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지 못한 오프닝

이제는 문을 열 때가 되었다

by ZANN


제야의 종소리를 기다리던 연말. 반가운 연락이 왔다. 두어 달 동안 진행한 예능 프로그램의 자막 작성 아르바이트가 마무리되어 정산 금액을 확인해 달라는 메시지였다. 작가 선배의 부탁을 받아 시작한 소일거리로 수입이 없어 손가락만 빨던 차에 단비 같은 존재였다. 고생했어. 아이고, 뭘요. 제가 감사하죠. 상투적인 인사와 함께 문을 연 대화는 자연스레 추억 팔이로 흘러갔다. 언니 처음 만났을 때 저 사 년 차였잖아요. 그때가 좋았지, 전부 선배들한테 의지했던 호시절. 멀게만 느껴졌던 두 자릿수 연차에 돌입한 나에게도 막내작가 시절은 물론이거니와 현장에 발도 들이지 못한 지망생 명찰을 달고 있었을 때가 있었다. 잠실새내역이 신천역이었던 십여 년 전. 신천역 도보 십 분 거리에 있는 MBC방송아카데미. 방송작가를 꿈꾸는 이들이 오늘도 부푼 마음을 안고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그곳에, 나 또한 출석 도장을 찍었다.




전문 역량 강화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나 실질적으로는 취업(과 일자리 알선)에 초점을 맞춘 기관이었다. 교육을 뜻하는 간판을 달고 있어도 과제나 성적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저히 낮았다. 거의 없다시피 했다. 물론 흔히 말하는 ‘바닥’이 너무 좁은 탓에 혹여나 출강을 나오시는 작가님들께 밉보였다가 취업 길이 막히지는 않을까, 강의실을 빼곡히 채운 동기들 모두가 사서 전전긍긍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한 번이라도 더 작가님들 눈에 띄고자 발발한 명당 쟁탈전을 도화선으로 경쟁 분위기가 과열되자 학기가 시작된 지 일주일 만에 넌더리가 났다. 유감스러운 사실은 아무리 동태 눈으로 갈아 끼웠다 한들 나 역시 셀프 조마조마 대열에 합류한 뒤였고, 타고나기를 예스걸이라 과제를 나 몰라라 할 깜냥이 없었다는 것이다.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과 맞먹는 수강료를 생각하면 더더욱 말이다.


비교적 가볍게 끝낼 성싶은 과제들이 대부분이었지만 한숨 폭격기가 하나 있었으니, 이름하여 라디오 오프닝 원고 작성. 라디오를 챙겨 듣던 날은 초등학생 무렵 좋아하는 연예인이 고정 진행을 맡았을 때나(신화의 야간자율학습 엽기적인 점심시간 편♬ 오늘의 주인공은♪) 고등학교 자율학습시간에 친구와 몰래 이어폰을 나누어 끼고 시간을 죽였을 때(거기 고개 숙이고 웃는 두 놈 나와) 정도였다. 그 시점에서는 라디오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도 가물가물했다. 백지로 낼 수는 없으니 급한 대로 채널별 간판 프로그램을 찾아들었다. 문법과 흐름을 파악하는 일이 우선이었다. 그다음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이 자리를 빌려 숨은 공신이었던 새벽 감성에게 감사를 표한다─. 에이포 용지 절반도 채우지 못하는 짧은 원고였거늘 팔만대장경을 새기는 심정이었다. 자고로 벼락치기는 내공을 이기지 못하는 법. 하루의 시작과 끝을 라디오와 함께하는 애청자도 강의실에 여럿 포진해 있었기에 긍정적인 피드백은 양심상 바라지도 않았다.


일주일 후. 과제를 제출하고 처음 맞이하는 수업 시간이 돌아왔다. 트레이드 마크인 통통 튀는 발걸음으로 작가님이 강의실 문을 여셨다. 곧이어 강사용 책상에 수업 자료가 올라왔다. 앞서 제출한 과제 뭉치도 포함됐다. 필사적으로 흐린 눈을 했다. 이런 심정을 알 리 만무한 작가님은 연신 싱글벙글하셨다. 제가요, 읽으면서 막 두근두근했잖아. 밑밥을 깔며 작가님은 종이 더미의 가장 위에 놓인 한 장을 손에 드셨다.


“드디어 라디오 계의 샛별이 나타났구나!”


