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많이 쓰시나요?
새 다이어리를 사면
누구나 예쁘게 꾸미고 싶지만
마음처럼 쉽지는 않죠.
선이 삐죽 튀어나가기도 하고
글자를 잘못 쓰기도 하고.
잘못 쓴 부분은 수정액으로 덮어보거나
실수가 많은 페이지는 죽 찢어버리는 경우도 있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종이는 얼룩덜룩 다이어리는 너덜너덜.
잘못 그은 선 하나가 오히려 근사한 낙서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실수를 감추고 싶어서.
우리는 어쩌면 중요한 무언가를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말이에요.
아뿔싸. 또 실수하고 말았다. 방안 노트를 다이어리로 사용하는 나는 한 달의 시작을 앞두고 매번 달력을 새로 그린다. 문제는 한 번에 깔끔하게 성공하는 타율이 낮다는 거다. 글자를 잘못 적거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성급하게 손을 움직여 지저분하게 번지는 일은 예삿일이라 이야깃거리도 못 된다. 자를 대고 긋는데도 줄이 어긋나는 이유는 대체 뭐람? 무엇보다 나를 좌절의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주범은 계산 오류다. 2월은 일요일이 네 번뿐이라 네 칸만 그리면 되는데 노동요를 들으며 신나게 줄질을 하다가 그만 다섯 칸을 그리고 말았다.
“결국 이걸 쓸 때가 왔군.” 예전의 나라면 선을 잘못 그은 페이지를 자르기 위해 커터 칼을 찾으며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다이어리는 오점 없는 기록이어야 했고 잘못 그린 선 하나는 곧 그달 전체의 실패를 의미했다. 하지만 오늘의 나는 다르다. “드디어 이걸 쓸 때가 왔군.” 실수한 사람이라기에는 수상하게 입꼬리가 올라간다. 동시에 내 손은 필기구가 꽂힌 유리컵이 아닌 다이어리의 포켓 페이지로 향한다. 안에는 며칠 전 성수동의 한 문구 편집숍에서 한눈에 반해 모셔 온 단팥빵 스티커가 들어있다. 기념비적인 첫 번째 단팥빵을 날짜 없이 덩그러니 남겨진 빈칸에 진열하면… 이거 뭐야, 너무 귀엽잖아. 내친김에 베이커리의 빵 상자처럼 만들어 볼까? 채도가 낮은 붉은 색 형광펜으로 테두리를 덧칠했더니 으음, 조금 더 귀여워졌습니다.
이런 식의 수습을 거듭하다 보니 실수를 커버하는 나만의 레퍼런스도 제법 늘었다. 이미 새해를 앞두고 2026년 다이어리 전체 셋업을 할 때도 숱한 고비를 겪었다. 별안간 잘만 쓴 카테고리의 글씨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의미 없는 눈싸움을 하다가 견출지를 붙여 새로운 문패를 달기도 하고, 칸을 하나씩 밀려 적거나 페이지를 통째로 건너뛰어 버린 대참사에는 영수증이나 영화 티켓으로 도배 시공에 들어갔다. 그렇게 단조로웠던 다이어리는 세상에 유일무이한 콜라주 작품으로 가는 첫 단추를 끼웠다.
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예전에는 다이어리를 쓰지 못한 공백을 마주할 때마다 강박적인 부채감에 시달렸다. 이제는 빈 여백 또한 그날의 나를 구성하는 소중한 기록으로 받아들인다. 이때는 정말 바빴나 보군. 한 줄도 남기기 싫을 만큼 기분이 안 좋았나? 빈틈없이 빡빡한 날들보다 듬성듬성 숨 쉴 구멍이 있는 날들이 오히려 나를 진솔하게 증언한다.
실수를 감추고 싶다, 아니 애초에 실수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는 자기 최면은 결국 우리를 완벽이라는 탈을 쓴 감옥으로 연행할 뿐이다. 실수를 인정하면 후련한 해방감이 찾아온다. 기왕 틀어졌으니 정해진 규격 밖으로 아예 다른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호기심도 생긴다. 이때부터 실수는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재료가 된다.
이제 나는 깨끗하고 정갈한 페이지보다 덧대어 두툼해진 페이지가 더 정겹다. 오늘도 얼렁뚱땅 매 순간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나의 흔적이 쌓여간다. 그러니 앞으로도 실수와 다정하게 마주하고 싶다. 아껴둔 단팥빵 스티커가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