떻게 알아?” 

 “앞에 지키는 사람 있잖아.” 


 사실은 나도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는데. 그래도 나쁜 짓 하러 여기까지 오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여권이랑 돈은 챙겨 가니 괜찮겠지. 뭐. 아. 몰라.

* '아리샨 기차역’ 내에는 동전을 넣고 유료로 짐을 보관할 수 있는 곳이 있다. 큰 칸과 작은 칸이 있는데 대형 캐리어 까지는 안 들어갈 것 같다. 

 짐을 대충 '버리고', 다시 아리샨 기차역으로 간다. 아리샨 트레킹에는 여러 가지 코스가 있지만, 산악 열차를 타고 고지대인 쟈오핑(昭平) 역으로 이동한 후, 내려오는 코스가 가장 일반적이다. 나도 우선 쟈오핑역으로 가는 표를 끊고 출발 시간을 기다린다.

 “산에 열차가 다닌다는 게 너무 신기하지 않아? 이게 세계에 몇 나라 밖에 없는 거래. 지금 보면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몰라.” 

 “그런가? 얼마나 가야 해?”  

 “6분 밖에 안 간대. 너무너무 아쉽다. 그치, 그치?” 

 별로 안 아쉬워 보이는 아이에게 아쉬움을 강요하는 엄마.


 탑승장으로 열차가 미끄러져 들어오는데… 만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빨간 열차가 산을 누비고 달린다. 천장에는 커다란 벚꽃 그림이 있는데, 기차가 달리니 하늘에 벚꽃이 날리는 것 같다. 창문을 열어놓으니 산바람이 들어오고 옆으로 다양한 아리샨 풍경이 스쳐 지나간다. 사람들이 다니는 산책길을 따라서 지나가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산책을 하는 사람들과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이 서로 상대방 사진을 찍는 재미있는 장면이 연출된다. 6분이 순식간에 지나며 쟈오핑역 도착. 

 

 잠깐 사진 찍고 천천히 내리는 사이에 그 많던 사람들이 곳곳으로 흩어지고 주변은 순식간에 고요해진다. 어디로 가야 할까? 우선 즈메이탄(姊妹潭 자매연못) 쪽으로 방향을 잡고 간다. 여기서는 서두르지 말고 사람이 없는 곳에 앉아서 쉬기도 하고 느긋하게 다녀보자. 가만히 있어도 너무 좋다. 나무들이 하늘 높이 쭉쭉 뻗어 있어서, 날씨가 너무 좋지만 그늘이 진 곳은 해가 잘 안 들어 썰렁할 정도다. 

 앉으면 먹어야지. 꽌즈링부터 못 먹고 가지고 다니던 포카칩이 빵빵하게 부풀어있다. 

 “이것 좀 봐. 우리가 높은 곳에 와서 얘가 이렇게 빵빵해져 있다. 이거 왜 그런 거야?”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은 뭔가 막 어렵게 말하기 시작하고 인내심 없는 엄마는…  봉지를 뜯어버린다. 


 동생 연못을 지나면 나오는 자매연못에는 전설이 있다. 자매가 한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버렸단다. 언니가 동생의 사랑을 이어주려고 이 연못에 몸을 던졌고, 동생 역시 언니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언니를 뒤를 따랐다. 그 후에 주민들이 자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두 개의 초가지붕을 올린 정자를 세웠다는 이야기. 이제 연예세포 죽어버린 아줌마는 이런 사랑 이야기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아들은 진지하게 듣더니

 “근데 왜 죽어?” 

 “그러게나 말이다. 큰 누나가 양보한 거지. 세상에 남자는 많은데.” 


 우리는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벤치에 앉아서 삼각 김밥과 계란을 까먹는다. 연못이 있으면 돌 던져야지, 아들은 물수제비 삼매경. 많은 사람들이 간식을 먹고, 춤도 추고, 사진도 찍고 각자의 즐거운 시간을 갖는 그런 곳이다. 


 쟈오핑역에서부터는 계속 내리막 길이어 편안히 내려갈 수 있다. 나무 옆에서 사진 찍고 있는데 걸어 올라오시던 아주머니가 가쁜 숨을 쉬며 

 “자매 연못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하나요?” 

 라고 물어보시는데 정말 괴로워 보여서 이 길을 택하길 정말 잘했다고 둘이 소곤거렸다. 