한 번 들어보세요. 좀처럼 설렘을 숨기지 못하는 목소리. 누구나 알 법한 라디오 프로그램을 다수 집필한 작가님의 극찬이라니. 기대는 일찌감치 버린 주제에 살짝 샘났다. 다이어리, 많이 쓰시나요? 새 다이어리를 사면…. 이어지는 낭독을 듣고는 물릴 만큼 식상한 표현이지만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살짝 MSG를 보태자면 이른바 피땀 눈물을 바쳐 완성한, 수도 없이 퇴고하여 이제는 눈을 감고도 읊을 수 있는 내 오프닝 원고였기 때문이다. 이거 쓴 친구가… ○○○! 어디 있어요? 육십 쌍이 넘는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나는 지진 난 손을 조용히 올렸다. 원 오브 작가 지망생에서 전도유망한 예비 작가로 단번에 신분이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태세를 전환했다. 요즘에 라디오 누가 듣냐고? 오늘부로 라디오 지지를 철회한다. 오늘부터 라디오와 나는 한 몸으로 일체가 된다. 라디오에 대한 공격은 나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 라디오 작가는 순식간에 오랜 장래 희망으로 둔갑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데 가능성에 목말랐던 나는 아주 글바람이 났다. 세상의 모든 프레임을 스크랩하고 새로운 옷을 입혀 내보내기에 바빴다. 여전히 눈은 반쯤 생기를 잃은 상태였지만 라디오 수업 시간만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반질반질해졌다.


물론 늘 호평만 받지는 않았다. 때로는 공들인 노력이 무색하게 따끔한 비판도 쏟아졌고 나조차도 외면하고 싶은 결과물도 많았다. 하지만 초두효과는 위대하다고, 작가님은 대체로 후한 평을 내리셨다. 백 퍼센트 우러나온 진심이었는지, 과장이 섞인 칭찬이었는지, 단지 아량 넓은 응원 치레에 불과했는지 진실은 모른다. 언젠가 경력이 쌓이면, 지망생을 졸업하고 진정한 후배 동료로서 조금은 허물없이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날이 오면 솔직하게 여쭤보고 싶었지만 아카데미를 수료하고 간간이 이어오던 작가님과의 연락은 몇 년 전에 끊겼다.




아쉽게도 나는 라디오가 아닌 TV 프로그램에서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정성껏 채워 나간 오프닝과 틈틈이 모아둔 글감들은 자료조사, 리스트업, 보도자료, 촬영구성안 등 우선순위에 밀리며 마트료시카도 기겁할 하하하하하위폴더로 쫓겨났다. 멀어진 만큼 행방이 묘연했던 꿈들은 새로운 노트북을 장만하고 나서야 다시 배경 화면에 등장했다. 강산도 바뀌었을 세월. 얼마나 허접했을꼬. 모처럼 맞는 한갓진 주말에 잘 걸렸군. 흑역사를 한껏 비웃어 줄 심산으로 폴더를 클릭했다. 그리고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커서만 움직였다. 제법 완성도 있게 끝맺은 원고부터 떠오르는 대로 급하게 기록하여 토막 난 문장, 당최 무슨 의도였는지 파악하기도 힘든 단어들의 어지러운 나열까지. 차곡차곡 정리된 파일을 빠짐없이 읽는 동안 여러 감정이 무질서하게 떠올랐다. 수면이 잠잠해진 뒤 돌이켜보니 아마도 나는 활자에 묻은 잔상이 부러웠던 듯하다. 이제는 의무감과 통장에 찍히는 숫자 정도를 원료로 삼아 작성하는 대본을, 오롯이 마음 하나면 충분했던 그해에는 누구보다 즐겁게 그리고 신나게 써 내려갔다는 사실이 기억나서. 이제는 순수한 행복과 열정만을 동력으로 하는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쓸 수는 있는지 아득하게 다가와서. 방향을 찾을 의욕마저 상실한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내가 부단한 시행착오 끝에 어설프게나마 세웠던 이정표를 한동안 들여다보았다.


‘한때의 기억으로 평생을 사는 사람도 있다.’


언제인가 SNS에서 수많은 하트가 쏟아진 문구에 나 또한 좋아요를 보탰다. 라디오 계의 샛별이 나타났구나! 작가님의 한마디는 일종의 불러오기였다.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마다 저장되어 있던 그날의 풍경이 펼쳐졌다. 한때의 기억에 올라타서 나는 물살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나를 살게 했던 십여 년 전의 어느 수요일 오전은 나를 다시 살아보고 싶게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삶에 렌즈를 가져다 대던 그 시절의 나로 말이다.


기념비적인 첫걸음마로서 비록 라디오의 오프닝은 열지 못했지만 이 공간을 조심스럽게 열고자 한다. 강의실 밖을 벗어나지 못했던 이야기를 이제야 풀어내 본다. 어떠한 경로로든 낯선 주파수에 닿게 된 여러분에게 한 톨의 공감과 위로라도 전해지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여러분과 쌓인 유대가 언젠가 또 다른 장으로 안내하는 문을 열게 되는 날. 나는 이번에야말로 기나긴 오프닝의 마침표로서 클로징을 완성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