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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중국어인쌤 Sep 06. 2023

자리 없어요!? 기차도, 식당도?

아리샨(阿里山)에서 타이중으로. Day 9(3)

 젤리와 맨토스를 챙겨야 한다. 

 찌아이역까지 버스로 두시간 넘게 가야 하니, 아들이 멀미에 효과가 있다고 우기는 아이템인 젤리와 맨토스를 산다. 그리고 어차피 종점까지 가야 하니 당당하게 맨 뒷자리에 앉았다. 


 어? 갑자기 버스에서 한국어가 들린다. 타이난부터는 한국사람들과 만날 일이 거의 없어서 며칠만인데도 상당히 반갑다. 특히 중국어가 안 통했던 시우는 더 반가웠는지 목소리 높여서 큰 소리로 인사했다. 

 “한국 사람이다! 안녕하세요!” 


 그렇게 자유여행중인 언니들을 만나게 되었다. 아이들 다 키워놓고 친한 친구 셋이서 15일 일정으로 대만에 놀러왔다고 한다. 대략적인 계획만 세워놓고 그날그날 상황에 따라서 일정을 정하고 있다. 계획세우는게 여행의 절반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안 할 것 같지만 한번쯤은 해보고 싶은 여행이다.   

 어제 찌아이에서 하루 보내고 오늘 아침에 아리샨에 왔다 내려가는 중이었다. 나에게 찌아이는 아리샨, 꽌즈링 가는 길에 지나가는 곳이었는데, 언니들은 찌아이에서 한 여행이 참 좋았다고 했다. 내가 좋아서 사일이나 묵었던 타이난은 갈까 말까 고민중이다. 비슷한 시간에 비슷한 장소에서 다른 추억을 채워가고 있는 두 팀이 신기하기도 하고 마냥 반갑다. 


 먼저 버스에서 내리며 아들과 여행하는 나를 응원해주셨다. 

 "여행잘하고, 힘내요!" 

 어머. 저 힘내야 하는건가요? 힘들지 않은 걸요? 하하하....

 

 어제는 멀미때문에 그렇게 힘들어 하더니 오늘은 피곤했는지 한시간을 넘게 곤히 자서 수월하게 갈 수 있었다. 찌아이역 시내에 도착하니 차가 막힌다. 여기도 시내는 차가 막히는 구나. 타이중 가는 기차를 타야 하는데, 시간이 간당간당 하니 탈 수 있을지 두근두근. 기차 출발 20분을 남기고 찌아이역에서 또 캐리어를 들고, 뛰기 시작한다. 

 “배고파? 도시락을 사 먹으면서 가면 1시간 20분쯤은 금방 도착할거야.” 

 “자리 없어요.”  

 열심히 뛰어서 티켓 창구에 갔는데 놀라운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네?! 거짓말! 찌아이역에서 타이중까지 가는 기차가 워낙 많기 때문에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내가 간과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대만의 연휴. 화평기념일이 화요일인데, 월요일까지 샌드위치로 쉰다. 고로, 금요일 저녁인 오늘이 바로 연휴의 시작인 것이다.


 “떨어져 앉는 자리도 없나요? 한자리만 있어도 되는데요.” 

 야속하게 고개를 젓는다. 50분 정도 서서 가다가 ‘위앤린(園林)’역 부터 앉을 수 있다고 한다. 다음 기차는 2시간이 넘게 걸리는 완행 열차다. 시우도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내 생각도 그래. 우선 출발하자. 도시락은 패스한다.

(고속철도를 타고 가면 찌아이역에서 타이중까지는 30분 정도 걸린다. 그런데 타이중 고속철도역에서 시내의 타이중 기차역까지 한 20분 정도 더 가야 한다. 그래서 그냥 기차 중에서도 빠른 쯔치앙하오(自強號 자강호)를 타고 이동하기로 했다.)


 충격을 받고 플랫폼에 서있으려니 타이중 가는 기차가 들어와서 멈춘다. 갑자기 뛰어들어오는 승무원들. 기차와 플랫폼 사이에 연결계단을 설치한다. 혹시 캐리어를 들고 있는 나를 위한, 외국인을 위한 서비스? 감동하려는 찰나, 옆 칸으로 타라고 한다. 아, 전동 카트를 탄 승객이 내리는 거였네.

 “난 우리 캐리어 들고 있는 거 보고 도와주려고 온 줄 알았어” 

 “나도.” 

 김치국 한 바가지 먹고 킥킥거리면서 기차를 탔는데… 와! 이미 열차 안에는 사람이 가득하다. 열차 내부 빈자리에 이미 사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열차 칸 안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열차와 열차 사이 연결 통로에 자리 잡는다. 시우는 바닥에 털썩 앉아 버리고 나는 창밖을 보면서 간다. 이쯤에서 피곤이 치고 올라오는 두 사람은 말수가 확 줄었다. 

 유리창밖으로 대만의 해 질 녘 시골길이 휙휙 스쳐 지나간다. 이렇게 보니까 또 나름 운치 있다. 이런 경험을 언제 하겠어? 공감하지 않는 아들은 지치지도 않고 앉아서 그림 그리며 놀다가 틈틈히 나를 쳐다보고 묻는다. 