 중간중간 다양한 수목에 이름을 붙여 놓은 것도 아리샨 트레킹의 재미 요소. 영원히 같은 마음(용지에통신永结同心)이라는 거창한 제목의 하트 모양 나무도 있다. 이름이 정해져 있지 않은 나무에는 우리가 마음대로 이름을 지어본다.   

 “저건 '숟가락'이야” 

 “저건 '브로콜리'야.” 

 아리샨 내에도 식당가가 있다. 작은 매점 정도가 있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크다. 고구마, 옥수수, 국수, 소시지 등의 다양한 음식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앞에서 먹을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음식을 사서 경치 좋은 곳에서 먹기로 한다. 


 산펀위엔(山粉圆)이라는 신기한 음료수가 있다. 올챙이 같이 생긴 알갱이가 둥둥 떠있어서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지만 시식으로 마셔보니 알갱이가 쫄깃쫄깃 씹히며 구수한 맛이 나는 음료수다. 말린 알갱이도 팔고 있는데 끓는 물에 넣어 먹으면 된다고 한다. 과연… 한국에 가서 먹을까? 그냥 여기서 맛있게 먹자. 나는 커피, 아들은 산펀위엔을 테이크아웃해서 들고 다니면서 산책길을 걷는다. 장소가 훌륭하니 별다방 커피 보다 더 훨씬 더 고급지고 맛있는 느낌이다. 

 아름다운 벚꽃길과 목련길도 지나간다. 목련길에 쓰여있는 ‘Magnolia Garden’을 보더니 

 “엄마 여기는 매지노르리아 라는 곳 이래. 뭔가 엄청난 곳인 것 같아.” 

 엄마 빵 터짐! 

 “왜 왜?? 뭐 하는 곳인데?”

 집에 가서 영어공부 하자, 아들. 

 싼따이무(三代木 삼대목)도 기억에 남는 독특한 나무이다. 무려 1500년 전에(!) 1 대목이 자라고 부식되었는데 이것을 영양분으로 삼아 2대목이 자라고, 2대목을 자양분으로 현재 3대 째의 나무가 자라고 있어서 이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다. 이 세월을 거쳐서 서로 얽혀가며 지금도 자라고 있는 나무란다. 징글징글한 생명력이다. 나무 아래에 1대, 2대, 3대 이렇게 표시가 되어 있다. 머물며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곳. 여기다! 비상식량을 꺼내든다.  

 삼대목 옆길로 내려가면 출구로 바로 이어지는데 이 타이밍에서 아들은 다시금 화장실의 부름을 받는다. 출구 반대길로 뛰어가면서 덕분에 못 볼 뻔했던 아리샨 초등학교와, 박물관도 둘러볼 수 있었다. 

 자, 이제 출구로 나갈까 아니면 저 쭉쭉 뻗은 거목 사이의 데크길로 내려갈까. 데크길은 위에서 보기에도 긴 미로처럼 구불구불하다. 금방 갈 수 있는 직선코스를 굳이 뺑 돌아가며 산림욕의 호사를 누려보자.  내리막 길이니 힘들지 않을 거야. 600m 정도의 길을 아들은 총총거리며 잘도 뛰어 내려간다. 


 미로의 거의 끝에서 눈앞에 보이는 건 션무역(神木車站). 여기로 오려고 했던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션무역에서 아리산역까지 가는 기차가 5분 후 출발이다. 시간도 잘 맞고, 타고 싶었던 산악열차를 다시 한번 타게 되다니, 행운이다! 약 5~6분 정도 가는데, 내려가면서 타니까 또 기분이 색다르다. 특히 열차가 꺾어지면서 보이는 열차의 뒷부분과 아름다운 풍경이 어우러져서 이건 뭐… 기념엽서에 나오는 풍경이다.

 아리샨 역에서 내려 이제는 짐을 가지러 인포메이션 센터로 간다. 

 우리 짐은 잘 있을까? 다행히 무사했다! 


 계획했던 2시 버스는 이미 놓쳤고, 3시 10분 버스를 타러 다시 짐을 끌고 간다. 그제야 아침에 어떤 길로 왔어야 했는지 깨달았다. 사람들이 알려주는 대로 갔어야 했는데, 마음만 급해서 사람들을 따라 무한 직진했지. 무식하게 씩씩거리면서 갔던 나를 탓해야지, 누구를 탓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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