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부정 출발

by ZANN


달력 위 일요일 칸에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번질세라 조심스럽게, 하지만 빈틈없이.

동그란 기대가 피어납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기로 한 날.

옷장 문을 열어 홀로 패션쇼를 여는 수고로움도

낯선 식당의 후기를 꼼꼼히 훑어보는 번거로움도

그날의 풍경 속에서는 이미 즐거운 산책이 됩니다.


마침내 찾아온 약속 당일.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눈이 번쩍!

알람 시계도 잠잠한데

심장 박동이 시끄러워요.


들뜬 발걸음을 질투하는 듯

따끔한 바람이 나를 뒤로 밀어내지만

앞질러 달려 나가는 입꼬리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일요일의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네요.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견뎌야 하는 지루한 시간이

기꺼이 누리는 기대로 변하는 마법.


기다림 끝에 여우가 마주할 어린 왕자처럼

열지 못한 오프닝이 조금은 더디더라도 천천히

여러분에게 선명한 설렘을 선물하는 날이 오기를

조심스레 바라봅니다.




오늘은 에세이 대신 [기분 좋은 부정 출발]로 제 브런치 스토리를 처음 방문하신 여러분께 브런치 북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열지 못한 오프닝〉은 방송 작가 지망생 시절, 라디오 작가를 꿈꾸며 하나둘 모아온 원고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매주 화요일마다 빛바랜 기록 위로 오늘의 계절과 마음을 덧칠하여 연재합니다.


단순한 원고 나열에 그치지 않고 에피소드를 더해 공감 주파수를 맞춰 나가고자 합니다. 다정한 손길과 밀도 있는 관찰을 더한 저만의 문장이 누군가에게 작은 쉼표가 되기를 바랍니다.

화요일 연재
이전 04화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은 수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