 “엄마 언제부터 앉을 수 있어?” 

 “지금도 앉아 있잖아.” 

 “편하게 앉아서 가고 싶어.” 

 이럴 때 희망 고문을 하기 보다는 더 과장해서 알려주는 편이다. 

 “많이 가야 해. 한 2시간 정도?”
 좌절하는 우리 어린이.

 

 

50분이 지나고 이제 열차가 출발하면 앉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생겼다!

 탈 때 서서가야 한다는 충격이 너무 컸었는지, 정신을 어디에 빼놨는지 우리 9번 칸이 아니라 8번칸에 끝에서 타버렸다. 즉, 사람이 꽉 차 있는 8번칸을 뚫고 지나가서 9번 칸을 또 걸어서 맨 끝 우리 자리까지 걸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비행기로 치면 비즈니스 좌석에 해당하는 맨 앞자리, 정말 좋은 자리인데 여기서는 걸어갈 엄두도 안난다.  

 “시우야, 우리 여기를 지나서 옆 칸으로 가야 해. 그냥 여기 있다가 내릴까?” 

 “아니, 가야지.” 

 이 친구. 뒤도 안 돌아보고 앞으로 성큼성큼 간다. 너만 가면 엄마는 어떻게 하라고. 

 이 대형 캐리어로 좁은 통로를 그냥 지나가기도 쉽지 않은데 지금은 통로마다 사람이며 짐이 가득 차 있는 상태이다. 인터네셔널 민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래도 싫은 내색하는 사람 하나 없고 다 비켜준다. 통로에 짐이 있어서 도저히 우리 캐리어가 지나갈 수 없게 되자, 앞에 서 계시던 아저씨가 근 20킬로가 넘는 캐리어를 번쩍 들어올려 옮겨 주기까지 했다. 이 난리 바가지에 아들은 이미 자리에 앉았다. 얄미워라… 온갖 민폐를 끼치고 겨우 앉았더니 타이중역에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있었다. 아이고. 


 우여곡절 끝에 타이중 도착! 

 역 자체의 때깔이 타이난, 찌아이와 다르다. 백화점, 높은 건물, 도시로구나! 

 게다가 연휴의 시작. 사람도 엄청 많다.

 

 타이중 숙소는 에어비앤비로 예약했고 홈페이지에 쓰여 있던 대로 기차역에서 정말 5분 거리였다. 숙소의 상태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가깝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오늘 하루 이동이 너무 많았다. 미리 알려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주방을 지나쳐 2층으로 올라가는데, 아… 엘리베이터 없는 계단. 오늘 내 허리가 남아 나질 않겠어. 으쌰!


 짐을 내려놓고 지친 아이와 밥부터 먹으러 간다. 숙소 바로 옆에 까르프와 유명 브랜드 의류 매장, 푸드 코트, 유명 음식점이 입점해 있는 대형 몰, 타로코몰-타이중점(大魯閣新時代購物中心)이 있다. 숙소 위치 최고다! 


 그.런.데. 

 금요일 저녁이라 식당마다 대기가 엄청났다. 입석 기차에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무조건 바로 입장이 가능한 식당을 찾아 8층의 딤섬 식당, 디엔빠하오(点8号)로 들어간다. 

 "나 원래 딤섬 먹고 싶었어."

 볶음밥을 하나 시키고 추천해 주는 메뉴를 대충 시켰더니 딤섬 4피스, 고기 튀김, 고기 전병이 나왔다. 딤섬... 시켰는데? 주문 오류. 

 “엄마 우리 딤섬 먹는다며?” 

 “…나중에 딘타이펑 갈 거니까 우선 이거 먹어. 이것도 맛있겠다.” 

 아.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어. 그래도 맛있게 먹었으니 됐지 뭐.

 

 대만에서도 리뷰 이벤트- 놓치지 않을 거예요. 

 음식을 기다리는데 구글상점에 별 다섯개를 주면 음료수를 준다는 이벤트가 보인다. 직원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더니 해당 앱으로 찾아 알아서 별 다섯개를 주고 후기를 쓰라고 한다. 이런건 한국에서도 많이 해봐 익숙하지.  

 “진짜 맛있어요 真好吃!” 

 무려 중국어로 후기를 남기고 보여줬더니 잠시 후 레몬주스를 가져다준다. 존경의 눈으로 쳐다보는 아들. 엄마 이런 사람이야. 주문은 실수 했지만 마시렴! 어깨가 으쓱으쓱 하다. 


 겨우 밥을 먹고 마지막으로 지하의 까르푸에서 과일만 사가지고 가려 했는데, 이것저것 구경하다 보니 또 동선은 커지고, 시간은 더욱 더 늦어져 10시가 다 되었다. 밤에 안 다닌다고 했지만 여기는 너무나 번화가이고, 숙소도 찾았고, 숙소랑도 가까우니까 괜찮다고 합리화.  


  “시우야, 우리 오늘 아침에 아리샨에서 해돋이 본거 기억나?”  

  “그거 어제 아니었나?”

  “그렇지? 왜 이렇게 오래된 것 같이 느껴지지?” 


 기절할 정도로 피곤. 내일은 체크 아웃 안 해도 되니까 늦게 일어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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